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던지는 사람들》 전시 전경(스페이스 윌링앤딜링, 2019) ©정현두

2019년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PT&Critic 프로그램에 선정된 정현두 작가는 100호 크기 화면을 다채로운 색채와 붓의 흔적으로 가득 메운 추상회화 시리즈 9점을 선보였다. 스페이스 윌링앤딜링의 PT&Critic은 그간 첫 개인전을 해야 하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굳이 첫 개인전으로서의 프로그램으로서 진행했던 것은 좋은 작가들과 자신의 작업에 대한 불확실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래서 선배 작가들의 현실적인 조언을 가장 잘 흡수할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019년 부터는 PT&Critic 선정 대상은 더 이상 첫 개인전으로서가 아닌, 젊은 작가들 중 상호 의견 교환과 프리젠테이션의 경험을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작가로 그 대상을 변경하였다. 정현두 작가는 이미 2번의 개인전을 가졌었고, 작업에 대한 스테이트먼트를 몇 번 작성해 본 작가이다. 세대 간의 다른 방식의 방법론, 작업 서술에 대한 언어의 변화 등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젊은 작가들에게 언어를 교정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하는 것 보다는 그 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고, 자신의 언어를 이야기할 수 있고 이를 상호간에 최대한 이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PT&Critic은 말하자면 ‘세대 간 상호 이해의 장’ 정도로 만들어질 것 같다.

정현두 작가는 얼굴을 그린 것일까, 지운 것일까. 작가는 ‘던지는’이라는 뉘앙스가 주는 속시원함과 회화적 언어로서의 모호함 사이에 우리를 위치시킨 채 마치 수수께끼를 제시하듯 여러 가지 해석을 유도한다. 작가는 화면 위로 직관적인 신체의 움직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관객의 눈은 이 두서없어 보이는 자유분방하고 호기로운 움직임에 조응하며 작가의 언어를 탐색해 나간다.

이 작가의 캔버스에는 속도와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들이 있다. 전시 제목 《얼굴을 던지는 사람들》은 이미지가 단지 시각적 평면성에 그치는 환영이 아닌,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신체를 관통하여 구현된 결과물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리즈를 구성하고 있는 각 아홉 점의 그림은 이번 전시 이전에 작가가 드로잉 연작 제작의 방법론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세 장의 종이를 두고 하나의 이미지를 그린 후 이들의 배치를 바꿔가면서 같은 과정의 그리기를 진행하였다. 결과적으로 벽에 걸리는 세 장의 그림은 서로 이어지는 부분과 분리되는 부분이 동시에 존재하게 된다. 이는 이번 전시의 캔버스들이 하나하나의 개별 이미지로, 혹은 벽 전체에 걸린 모든 이미지의 연결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초기 작업에서 숲의 풍경을 그리고, 숲을 구성하는 몇 가지 요소에 집중하여 재현하였다. 재현의 방법은 일반적으로 눈으로부터 받아들인 시각정보의 서술이었다. 보이는 특정 풍경 자체가 전달하는 묘한 감정을 옮기기 위하여 해당 장면을 담는 행위였지만, 작가는 이 내 이런 재현의 방법이 결국에는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 다. 즉 시각정보로부터 추출된 주관적 감정은 그 객관적 형태의 묘사 과정에서 혹은 그 묘사된 장면에서 다시 이끌어내기에는 이미 일정 틀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정현두 작가는 다시 이미지를 지워 나갔다. 사라진 형태 끝에 남은 작가의 움직임의 흔적은 원래의 형태를 가차 없이 지워나가는 물아일체된 역동적인 태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이미지를 지운 캔버스 표면에는 또 다른 이미지가 만들어진 셈이다.

정현두 작가의 작업 표면에 그려진 혹은 발려진 물감의 흔적은 그 자체로 조형 언어가 될 수도, 그가 보고 있는 대상 자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가 머리 속에서 떠올리는 특정 단어가 시각 이미지로 현현되었을 때, 몸의 제스쳐가 더해진 손끝에서 발현된 특정 색과 형 태는 작가가 원하는 바로 그 대상을 선명하게 구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초기 작업에 서 환기하듯(*녹취록 참조) 눈앞의 화면을 묘사하기 보다는 눈앞에 있는 대상으로부터 실재 감각할 수 있는 촉각들을 화면으로 옮기는 과정이 그의 회화이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