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울의 작업은 회화를
하나의 ‘이미지 생산 장르’로 다루기보다, 회화를 구성하는 조건 자체를 탐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는 붓, 물감, 캔버스, 프레임이라는
물리적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분석하고, 그 물질적 조건 위에 자신만의 규칙을 설정한다. 2019년 첫 개인전 《Uncolored》(아트딜라이트갤러리, 2019)에서 선보인 〈After De Kooning No.10〉(2018)과 같은 작업은
이러한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 추상표현주의의 역사적 맥락을 참조하되,
표현의 자유 대신 ‘168가지 색을 혼합 없이 민주적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을 전면에 둠으로써, 회화를 감정의 표출이 아닌 조건의 실행
과정으로 전환했다.
이 시기의 ‘After De Kooning’ 연작은 특정 미술사적 인물에 대한 오마주이면서도, 동시에 그 이름을 하나의 실험 장치로 사용하는 작업이었다. 화면을 168개의 색면으로 분할하고, 1mm 이내의 틈을 남겨두는 방식은
추상 회화의 자유로운 제스처를 이성적 통제 아래 재구성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색이 무엇을 상징하는가가
아니라, 색이 어떤 물질적 속성을 지니고 어떤 조건 아래 놓이는가이다.
회화는 더 이상 내면의 심리적 드라마를 펼치는 장이 아니라, 물질과 규칙이 충돌하고 배열되는
실험 공간이 된다.
또 다른 개인전 《뷰티풀
마인드》(아트딜라이트갤러리, 2021)와 《아름다운 영혼을
위한 소나타》(디스위켄드룸, 2021)에서 전개된 ‘필버트 패밀리’ 연작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한 단계 더 밀어붙인다. 이제 그는 미술사적 참조 대신, 회화의 가장 기초적 도구인 붓에
집중한다. 〈필버트 패밀리 No.9〉(2020)과 같은 작품에서 필버트 붓의 타원형 단면은 하나의 모듈이 되고, 다이아몬드, 격자, 하트 등 다양한 패턴은 그 모듈의 반복과 변주에서 파생된다.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붓이 그릴 수 있는 형상을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된다.
2023년
이후 ‘스칼라 앤 벡터’ 연작으로 이어지며 그의 관심은 색의
물성에서 색의 힘으로 이동한다. 〈스칼라 앤 벡터 No.5〉(2023), 〈스칼라 앤 벡터 No.12〉(2024), 〈스칼라 앤 벡터 No.16〉(2025) 등에서 색은 더 이상 동일 비율로 분배되는 요소가 아니라, 질량과
방향성을 가진 에너지로 다뤄진다. 색의 면적, 밀도, 진입 방향은 화면 안에서 물리적 힘처럼 작동하며, 회화는 하나의
장(field)으로 재구성된다. 이 과정에서 그의 작업은
조건의 회화에서 역학의 회화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