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진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형식적 특징은 사진 이미지를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방식이다. 그는 직접 촬영한 풍경을 회화의
출발점으로 삼지만, 사진을 단순히 회화적으로 번안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진을 잘게 분할하거나, 다른 매체의 논리를 차용하거나, 화면
위에서 다시 배열하는 과정을 통해 이미지를 재구성한다. 《1248》(갤러리2, 서울, 2019)에서
선보인 〈물의 표면〉(2019)과 〈바다의 단면〉은 한 장의 수면 사진을 1200개 혹은 48개의 단위 화면으로 나누어 옮긴 작업이다. 이 분절된 단위는 각각 독립적인 회화이면서 동시에 전체 이미지를 구성하는 세포처럼 기능하며, 부분과 전체 사이를 오가게 만든다.
재료의 사용 방식도
그의 작업에서 핵심적이다. 한지와 먹은 전통 회화의 재료이지만, 권세진은
이를 고정된 양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먹의 번짐, 농담, 반사, 종이의 얇음과 투과성은 재현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화면을 만드는
사건이 된다. '수면' 연작에서 그는 여러 종류의 먹을 실험하며, 짙음과 옅음의 관계만으로 물결·그림자·빛이 뒤섞인 상태를 구성했다. 또한 배접하지 않은 종이를 벽에 직접
설치하거나, 배채법을 응용해 종이 뒷면의 색을 은은하게 비치게 하는 방식은 회화를 단지 평면 이미지가
아니라 물질과 공간이 만나는 장면으로 확장시킨다.
2021년
이후의 'CMYK'(2021) 연작은 권세진의 형식 실험이 다른 방향으로 깊어진 사례다. 그는 동양 문화권의 탁본 방식을 연상시키는 전사 과정을 통해 풍경 사진을 캔버스에 옮기고, 채색 단계에서는 잉크젯 프린트의 원리인 CMYK 중 Cyan, Magenta, Yellow의 세 색만을 사용한다. 〈Yellow Line〉(2021), 〈Window〉(2021), 〈Sunrise〉(2021) 같은 작업은 사진의 기계적 인쇄 구조와 손으로 그리는 회화의 시간을 한 화면 안에서 겹친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는 사실적으로 유지되면서도, 미세한 색의 흔들림과
붓질의 반복을 통해 오래된 인쇄물처럼 퇴색한 시간의 감각을 얻게 된다.
《Perpetual》 이후의 작업에서는 화면이 더욱 간결해지면서도 감정의 밀도는 높아진다. 작가는 해외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찾은 퍼페추얼 캘린더 이미지를 바탕으로 〈7월 2〉(2023), 〈Today 31〉(2023) 등을 제작했고, 이후에는 숫자와 빛, 그림자만 남긴 'Today' 연작으로 나아갔다. 이 작업들은 구체적 사물의 재현을 바탕으로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평면성, 반복적 붓질, 미묘한 색차, 사각형의 구조가 만드는 추상적 리듬에 더 가까워진다. 최근 〈Quite Time_Lily〉(2026)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보면, 권세진은 구체적 풍경에서 출발해 점차 기억과 시간의 기호를 다루는 쪽으로 이동하면서도, 여전히 사진과 회화 사이의 긴장을 자신의 언어로 붙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