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0-Person Perspective》 © Gyeonggi Creation Center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작가에게는 작업의 시작과 끝에 있어 주관적 판단의 준거가 작용한다. 이 기준에 따라 회화를 위한 실행을 거듭할 때, 생성된 이미지들은 의도된 것이건 그렇지 않건 일종의 경향성을 띠게 된다. 또한 이미지는 축적, 유통, 소비의 과정과 연동되며 한 작가의 작업 세계를 구획 짓는다. 다만 정현두에게 이 순환의 사이클은 종종 의문에 부쳐진다. 그는 경향성이 만들어내는 형식이 주관적 감각을 가시화하는 결과물임을 인지하면서도 이것이 감각적 자유를 제한하는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한다. 그에게 회화를 구성하는 지지체는 그를 평면에 몰두하게 하는 근본적인 동력이면서 매 순간 극복해야 할 선입견이다. 그림에서 의식적/무의식적 판단들이 초래한 사건이 지나치게 반복되거나 더 이상 유의미한 서사를 생산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그는 이로부터 탈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듯하다. 따라서 형식 안으로의 침잠 그리고 그 밖으로 이탈하는 의미 규정 이전의 몸짓, 이것들의 만남과 충돌이 반복되며 회화적 실험이 계속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그의 작품에는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범주에 속하는 이미지를 도출하는 경우의 수를 늘리고자 하는 시도가 드러난다. 일상에서 체득한 감각과 기억의 얼개들이 평면 위에서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개연성을 얻을 수 있는지 가늠하는 불확실하고도 흐릿한 시간이 반복된다. 그에게 영향을 미쳤을 크고 작은 진동이 날것의 색과 붓터치로 옮겨져 비정형의 자국을 남긴다. 그러나 중첩되는 행위의 결과물이 형식적 실험의 지대 안에만 머무른다는 느낌보다, 그가 그림과의 관계를 능동적으로 조율하며 두 항(작가-회화) 사이의 지속 가능성을 탐색하고 대화의 외연을 넓혀간다는 인상을 준다. 말하자면 질문은 더 나은 형식의 결과물을 위한 것이기 보다 유연한 회화적 언어를 획득하기 위한 태도와 위치 설정에 관한 것이다. 필자와 나눈 대화에서도 그의 관심은 무엇을 재현하는가에 관한 것에서 다소간 멀어져 있었음을 다시금 떠올린다.

정현두에게 회화는 완벽히 통제 가능한 객체나 나와 분리된 별개의 타자이기보다, 그와 같은 위치에서 사유의 틀과 움직임의 방향을 제시하는 힘이다. 또한 작업을 해나가는 시간뿐만 아니라 그가 캔버스 앞을 떠나 있을 때도 작품이 그와 주변에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욕구가 곧 회화를 상생하는 유기체로 다루고자 하는 태도로 연결된다. 그가 견지하는 시점은 한시적 개체(object)가 아닌 현상학적 경험을 현재의 감각으로 이행(transitive)시키는 일종의 기류(current)와도 같은 회화를 생각하게 한다. 단일한 형상을 지탱하는 각각의 평면은 현실에서 살아있는 것으로서 그 방향성과 윤곽을 끝없이 조정하며 주체적으로 의미의 공간을 창출할 수 있다. 바로 이 관점이 회화를 견고한 물리적 한계들 안으로 함몰시키지 않은 채 자율적인 신호체계로서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의 근작 앞에서 선행되어야 할 읽기는 그가 여러 평면과 맺었을 관계의 방식과 거리, 그 사이에서 발생한 유무형의 에너지들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지금 그림과 그는 충분히 가까운가? 혹은 충분히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가? 그의 회화는 생산자로부터 부여받은 임의의 형태를 넘어 스스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가? 재현된 이미지의 영역 밖에서 그림은 어떤 감각을 전달하고 있는가? 지금 작가와 대면하고 있을 또 다른 그림은 현실에서 어떤 경험을 창출하는 장이 될 것인가? 위와 같은 질문들이 수반될 때, 정현두의 회화는 건조한 명사의 나열이 아닌 동사의 능동태로 존재하며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더 많이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