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to see you》 전시 전경(갤러리 룩스, 2021) ©유재연

이미지는 무엇을 어떻게 전하는가? 꽤나 단순하고 명료한 저 물음으로부터 회화사는 써 내려졌던 것일 테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미지로 무엇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 그리고 그 이미지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누릴 것인지를 당대의 예술은 각기 다른 위치에서 고민해 왔다. 일반적으로 이미지는 ‘상(像)’으로서, 그 자체가 다른 특정한 대상들을 비추어내는 역할을 수행한다. 여기서 대상이란 발화자의 입장에서 선택하는 하나의 고정된 상수(常數)라고 할 수 있으며, 도상은 그 상수에 의해 변경 가능한 변수(變數)가 된다. 여기서 대상이라는 상수는 제 범위를 규정함에 있어 그 형식이나 내용의 차원에서 따로 한계를 두지 않음으로 이를 투영하거나 표상해내는 변수의 결정상에 비할 때, 때로는 무관해 보이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 말인즉슨, 이미지라는 표현 형식의 범주가 포괄할 수 있는 내용의 차원에서 그 어떠한 제한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상은 단수이거나 복수일 수도, 멈추었거나 움직일 수도, 결과이거나 과정일 수도, 물리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일 수도, 내용이거나 형식일 수도, 구상이거나 추상일 수도 있으며, 그에 따라 변하는 값인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두 차원의 형상은 일치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이들이 상호 동일한 형태를 취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 관계의 동등함이 상실된 것은 아니다. 이미지가 내포하는 이와 같은 위상을 회화라는 예술 영역으로 한정해 보자. 물론 그것은 일차원적 단순 재현을 위주로 전개된 전통적 회화의 역사적 맥락과는 엄연히 구분되며, 언어라는 인간의 의사소통 도구가 갖는 은유와 상징의 경험을 일정 부분 누적하는 상태를 앞서 내세운다.

고로 이미지와 대상 그리고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 범위, 또는 이미지 단독으로서 제 존재 의미를 규명하는 데에도 이제 다단한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 이 장(場)으로부터 이미지는 점차 전달의 기능을 주요한 자기 역할로 상정하면서, 그제야 온전히 그 무엇과도 전치할 수 있는 언술적 매개체로서 일어섰다. 이를테면 서정적 언술을 통한 서사의 실현, 그리고 그 도중에 은연하게 선보이는 발화 주체의 이미지 구축 따위의 체계가 출범했다는 것이다. 그렇듯 예술의 영역, 특히 회화(성)의 범주 안에서 매체로서의 이미지 존재가 굳건하게 선 순간, 그 창작의 주체인 예술가는 오롯이 자기 의사에 의해 자기 정체성을 자유로이 설정할 수 있는 일종의 미적 자율 허가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 승인에 따라 예술가는 전달과 발화를 행하는 그 누구의 지위를 막론하고 그것을 자기 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그리는 도상도 단지 표면적인 재현의 깊이 그 이상이나 이하, 나아가 도상을 기준으로 하는 그 이전과 이후의 시간을 상기할 수 있게 했다.

유재연이 그리는 청색의 도상은 이미지가 자신을 스스로 중심에 두고 벌이는 이상의 사태를 한껏 품어낸다. 일견 그가 펼친 도상은 너무나도 명쾌해 뵈지만, 그것이 담고 있는 인지 감각의 독특한 높이와 넓이로 인해 막상 그의 이미지를 쉬이 떠나기는 쉽지 않다. 작가는 작업을 위해 그의 삶에 깃든 다층의 경험을 파편화한 형태로 수집하고, 이를 다양한 감상 층위의 타래로 가공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 타래들은 특정 계기를 통해 유재연이 상정하는 어떤 상황들을 직조하는 데에 쓰인다. 그처럼 삶이라는 경험의 큰 줄기에서 솎은 단상의 파편들을 이미지로 갈무리해 두고, 언젠가 다시 이를 헤집고 조합하는 식의 작업 과정은 넉넉한 해찰의 시간을 작가에게 보장한다는 이유로 유효한 듯하다.

그가 취하는 이 재맥락화의 방법론은 기존의 회화 역사에서 구상화가 주로 점유하던, 대상과 도상을 잇는 직결적 서사 전달 방식과는 분명 다른 분류를 요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굳이 따져 묻는다면, 시지각적 측면에서 유재연의 작업은 환상 문학과 유비한다. 환상 문학의 규명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루는 내용에서의 초현실성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와 더불어 텍스트를 통해 구축하는 형식적인 세계관이 한 부분을 이룬다. 토도로프(TZVETAN TODOROV)는 이를 “현실에 기반한 환상”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유재연의 도상 또한 그것의 음화(NEGATIVE) 방식, 즉 배경으로서의 현실성과 더불어 환상적 사물이나 인물을 외삽(外揷)시키는 식의 역전적 배치 구도를 내재한다. 결국 현실과 환상을 연계하는 문학적 상상력의 투사 비율을 일정한 균형으로 형성케 조정하는 것이 유재연의 도상을 생성하는 핵심적 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미지텔링(IMAGETELLING)은 관람의 입장에서 얼마만큼 주저하거나 주저하지 않은 채로 그 이미지를 마주할 것인지를 감상의 차원에서 판단토록 한다. 그러나 유재연의 표현과 구성에서 만연하게 드러나는 공상적 특징과 함께, 푸른 밤의 풍경을 실제 목도하는 가운데 그가 밝히고자 하는 상상계(THE IMAGINARY)와 상징계(THE SYMBOLIC) 사이의 간극이라는 주제를 곧장 알아차리기는 어려울 거다. 따라서 환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판단하며 겪는 어떤 망설임(HESITATION)의 지점은 작가의 혼성적 설계 안에서 새로운 출입구를 마련한다.

평소 이렇듯 분절된 세계 간의 괴리에 관심을 두었던 그가 최근 코로나바이러스-19(COVID-19)의 창궐로 시행된 극단적 봉쇄(LOCKDOWN) 상황에 주목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차례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개인전 《GREAT TO SEE YOU》(갤러리 룩스, 2021)를 통해 유재연이 선보이는 작업은 작가의 〈밤 산책자(NIGHT WALKER)〉 회화 및 조각 회화(PIECE-PAINTING) 연작을 잇는 근작들로, 작가가 기반하는 런던에 봉쇄령이 내려진 이후에 제작한 작품이다. 격리 상황 속에서 보다 극명하게 나뉜 세계는 이원화를 넘어서 한층 더 다원화되기 시작했다. 도리어 공상의 과정을 거쳐 힘겹게 분리해내야 했던 현실, 그리고 그 현실을 떠나 안착하려 한 환상계라는 세계 배치 구도에 코로나로 인한 일상이라는 또 다른 열망의 척도가 끼어들면서, 작가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생의 의지를 각각의 세계를 향해 부여한다. 본 전시를 구성하는 일련의 작업에서 작가가 그간 추구해 온 괴리의 극복, 그 화해의 시도를 위한 태도와 그 몸짓이 유독 극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마 그러한 급작스러운 변화 현상에 기인할 것이다.

주체와 타자들의 삶과 정체성 그리고 관계를 현현하던 질서와 규칙들은 유재연의 공상과 함께 전복되었고, 다시금 일으켜졌으며, 예상치 못한 작금의 상황으로 다시 분열의 시점을 맞았다. 시공은 점차 복잡해졌고, 괴리는 더 극명해졌다. 그리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일은 더 어려워져 버린 오늘날을 우리는 살게 된 것이다. 유재연의 공상이 열어젖힌 이 초현실 세계는 과거와 현재, 이상과 현실 그리고 이곳과 저곳 등을 구분하기 위한 경계를 가리키는, 동시에 상징에 저항하면서도 그렇다고 상상도 아닌 그 무엇, 정신분석의 주된 관심 영역이기도 한 욕망의 실상으로서 발현하는 무의식적 환상, 그리고 마침내 발견하게 된 공백의 안식처, 이 모든 시간과 공간을 교차하고 겹쳐내는 과정을 통해 남겨진 무엇이다.

라캉(JACQUES LACAN)은 이러한 환상을 주체의 욕망이 충족되지 않기에 피할 수 없는 “실재계(THE REAL)”라 명명했는데, 유재연이 그린 환상 도상의 배경은 이 실재계와 많이 닮았다. 이때 그림에 등장하는 주연 인물은 곧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하는 “잃어버린 욕망의 대상”이면서도, 다른 한편 실현 불가능한 작가 스스로를 은유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라캉이 제시하는 “대상 A(OBJET A)”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유재연은 현실에 지나치게 침잠하거나, 현실을 완전히 망각하는 충동적 단계까지 자신을 몰아치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닿을 수 없는 세계를 그저 관조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운명적 감수성을 받아들이며 취하는, 어느 정도 억제된 “주이상스(JOUISSANCE)”의 상태를 공유한다. 이로써 유재연의 회화는 간극의 개념이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양자적 입장, 다시 말해 간극을 극복하는 것 그리고 간극을 인정하는 것 사이에서 돌이켜진 다중적 서사와 이미지의 스펙트럼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어슴푸레하게 빛나는 작가의 밤은 바로 그렇게 우리를 제 풍경 속으로 불러들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