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빌려드립니다》 전시 전경(스페이스 K, 2024) ©스페이스 K

유영하는 삶을 그려온 최민영 작가, '어은동'에서 '피쉬 아일랜드'까지, 감각의 문을 열고 상상의 바다로

최민영(b.1989)은 런던 해크니 위크(Hackney Wick)의 피쉬 아일랜드(Fish Island)에서 그림을 그린다. 과거 땅콩 가공 공장이던 그의 작업실과 주변은 도시 개발의 속도에 맞춰 끊임없이 변해 왔다. 창고였던 공간은 갤러리와 카페로 탈바꿈했고, 물닭과 잉어가 유영하는 운하는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는 경계처럼 흐른다. 도심과 변두리의 성격이 공존하는 피쉬 아일랜드는 이질성과 친숙함이 맞물리는 공간이다. 작가는 그 낯선 조화를 화면 위에 고스란히 옮긴다.

그의 회화에는 늘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 하나는 현실의 선명한 ‘낮’, 다른 하나는 무의식이 속삭이는 ‘밤’이다. 변화하는 도시 일상 속에서 이중의 시간은 현실처럼 익숙하면서도 꿈처럼 아득한 감각으로 다가오고, 그의 화면 안에서 섬세하게 구현된다.

그의 작품은 ‘이상한 일이 벌어지지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세계’인 꿈과 닮아있다. 그는 이 모순적인 정서를 회화의 언어로 조율하며 관객을 상상의 세계로 이끈다. 그가 구현하는 ‘몽환적 병치’는 초현실주의(Surrealism)의 자동기술(Automatism)처럼 즉흥적으로 분출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감정과 기억이 압력처럼 눌려 형성된 풍경이다. 그 안에서 비현실적 장면은 오히려 현실보다 더 진실하게 다가오고, 이야기는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따라 이어진다.

최민영, 〈풍경(어항)〉, 2023, 린넨에 유채, 170x220cm ©최민영

최민영의 그림에는 언제나 동물이 등장한다.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물고기, 고양이, 달팽이, 거북이 등은 단순한 도상이 아니라, 인간과 감정을 나누는 동반자이자, 기억과 상상 사이를 유영하는 존재들이다. 작가가 유년 시절을 보낸 어은동(魚隱洞, ‘물고기가 숨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지명)처럼, 이 생명체들은 작가의 정서적 토양에서 떠오른 기억의 잔해이며 무의식의 표상으로 살아 움직인다.
 
〈풍경(어항)〉에 등장하는 물고기는 어린 시절 키우던 열대어의 잔상에서 비롯되었지만, 작가의 화면 속에서는 훨씬 더 복합적인 정서의 언어로 변모한다. 때로는 달빛에 감싸여 성스럽게 떠오르고, 때로는 돌무더기 사이에 남겨진 이방인(異邦人)처럼 그려지며, 말로 옮기기 어려운 감정을 대변한다.

〈하교〉에서처럼, 콘크리트 도시 위에 환상적 생명체가 출현할 때, 우리는 깨닫는다. 도시인의 무의식과 신화적 상상은 같은 뿌리에서 솟아나며, 회화는 그 둘을 조용히 병치해 감정의 장을 만든다. 이때 ‘색’은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시각화하고, 현실과 상상을 연결하며, 감정의 깊이를 끌어올린다. 그의 회화는 언제나 이야기보다 감정에서 시작한다. 수천 장의 색연필 드로잉은 형태를 위한 밑그림이 아니라, 감각의 구조를 탐색하며 사유(思惟)와 형상을 함께 키워낸 흔적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닫히지 않는다.



몽환의 병치, 상상의 무대

그의 회화는 윌리엄 터너(William Turner)의 대기적 감성과 호흡을 나눈다. 그리고 아르히프 쿠인지(Arkhip Kuindzhi)의 화면처럼, 그의 회화는 빛을 단순한 조명이나 하이라이트가 아닌 독립된 존재로 다룬다. 쿠인지가 황혼의 광원을 통해 신비롭고 초월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면, 최민영은 달빛과 인공광의 미묘한 교차를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든다. 또한 그의 색채 감각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과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 탐구한 색의 물리적 환영과 맞닿는다. 공간 전체를 색으로 채우며 감각적 지각을 전복시키는 그들의 방식처럼, 최민영은 색을 통해 감정의 깊이를 물리적 현상처럼 구현하고, 관객의 정서를 조율한다.

달빛은 물 위에 길을 내고, 인공광은 유리창을 스치며 장면의 구조를 넘어서 정서가 머무는 공간을 설계한다. 관객은 그 앞에서 시간과 감정이 겹쳐진 장면에 조용히 멈춰 선다.

특히 가로 6.8미터에 이르는 대작 〈밤 수영〉에서, 물 위를 가로지르는 달빛과 화면 하단의 모닥불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하나의 감정 지형으로 엮는다. 달빛은 과거를 감싸고, 불은 현재의 체온을 품는다. 그 교차 속에서 관객은 환상의 세계를 떠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깊은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최민영, 〈밤 수영〉, 2024, 린넨에 유채, 220x680cm ©최민영

꿈꾸는 방, ‘어은동’에서 ‘피쉬 아일랜드’까지

대전의 ‘어은동’에서 런던의 ‘피쉬 아일랜드’에 이르기까지, 최민영은 물고기처럼 유영하며 삶을 이어 왔다. 그의 회화에서 물고기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유년기의 감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미지이며, 기억과 무의식의 수면 아래에서 꿈처럼 떠오르는 형상이다. 우리는 최민영의 회화가 열어놓은 감각의 문을 지나, 무의식과 오감을 담은 상상의 바다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그 깊고 조용한 물속 어딘가에서,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장면 하나가 작은 기억처럼 피어난다.

그것은 오래전 잃어버린 꿈의 잔광이거나, 아직 도착하지 않은 감정의 기척일지도 모른다. 분명 존재하지만, 우리가 끝내 다다를 수 없을지도 모를 장소. 그러나 그곳을 향해 열리는 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의 꿈은 여전히 유효하며 희망적이다. 그 문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은 단지 하나의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잊은 채 품고 있었던 말하지 못한 이야기이다. 이제, 당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줄 차례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