김아라(b. 1989)는 건축, 조각,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교차점에서 조형 언어를 새롭게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특히, 작가는 한국 전통 건축의 구조적 미감에 주목해 오며 이를 추상적으로 해석한다. 그의 작업은 전통 건축의 구조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평면과 입체, 회화의 안과 밖을 사유하며 전통과 현대의 경계 위에서 실험을 이어간다.


김아라, 〈Set #1〉, 2015, 나무에 아크릴, 60x60x60cm ©김아라

김아라의 작업에서 주된 요소가 되는 캔버스의 틀은 단순히 이미지를 담기 위한 지지체가 아닌 물리적이고 독립적인 조형 요소로 여겨진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작가는 이미 정해진 캔버스의 틀 안에 형상을 만들어 내는 회화 작업에서 물리적 한계를 느끼게 된 것을 계기로, 캔버스의 틀과 그 외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김아라, 〈Untitled-Connection #1〉, 2019, 캔버스 나무 프레임에 아크릴, 안료, 165x257x2cm ©김아라

김아라는 홈을 파 짜맞추는 캔버스의 나무 프레임이 가진 구조로부터 나무 기둥과 보를 깎고 끼워 맞춰 뼈대를 세우는 한국 전통 건축의 결구(結構) 방식을 겹쳐보았다. 이후 그는 전통 건축의 구조에서 조형적 단서를 찾아 캔버스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 한국 전통 건축의 구조적 아름다움을 담은 독창적인 추상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김아라, 〈Untitled-C19-20〉, 2020, 캔버스에 아크릴, 안료, 162.2x130.3cm ©김아라

그의 작업에서 문창살의 격자, 기둥과 보, 도리, 공포와 같은 구조적 요소는 비례와 질감, 그리고 규칙성과 반복을 통해 시각화된다. 일정한 규격과 구조의 분할은 그것이 어떻게 전체 공간 속에 수용되는지를 보여 주며, 수직과 수평의 교차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속에서 새로운 조형적 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단청의 문양이나 건축의 세부 요소를 취사선택해 대칭과 반복을 화면에 구성함으로써 구조와 문양, 공간 사이의 관계를 추상적으로 재해석한다.

김아라, 〈Untitled〉, 2021, 캔버스에 아크릴, 안료, 130.3x193.9cm ©김아라

회화 연작 ‘Untitled’는 수년간 단청의 색채와 패턴에 매료되어 작업해 온 김아라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작업 중 하나다. 이 작업에서 김아라는 단청의 문양을 재구성함으로써 전통이라는 과거 시제를 현대화하여 이상적인 조형적 균형감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수직, 수평의 직선화된 기본 요소를 강조함과 동시에 보색 대비를 강하게 이루며 색상의 균형감과 조화를 동시에 이루어 낸다는 점 또한 이 작품의 특징이다.


김아라, 〈Vertical Line〉, 2021, 철에 아크릴, 안료, 306.9x11.4x2.4cm. 《레지던시 창작랩 성과전》 전시 전경(수창청춘맨숀, 2021) ©김아라

한편, 2021년 수창청춘맨숀에서 열린 《레지던시 창작랩 성과전》에서 선보인 작품을 기점으로 김아라의 작업 세계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통 건축물의 구조와 색감에서 모티브를 찾아 왔던 지난 작업과 달리, 본 전시에서는 ‘일상성’, ‘동시대성’, ‘현장성’을 담은 공간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전의 작업에서 캔버스의 틀을 건축적 구조물로 치환해 단청 패턴과 결합한 ‘셰이프드 캔버스(shaped canvas)’를 제작하는 등 형식의 실험과 확장을 통한 동시대성을 보여준 바 있지만, 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김아라의 시선의 확장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전작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레지던시 창작랩 성과전》 전시 전경(수창청춘맨숀, 2021) ©김아라

예를 들어, 전시 공간의 천장과 바닥을 관통하는 기둥의 형상을 지닌 〈Vertical Line〉(2021)은 작업실 근처 공구거리, 즉 일상적 장소에서 만난 건축 철구조물인 ‘중주(샤시문을 지탱하는 기둥)’을 가져온 작업이다.
 
작가는 치열한 삶의 현장인 어느 일상적인 가게의 셔터문 기둥을 작품으로 선택하고, 이를 전시장 건축물의 한 구조로써 새로이 구조화하였다. 이로써 기능만을 위해 존재해온 철기둥은 전통문양의 색을 장착하고, 전시장이라는 맥락 안으로 들어오며 새로운 위계를 획득하게 된다.
 
더불어, 바닥에 설치되어 있던 작품 〈Flat Pieces〉(2021)는 소박한 전통 문양의 대량 생산품인 타일과 작가의 캔버스 작품이 뒤섞여 거친 콘크리트 전시 공간에서 새로운 현장성을 획득하였다.


《Overpass》 전시 전경(갤러리2, 2022) ©갤러리2

나아가, 2022년 갤러리2에서 열린 개인전 《Overpass》을 통해 김아라는 공간/사물의 구조에 더욱 접근함으로써 하나의 ‘조각 공간’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이 전시에서 작가는 구조적 접근을 강조하고자 그동안 작품의 표면을 단청의 문양으로 채색하던 방식을 배제하고 색을 절제하면서, 한옥의 내부 구조를 전시 공간 안에 재구성하였다.
 
전시장을 구성하고 있던 오브제들은 모두 한옥의 내∙외부 공간에서 발견된 천장의 반자(斑子)틀, 대문, 대문이 닫히지 않게 하는 나무 고정틀 등을 은유한다.


김아라, 〈Vertical Line〉, 2022, 캔버스 나무 프레임에 안료, 가변 크기. 《Overpass》 전시 전경(갤러리2, 2022) ©갤러리2

전시 공간의 벽과 천장을 타고 가로지르던 〈Vertical Line〉(2022)은 창문과 창틀 구조를 재현한다. 방과 방을 연결하고 막아주는 창문과 창틀은 공간을 여닫아야 하므로, 구조가 천장까지 관통한다. 작가는 그 구조를 캔버스 프레임을 해체하고 다시 짜맞춰서 재현하였다.


김아라, 〈Untitled-Connection #3〉, 2022, 캔버스 나무 프레임에 아크릴, 안료, 107x107x4.1cm. 《Overpass》 전시 전경(갤러리2, 2022) ©갤러리2

한옥 공포에서 캔버스 그리고 다시 한옥의 창문과 창틀과 이어지는 작품들은 ‘공간과 구조’라는 요소로 점철된다. 이때 작가는 구조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 안으로 관객이 들어가 유영하도록 공간을 조각하였다.
 
수직과 수평의 균형, 사각형의 안정감, 나무의 물질성, 열린 공간 구조로 이루어진 전시는 하나의 ‘조각 공간’이 되며, 관객으로 하여금 그 안을 거닐며 공간과 조형을 몸소 느끼고 경험할 수 있게 하였다.


《단 하루도 이해하려고만 들면 긴 시간이다》 전시 전경(김리아 갤러리, 2026) ©김리아 갤러리

이처럼 공간적 차원으로 확장해 나간 김아라의 조형 실험은 최근 한 발 더 나아가 조각의 형상과 여백, 그리고 그 여백과 공간의 관계성에 주목한 작품들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2026년 김리아 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단 하루도 이해하려고만 들면 긴 시간이다》는 한층 더 깊어진 ‘공간 인식’에서 출발한 작가의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전시이다. 여기서 작가는 전시장 내 층별 채광 차이와 자연광의 흐름을 고려해 작품을 구성하며, 빛의 양에 따라 변화하는 어두움과 깊이를 화면에 반영하고자 하였다.


《단 하루도 이해하려고만 들면 긴 시간이다》 전시 전경(김리아 갤러리, 2026) ©김리아 갤러리

이 전시에서 작가는 먹을 주요 재료로 삼았다. 린넨을 먹으로 염색하고 세척과 채색을 거듭하는 과정 속에서 화면은 점차 어둠의 밀도를 획득한다. 그러나 이 어둠은 무엇을 덮거나 감추기보다 오히려 형상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낸다. 먹이 스며든 나무의 결은 더욱 선명해지고, 직조된 천의 틈을 통과한 빛은 캔버스 프레임의 구조를 미묘하게 부각시킨다.


《단 하루도 이해하려고만 들면 긴 시간이다》 전시 전경(김리아 갤러리, 2026) ©김리아 갤러리

이로써 그의 작품 속에서 어둠과 여백은 대립하지 않고 서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화면은 하나의 이미지라기보다 시간과 물성이 축적된 구조로 자리한다. 전시 공간의 층별 채광 차이와 창의 유무 또한 이러한 조형적 탐구와 맞물려, 빛의 양에 따라 서로 다른 깊이와 감각을 형성한다.
 
즉, 작가는 작품을 단순히 전시 공간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작품이 하나의 구조로 작동하도록 설계하며, 회화와 전시 환경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구축한다.
 
전시는 관객에게 어떠한 서사를 제시하거나 특정한 해석을 요구하기보다, 화면 앞에 머무르는 시간을 제안한다. 구조와 여백, 반복과 침묵이 공존하는 화면은 이해를 앞세우기보다 관객으로 하여금 천천히 각자만의 시간 속에 머무르게 하며 감각이 서서히 열리는 순간으로 유도한다.


김아라, 〈Untitled〉, 2025, 캔버스 나무 프레임에 아크릴, 안료, 180x33.8x33.8cm ©김아라

이렇듯 김아라의 작업은 건축이 내부와 외부 공간을 구현하듯, 조각 안에 여백을 형성한다. 이는 전통 건축 내부에서 창을 통해 자연 풍경을 바라보는 경험과도 닮아 있다. 여백을 품은 조각은 주변 공간과 호흡하며 확산되고, 그 안에서 관습적 형상이 지닌 감각적 경험이 새롭게 환기된다.
 
전통 건축의 구조에서 발견한 긴장과 균형, 목재의 결이 만들어 내는 구축 방식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 김아라의 작업 세계는 전통의 요소와 형식을 현대의 맥락으로 재구성하는 데에서 나아가, 공간적 차원으로 확장되어 작품-공간-관객 사이에서 감각이 자리하는 방식을 탐구해 나가고 있다.

"입체, 평면, 공간 이 세 가지를 어떠한 방식으로 한 번에 결합해서 보여줄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교차하는 형상에 대한 시각적인 안정감을 찾아가려고 한다." (김아라, 팔복예술공장 창작스튜디오 인터뷰 중)


김아라 작가 ©김리아 갤러리

김아라는 경기대학교에서 환경조각학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단 하루도 이해하려고만 들면 긴 시간이다》(김리아 갤러리, 서울, 2026), 《Window》(소양고택, 완주, 2022), 《Overpass》(갤러리2, 서울, 2022), 《교차하는 순간》(갤러리 강호,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UNBOXING PROJECT 6: Reading》(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2025), 《도상(途上)의 추상(抽象)-세속의 길에서 추상하다》(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5), 《원더스퀘어》(뮤지엄헤드, 서울, 2025), 《집과 그림⦁1》(하우스 갤러리, 서울, 2024), 《추풍미담》(화성행궁 유어택, 수원, 2023), 《UNBOXING PROJECT 2: Portable Gallery》(뉴스프링프로젝트,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김아라는 2025 키아프 하이라이트의 세미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어 주목을 받았으며, 그의 작품은 서울대학교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주오스트리아 대한민국 대사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