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영의 그림에는 언제나 동물이 등장한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물고기, 고양이, 달팽이, 거북이
등은 단순한 도상이 아니라, 인간과 감정을 나누는 동반자이자, 기억과
상상 사이를 유영하는 존재들이다.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어은동(魚隱洞, ‘물고기가 숨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지명)처럼, 이 생명체들은 작가의 정서적 토양에서 떠오른 기억의 잔해이며 무의식의 표상으로 살아 움직인다.
〈풍경(어항)〉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어린 시절 키우던 열대어의 잔상에서 비롯되었지만, 작가의 화면 속에서는 훨씬 더 복합적인 정서의 언어로
변모한다. 때로는 달빛에 감싸여 성스럽게 떠오르고, 때로는
돌무더기 사이에 남겨진 이방인(異邦人)처럼 그려지며, 말로 옮기기 어려운 감정을 대변한다.
〈하교〉에서처럼, 콘크리트 도시 위에 환상적 생명체가 출현할 때, 우리는 깨닫는다. 도시인의 무의식과 신화적 상상은 같은 뿌리에서
솟아나며, 회화는 그 둘을 조용히 병치해 감정의 장을 만든다. 이때
‘색’은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시각화하고, 현실과
상상을 연결하며, 감정의 깊이를 끌어올린다. 그의 회화는
언제나 이야기보다 감정에서 시작한다. 수천 장의 색연필 드로잉은 형태를 위한 밑그림이 아니라, 감각의 구조를 탐색하며 사유(思惟)와
형상을 함께 키워낸 흔적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닫히지 않는다.
몽환의 병치, 상상의 무대
그의 회화는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의 대기적 감성과 호흡을
나눈다. 그리고 아르히프 쿠인지(Arkhip Kuindzhi)의
화면처럼, 그의 회화는 빛을 단순한 조명이나 하이라이트가 아닌 독립된 존재로 다룬다. 쿠인지가 황혼의 광원을 통해 신비롭고 초월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면, 최민영은
달빛과 인공광의 미묘한 교차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든다. 또한 그의 색채 감각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과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 탐구한 색의 물리적 환영과 맞닿는다. 공간 전체를 색으로 채우며 감각적
지각을 전복시키는 그들의 방식처럼, 최민영은 색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물리적 현상처럼 구현하고, 관객의 정서를 조율한다.
달빛은 물 위에 길을 내고, 인공광은 유리창을 스치며 장면의 구조를 넘어서 정서가 머무는
공간을 설계한다. 관객은 그 앞에서 시간과 감정이 겹쳐진 장면에 조용히 멈춰 선다.
특히 가로 6.8미터에 이르는 대작 〈밤 수영〉에서,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달빛과 화면 하단의 모닥불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하나의 감정 지형으로 엮는다. 달빛은
과거를 감싸고, 불은 현재의 체온을 품는다. 그 교차 속에서
관객은 환상의 세계를 떠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깊은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