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Shuffle》, 2025.12.16 – 2026.01.18, 성곡미술관
2025.12.16
성곡미술관
《Shuffle》
전시 전경(성곡미술관, 2025) ©정현두
오늘날 한국에서는 정통 회화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전시가 많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다비드 Jacques-Louis David나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또는 콘도 George Condo 전 같은 대규모 회고전이
꾸준히 개최되며 회화의 핵심적 가치가 지속적으로 조명받고 있다. 이는 회화의 역사적 가치를 넘어, ‘물감’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표현 매체가 지닌 시각적‧감각적 힘이 여전히 현재성을 지니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이미지가 무한히 복제되는 시대에도 인간은 아날로그적 감성, 즉
손의 속도와 호흡으로 만들어진 이미지, 물감의 질감과 붓의 압력, 종이나
캔버스의 물성을 통해 특별한 감각적 경험을 얻는다. 손으로 그린 선의 떨림과 흔적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은
단순한 향수를 넘어,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감각하는 고유한 방식에 대한 지속적 요구와 맞닿아 있다. 결국 회화는 시대를 초월해 감정과 상상력을 직접적으로 매개해온 표현 형식으로서 여전히 동시대적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곡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미술관 전관을 다시 ‘회화’라는 오래된 매체에 할애하며, 회화가 오늘 우리의 감각과 사고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살아 움직이는지 그 현재성과 가능성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오늘날 회화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성곡미술관 2025 오픈콜》은 한국의 세 젊은 작가가 회화를 기본 매체로 삼아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정현두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다양한 감각을 동시에 경험한다. 그의 회화는 완성된 결과보다, 그리는 과정에서 감각과 시간, 몸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변화를 포착하는 데 중점을 둔다. 그는
특정 대상을 재현하기보다는, 떠오르는 형체 없는 이미지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며, 팔과 몸의 움직임을 따라 붓질과 색을 통해 신체적 감각을 기록한다.
그는 그의 그림을 ‘덩어리-인물’같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가 말하는 '인물'은
구체적 인물이 아니라, 감각과 시간, 몸의 반응이 뒤엉켜
만들어진 형체 없는 존재다. 붓질로 남겨진 흔적은 눈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 전시장 가운데에 세워진
그림들은 서로 다른 시간의 감각이 응축된 ‘대상’으로서 전시 공간 안에서 잠시 관계를 맺고, 그 속에서
새로운 해석과 상상을 만들어낸다. 한편, 벽에 걸린 그림들은
제작 년도 순서로 배치해, 최초의 작업과 최근의 작업이 서로 만나게 구성된다. 이를 통해 각각의 그림들이 서로 섞이며, 관람자는 선형적인 시간을
원형적이고 다층적인 시간 경험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인 《shuffle》은 ‘무작위로 섞다’라는 뜻으로, 회화 속 시간, 이미지, 감각, 몸의 흔적을 뒤섞어 새로운 관계와 의미를 만들어내는 전략적 과정을 상징한다.
이렇게 정현두의 작업은 고정된 의미를 벗어나 계속 변화하며 새롭게 해석되는 열린 회화를 시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