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in and Fever》 전시 전경(파이프 갤러리, 2025) ©파이프 갤러리

갤러리에 들어서는 순간, 관객은 화면을 가득 채운 살갗들과 마주한다. 크고 작은 캔버스 위에 확대된 신체의 일부는 때로 선명히 드러나고, 때로는 뭉개지고 뒤틀려 그 경계를 잃은 채 뭉툭한 살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것은 바로 파편화된 몸을 감싸는 표면의 감각과 온기다. 'Vein and Fever'(정맥과 (발)열)는 김찬송 작가의 개인전 제목이다. 정맥은 내부에서 흐르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감정의 통로이며, 열은 그 흐름이 피부로 번져 나온 감각의 징후이다. 이 전시는 마치 피부 아래에서 미세하게 일어나는 순환과 체온의 흔적을 전시장이라는 하나의 신체로 구현한 풍경처럼 펼쳐진다.
 
김찬송 작가는 오랫동안 '신체'라는 대상을 사유해 왔다. 2011년 졸업 이후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그는, 초기에는 얼굴 없는 익명의 신체나 이질적인 덩어리처럼 보이는 몸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익숙했던 자신의 몸이 돌연 낯설고 물성적인 감각으로 인식되는 순간에 주목한 것이다. 바로 그 낯섦이, 그에게는 회화를 통해 포착하고자 한 감각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탐구는 2021년 대전 테미 창작 스튜디오에서 열린 개인전 《공기가 살갗에 닿을 때》를 계기로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작가는 익명의 몸에서 나아가, '피부'라는 표면에 집중하며, 내부와 외부의 관계를 감각적으로 사유하기 시작했다. 특히 작업 설치 중, 우연히 자기 팔에 맺힌 땀방울을 마주한 순간은 결정적이었다.1 땀과 같은 통제 불가능한 신체의 생리 현상, 자신이 인식하기 전부터 외부와 호흡하며 생동하는 피부가 보여주는 변화는 작가에게 강렬한 실존적 자각을 안겨주었다. 바로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이후 그의 작업에서 피부는 단순한 형상의 외곽이 아닌 감각의 매개자이자 내부와 외부를 잇는 경계로 자리 잡게 된다.
 
이번 전시 《Vein and Fever》는 김찬송 작가가 지난 수년간 탐구해 온 사유의 연장선에서, 특히 '피부'라는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표면에 더욱 깊이 초점을 맞춘다. 작가에게 피부는 단지 인체의 외곽이 아닌, 경험이 스며들고 감각이 교차하는 가장 역동적인 접면, 즉 "확장할 수 있는 표면"이다. 이와 같은 접근은 함께 설치된 작품 〈The Skin of Water〉(2025)를 통해 확장된다. 이 작품은 '물'이라는 매질을 통해 피부에 대한 사유를 더 넓은 감각의 순환과 유동성의 층위로 끌어올린다. 살갗을 담은 회화들 사이로 드문드문 설치된 설경은 얼음, 수증기, 물이라는 상태를 오가는 물의 순환적 변형을 포착한 것으로, 작가는 이를 자신과 관계 맺는 매질로서 피부의 또 다른 비유로 삼는다.

여기에 또 하나의 모티프로서 '백합'이 등장한다. 〈Faded, Yet Still〉(2025)은 백합의 꽃잎이 활짝 피었다 시들고 떨어지는 과정을 세심하게 담고 있는데, 이는 피부의 상태 변화와 깊은 유사성을 갖는다. 피어나기 전의 팽팽한 꽃잎은 열을 머금은 살결처럼 보이고, 시들며 뒤틀리는 움직임은 감각의 끝자락에 선 피부의 불안정한 진폭처럼 읽힌다. 신체, 물, 식물이라는 상이한 존재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서로 공명하며, 결국 '피부'라는 감각의 언어로 하나의 풍경을 만든다. 이는 피부가 단지 개인의 물리적 경계가 아닌, 세계와 감응하며 관계 맺는 생생한 접면임을 환기시킨다.

김찬송, 〈The Skin of Water〉, 2025, 캔버스에 유채, 72.2x72.2cm ©김찬송

이번 전시에서 또 주목할 것은 비단 대상뿐만이 아니다. 설치 방식 역시 매우 의도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2층 전시 공간에 유난히 많은 창문이 있다는 사실은 작가에게 중요한 설치 조건이 되었다. 몇몇 작품은 창을 등지거나 응시하도록 배치되어 외부 풍경과의 물리적 접점을 강화한다. 관객은 그 앞에서 신체를 응시하는 시선과 창문 밖 풍경 사이에서 감각의 교환이 일어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예컨대, 눈을 클로즈업한 작품 〈Held〉(2025)는 창문 가까이에 설치되어 외부 풍경을 응시하고, 풀잎 뒤에 숨어 있는 신체 일부를 담은 〈Tails〉(2025)는 창밖 나무들과 겹쳐지며 환경과 신체의 감각적 연속성이 강조된다. 이처럼 공간을 적극적으로 고려한 설치는 우연한 배치가 아니다. 작가는 "작업을 하기 전, 이 작업이 어느 공간에 놓이면 좋을지 먼저 떠올린다" 라고 말하며, 화면의 크기, 폭, 주변의 시야 조건까지 포함한 장면적 상상 속에서 회화가 출발한다고 밝힌다. 따라서 전시는 단순히 '그림을 걸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회화가 머물 공간의 조건과 그 안에서 감각이 작동할 여백을 설계하는, 하나의 장면 연출처럼 다가온다.
 
이러한 공간적 구성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에 '행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다. 이는 작가의 제목 짓기 방식과도 긴밀히 연결된다. 김찬송 작가는 유사한 유형의 그림에 연작을 붙이지 않고 각기 다른 이름을 부여하는데, 이는 회화가 놓인 공간과 맥락에 따라 관객이 각기 다른 내러티브의 단서를 상상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같은 눈을 그린 작업이라도, 다른 전시에서 'Object'였던 것을, 이번에는 'Held'라는 제목을 붙였다. 전시 공간이 달라지면, 회화가 담고 있는 정서와 맥락 역시 새로운 감각의 장면으로 열리는 것이다. 작가는 작품이 관객에게 단일한 정서나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각기 다른 해석의 틈을 제공하길 바란다. 작업의 시작은 작가에게 무척 주관적인 '순간'에서 비롯되었지만, 우리가 특정한 공간에서 작품을 마주하게 될 때, 그 작품은 관객의 경험에 기반한 새로운 감각의 장면이자 여백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김찬송의 회화는 단순히 신체의 재현이나 피부의 묘사를 넘어서, 감각의 찰나적 단서—피부에 맺힌 땀, 낯선 포즈의 단면, 얼굴 없는 몸의 조각—들이 어떻게 시각적 흔적으로 전환되는지를 탐구한다. 그에게 피부는 단순한 경계가 아닌, 내부의 정동이 외부로 스며드는 장소이며, 감정과 기억, 에너지의 흔적이 새겨지는 감각의 표면이다. 전시 제목 'Vein and Fever'가 함의하듯, 피부 아래 흐르는 정맥과 그 위로 떠오르는 열감은 몸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어떻게 표면에 드러나는지를 보여주는 이중의 징후다. 《Vein and Fever》는 관객이 낯설고도 익숙한 표면이 만드는 징후들 앞에서 자신의 감각을 다시 의식하고, 몸이라는 경계 위에서 감응의 진동을 새롭게 호흡하는 시간이다. 작가의 시선과 회화가 열어주는 이 순간, 우리는 피부라는 존재의 표면 위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경계와 연결의 진동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1. 2025년 6월 10일 작가와의 인터뷰 중, 이후 인용한 부분은 모두 이날 진행된 인터뷰에서 작가의 말을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