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는 구겨지고 찢어지는 성질을 갖는다. 종이를 자신의 콤포지션의 바탕으로 선택한
작가는 자신의 의사-캔버스를 일단 찢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사각형의
종이는 작가의 마음 상태나 조건에 따라 다른 식으로 찢어지고, 우연성을 제한하는 마음으로 이의 일정
상태의 불가항이 콤포지션에 놓일 수 있는 완전한 무대로서의 자격을 상실한다. 바탕이 의당 가져야 할
전제를 거부하므로, 바탕이 우연적 퍼포먼스 자체이기에, 무엇보다
관객의 시선을 끄는 것이 울퉁불퉁해진 종이 가장자리이기에, 이미 여기서부터 박다솜 작가의 작업의 특수성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종이의 속성이 먼저 눈으로 들어오거나 종이의 속성을 전면에 드러내는 작업의 성격에
대해. 통상 찢어진 종이는 실수이거나 종이-이후의 상황이거나
종이의 끝이다. 찢어진 종이는 더 이상 종이가 아니다. 종이의
뒤나 끝이 종이에서 선행한다. 아닌 종이의 끝을 종이에 앞서 보여준다.
유사-캔버스는 고장이 났거나 망가졌거나 뒤틀려 있다. 사각의
프레임이란 관념을 온갖 형상의 종이, 이미 망가진 종이가 대신한다. 뒤가
앞에, 결론이 시작에 선행한다. 시간의 질서, 논리적 전후관계가 비틀려 있다. 종이이므로 겨우 벽에 세워진 종이는
그대로 작가의 망상이나 착란, 혹은 멋대로의 연출을 잘 견뎌낼 것이다.
캔버스를 통해서도 그런 작업 방식은 숱하게 가능했고 가능할 것이지만, 작가의 방식은 더
극단적이다. 자신의 인물이나 형상들, 이미지를 견고한 바탕이나
단단한 지지대나 안전한 배경은 허락하지 않기에, 이런 영상화가 어지럽고 들쭉날쭉한 바탕을 고집한다. 일부러 찢은 종이, 벽에 세워진 것이라기보다는 벽에 겨우 매달린
것에 가까운 바탕을 먼저 고백하는 이런 전략,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를 자인하는 이런 무능은 물론 세계로부터
등을 돌리는 적절하고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삶은 동시에 죽어가는 것이고 시작은 이미 결론에 사로잡혀
있고 인정은 곧 자기-부정에 다름 아님을 계속 보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닌 대신 죽음과 결과와 부정에
집착한다.
혹자는 이런 전후관계 뒤집기를 선매 혹은 선제포용(preemption)이라고
불렀다. 예정된 결말, 자꾸 잊고 견제하는 결말인바 패배와
죽음에 마침내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대신에 내가 자처해서 불러들이는 것, 당하고 무너지기 전에 이미 맑고
밝은 눈/정신으로 환대하는 것, 나는 부재할 장면을 내가
연출하는 것, 그러므로 즐기는 것. 작가는 그런 뒤집기를
이미 알고 있다. 작가는 “상실을 내재한 변형”, “결말인 죽음”을 계속 보는 것,
그러므로써 “변형의 순간을 상실로 만들지 않기 위해, 상실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전략을 구사하려 한다. 부단한 변화와
차이는 결국 상실과 죽음에서 멈출 것이다. 그걸 아는 사람은 필멸의 진리에 겸허하게 무릎 꿇거나 그
진리에 괄호를 치는 대신에 그 진리와 놀이를 시작한다.
상실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함몰에 합당한 자신만의
무대를 설치하고 그곳에서 합을 즐기는 것이다. 작가는 “꿈의
방법론”을 빌려와 자신이 “믿었던 것들이 즐겁게 무너지는
상상”의 무대를 설치한다. 한낱 꿈들, 편평한 이미지들, 납작한 기호들이 마구잡이로 자신들의 내적 논리에
따라 무한히 결합하고 대체되는 그런 꿈의 방법을 통해 작가는 죽음도 상실도 치워진 현실의 논리와 죽음과 상실의 진리 사이에서 이승을 견디고 즐기려한다. 비극은 아니다. 작가는 단단한 것들이 “즐겁게 무너지는” 무대를 불러온다.
심지어 작가가 즐겨 사용하는 색조는 노랑이다. 노란색은 명랑함과 긍정을 위한 색이다. 즐거운 몰락에 바쳐진 노랑. 무력하게 찢어지고 엉성하게 매달려있지만
그렇다고 비극도 우울도 초라함도 아닌 세계의 가능성. 꿈의 방법은 견고하고 단단한 것들의 보호를 받는, 관념의 질서에 종속된 현실을 추방한다. 논리와 질서 혹은 관념의
구조에서 감각은 오작동하면서 자기 생을 쟁취한다. 자신의 이미지, 인물들, 형상들을 보호하고 지켜줄 바탕을 만들지 ‘않으려는’, 이런 처음부터 실패를 전제한 암중모색의 ‘내부’를 읽거나 보거나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감동이나 비극이나 교훈이나
처세나 감상과 같은 우리의 ‘전제’도 찢어져 있을 것이고, 너덜너덜한 큰 종이 한 장에 중요한 부분은 다 찢겨나간,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종이조각들 같은 형상들이 오려붙여진 듯 그려진, 이 “종이에
유화”를 보기를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