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0-Person Perspective》 © Gyeonggi Creation Center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 없이 많은 장면을 지나친다. 대게는 반복적인 장면을 지나칠 수 있고 그 장면을 시간이라는 단위에 기대어 분류하고 기억하기 마련이다. 이마저도 의식적으로 기억을 찾아 거슬러 올라갈 때이며 시간의 단위는 찰나를 기억하기엔 너무나 순간이자 형식적인 분류일지 모른다. 오전이나 밤, 며칠이거나 몇 시가 아닌 그 때, 여기에서의 ‘때’ 가 시간의 어떤 순간이나 부분이 아닌, ‘장면’ 혹은 ‘풍경’ 이라는 상황으로 분류하여 일상을 기억하는 방법을 취한다면 ‘그 때’는 어긋난 것일까?

‘풍경’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본다. 풍경은 일상의 단어라고 하기에는 그다지 쓰임이 없는, 특별히 그러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거창하기 이를 데 없는 단어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장관이라 불릴만한 자연을 마주할 때가 아니면 대체로는 미술의 영역에 해당하는 상황에서나 쓰임이 있는, 그마저도 ‘풍경화’ 나 ‘산수화’ 같은 자연을 담은 명칭 따위에 부여된다. 이미 어떤 모습 ~scape처럼 수많은 단어가 이어져 다양한 풍경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Landscape, Cityscape. Nightscape, Mindscape 등 나열하자고 마음만 먹으면 이 한 페이지는 다 채울 수도 있지 싶다. 이쯤에서 다시금 ‘풍경’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자연경관이나 경치의 영역이 아닌 어떤 상황이나 순간, 장면에 집중하는 형태의 단어로 지칭하는 의미가 되어본다.

여기 이상한 풍경의 그림이 있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말을 해줘도 알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풍경. 어딘가 지워진 흔적, 무언가 남겨졌거나 남아있는 잔재의 파편들. 감추려 하지만 선명하고, 흐트러짐을 통한 강조된 드러내기 같은 흐름이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보이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이 있다. 보고 있지만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때로는 무언가 보이기도 하지만 실재적이지 않을 수 있다 느낀다. 그래서 유독 이 그림들을 보고 있자면 눈에 보이는 형상을 따라가 보게 된다. 남겨 놓지 않았지만 무심히 흩뿌려 놓은 발자취를 따라 눈과 머리를, 그리고 마음을 움직여본다. 운동감이 전해진다. 가볍게 시작할 것 같은 움직임은 점차 무거워지기도 한다. 예상했던 것 보다 묵직한 움직임이다. 너무 가볍거나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무거움이 아닌, 적당한 무게감이라고 해야 할까? 일정한 패턴이 있지는 않다. 다만 종종 느껴지는 운동감은 자연스럽게 반복적으로 스며들어있으며, 이 때 일정한 율동감이 살아난다. 자유로운 율동감은 나도 모르게 어느새 도치되어 무의식의 흐름처럼 유유히 리듬위에 놓여있다. 리듬은 다시 일정한 율동 속에서 빗나감을 드러내고 사라짐을 반복한다.

어긋난 풍경. 어쩌면 확장된 풍경이라 말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다만 ‘확장된다’라는 범위에서의 풍경이 단순히 큰 범주의, 통상적으로 말하는 자연의 경관의 확장이 아닌 풍경의 영역 자체가 벗어남에서 오는 일종의 유쾌함이자 통쾌함이 동반됨을 말한다. 그림과 나의 사이에서, 작가와 나의 사이에서, 그림과 작가의 사이에서 끈임 없이 빗나가고 어긋난 ‘그 때’를 추적하고 따라간다면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는 그 지점에 조금은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