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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장욱진과 최민영, 상상과 현실을 가로지르는 세계의 서사
2025.02.12
우진영 | 미술 칼럼니스트
최민영, 〈해 달 차〉, 2024, 리넨에
유채, 150 x 200cm © 최민영
장욱진 〈마을〉과 최민영 〈해 달 차〉
“쓰쿠루는 자신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손은 점점 희미해졌고, 발은 마치 땅과의 연결을 잃어버린 듯 공중에 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속 한 장면이다. 주인공
쓰쿠루는 꿈을 통해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를 끊임없이 오간다. 여기 상상 속에 사실을 담고 꿈속에서 현실을
그려낸 근현대의 두 화가가 있다. 근대의 장욱진과 현대의 최민영이다.
(…)
상상 속에 피어나는 기억의 재현
만남이란 사소한 계기로 시작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좋아하는 작가가 같다거나 하는.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뜬 영상에서 그녀가 말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다” 본인의 작품세계를 설명하면서. 최민영의 개인전 《꿈을 빌려드립니다》을
보러 마곡동으로 향한 이유다.
짙고 찬연한 색들이 쏟아진다. 마침 햇살이 비껴들어서일까.
전시장의 가벽까지 색들이 퍼지는 듯하다. 영하 10도의
날씨였다. 손과 발의 찬 기운이 남아서일까. 통창 가까이에
바짝 다가섰다. 빛이 더 쏟아진다. 그 순간 초록이 반짝거린다. 바로 옆 작품에서. 〈해 달 차〉(2024)와
마주섰다.
유난히 한파가 잦은 날들이었다. '여름인가? 부럽네’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모든 초록이 모여 있는 듯하다. 연둣빛이
펼쳐져 있다. 가득하게. 그 뒤로 짙은 녹색을 두른 산이
보인다. 여유롭다. 사람들은 드문드문 앉아있다. 느긋하다. 이 초원으로 들어가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시린 발끝에 온기가 돈다. 찰나였다. 날아오르는 사자가 보인다. 평온함에 살짝 균열을 낸다. 긴장이 몰려온다. 다시 본다. 시선을
깊게 둔다. 차를 마시는 두 소녀들에게. 다르다. 왼쪽 소녀는 낮에 오른쪽 소녀는 밤에 머문다. 예단은 부서졌다. 한낮의 풍경화라 여겼는데. 겸연쩍다. 현실의 장면인 줄 알았건만. 낯설어진다. 전시장 안에 서 있는 내가. 꿈인 걸까.
불현듯 한 마을이 떠올랐다. '마콘도’.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 속 장소다. 줄거리는 한 줄 요약이 가능하다. 콜롬비아의 가상 마을 마콘도(Macondo)가 생겨나 사라지기까지를
부엔디아 가문 7대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첫 장에 질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복잡한 가계도를 맞닥뜨렸다. 똑같은 이름들이 끝없이 반복된다. '비현실적이야’ 첫 느낌이다. 몇 번의 좌절을 딛고 읽어나갔다. 빠져들었다.
노란 나비들이 몰려든다. 청년 마우리스키가 등장할 때마다.
그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듯이. 신비롭다. 곧 다시
현실로 끌어당긴다. 날개가 찢겨졌다는 세세한 관찰의 문장을 읽다 보면.
어지럽다. 진짜일까 가짜일까. 마콘도를 세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아는 연금술을 열정을 다해 학습한다. 실험은 과학적이고 결과는 마술적이다. 과거와 미래가 뒤섞여 버렸다. 밤낮으로 실험을 이어갔던 장소에서. 경계가 흐려진다. 진실과 거짓말 사이에서.
의심은 흘러 들어갔다. 다시 〈해 달 차〉 속 모든 장면들로. 풀밭이 맞을까? 질문들이 부풀어간다. '아닐걸? 다시 생각해?’
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늘로 올라가는 연들에게서. 형광을
머금은 연둣빛 끝선을 짚어본다. 혹시 지평선이 아닐까. 희미한
선들이 움직이며 다가온다. 며칠 전 스마트폰의 알람이 떠오른다.
'19년 전 소중한 추억 감상’ 구글 포토가 보낸 메시지다. 손끝으로 밀어 올린다. 거칠게 깎인 절벽에 기댄 앳된 내가 있다. 확신했다. 자신 있게. 다음 사진을 보지 않아도 그때 그 장면을 알 수 있다고. 눈을 감아본다. 아스라이. 수평선이
눈에 감긴다. 파도와 세차게 부서진다. 절벽 도로의 밑으로. 모든 것을 삼킬 듯이.
대학교 2학년을 마친 겨울 방학이었다. 중학교
친구가 유학 중인 호주로 갔다. 10시간을 날아가니 여름이었다. 분명
두꺼운 니트를 입고 비행기에 탔는데. 변덕스러웠다. 호주의
날씨는. 멜버른은 특히나 그러했다. 뜨거운 낮을 탐험했다. 온몸으로. 섬세하게 부서지는 해안선을 바라본다. 에메랄드색이 퍼져나가고 있다. 바다의 물결이 절벽에 자라난 식물들과
만났기에. "신비로워” 동시에 새어 나온 말이었다. 오랜
친구와 마주보며 웃었다. 맞다. 닮았다. 알아챘다. 〈해 달 차〉에 드리운 연둣빛과 초록을 가로지르는 그
묘한 색채들과.
알았다. 최민영이 그려내는 색의 마법을. 멀어졌던
기억을 불러온다. 생생하게. 이 회상은 오늘은 미화되었다가
다음날은 아프게 다가온다. 〈해 달 차〉 속 태양 아래의 녹음과 밤하늘의 먹구름처럼. 이는 현실일까, 비현실일까. 경험일까, 상상일까. 두 소녀에게 묻고 싶다.
조심스럽게. 태양과 달빛을 나누어 함께, 아니
각자 앉아 있는. "관심이 없다”라고 답하려나. 조금
쓸쓸해진다. 서로에게 아무렇지 않은 현대인 같아서.
"살아온 각각의 나라와 그 장소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최민영은 답한다. 그가
그려내는 상상과 실제가 공존하는 장면들에 대해. 최민영은 유년 시절 미국과 일본에 머문 경험이 있다. 이후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지내며 서울대학교 서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영국의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런던에서 작업한다. 다녀가는
삶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리움이 피어난다. 발견했다. 〈해 달 차〉의 풍경 속 좁게 내어진 물길 옆 예스런
주전자와 연적들을. 조선시대 책가도에 등장하는 기물들 같다. 과거
속 한 장면으로 들어가고 싶다. 예스러움에 취한 채로.
해와 달은 함께 있다. 서로를 비추면서. 기묘하기보다
자연스럽다. 어느새 최민영이 만들어 낸 시공간에 빠져들었다.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초원 가운데에 앉아본다. 하늘을 향하는
사자에게 부탁하고 싶다. 과거의 아팠던 기억을 날려 보내 달라고. 바라본다. 꿈이 아닌 현실로 이뤄지기를. 어떤 상상이든 가능한 최민영이 그려낸
세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