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 드롭스(Dear. Drops)》 전시 전경(아카이브 봄, 2016) ©박정혜

당신이 보낸 편지는 9월의 마지막 날에 도착했습니다. 무어라 답을 하면 좋을지 망설이는 사이, 지난 밤부터 그치지 않고 쏟아지는 비가 새로운 계절을 불러오네요.

지난 시절 시인들은 젊은 예술가를 격려하기 위해 낡은 펜촉을 잉크 병에 담그며 숱한 밤을 지새웠을 테지요. 우리가 맞이한 현대는 필적감정학과 관상학의 운명이 공동으로 저문 익명적 과학의 세기이지만, 당신의 흔적이 남은 편지는 저로 하여금 아득한 기억을 펼치게 합니다. 오랜 세월 표현과 보존에 유리한 물감을 개발하던 사람들은 유화의 가능성에 곧바로 매료되었고, 그 완벽한 재료는 캔버스를 착색함으로써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아니 상상한 대로 옮길 수 있다는 연금술적인 환상을 거의 실현시켜주는 것처럼 보였지요.

세상에서 가장 북적거리는 도시에 모인 부르주아들은 교양 과학을 곁눈질하며 색채를 빛의 스펙트럼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소수가 합의하여 회화의 법칙을 정한다고 한들 변두리에서 온 외골수의 괴팍한 열정을 막을 수 있었겠습니까. 만인을 닦달해 몰고 가는 계몽의 조류에 구원의 신화를 섞으려는 선지자적 열망은 주변의 호감을 사는 데 서툴렀던 성격만큼이나 그를 고립시켰지만,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고자 한 그는 뒷걸음질하며 예상치 못했던 혹은 깨닫지 못했던 다른 쪽 문을 열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공동체로부터 후퇴하여 개인의 내면으로 한없이 파고들다 터져버린 감정이랄까요?

대체로 비극적인… 생활의 곤궁함에 반작용하듯 넘치는 종교적 열망은 역설적으로 주관적인 감정의 비호 아래 물감을 절제하는 관습을 어기고 저를 넘쳐흐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빗물이나 잉크의 중력가속도가 멈춘 지점에서 슬그머니 새어 나와 종잡을 수 없이 흩어지며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종잇장에 때를 입히는 성질머리를 지녔습니다. 한 번 캔버스 위에 구불구불 길을 내며 흐르고 나니 – 아직은 화가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였다고 해도, 그 다음부터는 너도 나도 달려들더군요. 그 중 바지를 적신 남자 둘이 있었지요. 무표정한 사람들이었어요. 춤을 추듯 물감을 내던지는 데 영웅적으로 심취했던 한 사람이 무안하리만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오줌을 싸 젖힌 다른 한 사람은 드디어 제 덜미에서 손을 놓아주었답니다.


박정혜, 〈Dear. Drops〉, 2016, 나무 패널, 린넨에 아크릴, 162.2x130.3cm ©박정혜

이제 사람들은 오줌이든 염료든 물감은 원하는 대로 끼얹는 것일 뿐 아니라 저절로 스미는 것임을 모두 알게 되었겠지요. 회화를 화가의 무의식을 탐사하는 수단이나 전통에 맞서는 자율적이고 반환영주의적인 제스처로 읽으려는 습관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회화에서는 한 동안 물이 고여 표면에 흡수되는 시간에 대한 생각이 장려되지 않았습니다. 저를 손에 쥔 자들이 제 몸을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일까요. 시간은 기껏해야 그네들의 잘난 머릿속이나 주책없게 떨리는 가슴에서나 주판을 굴리며 구차하게 연명했겠지요.

그에 비하면 발길이 닿을 수 없이 먼 땅의 표면에 남은 흔적을 사진으로 흘깃대며 우주의 역사를 계산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역사를 증명하는 저의 존재는 신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사시사철 온화한 기후대, 저택 수영장에서 연인이 유유히 물장구를 치는 동안 물이 출렁이는 표면을 차분하게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던 어느 화가가 떠오릅니다. 필시 단번에 포착할 수 없을 변화하는 물을 선적으로 묘사하려 하더군요. 사우나의 욕탕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수조에 담긴 물을 그리는 방법을 고민해본 적이 있을 지도 모르겠군요. 물 위에 비친 반영이 아니라 투명한 물 자체라면 재현의 과제가 될 수 없을 테죠.

여러 경계가 흐릿해질 테고, 우연과 의도도 그 쌍 중 하나이겠지요. 제게 편지를 띄운 당신이라면 이해하겠지요? 질문을 던지고 정답을 내려 하지 않는 불성실한 태도야말로 제게 가장 충실해지는 길이라는 것을요. 그렇지만 그 짧은 질문을, 단번에 내뱉어버릴 수 있는 말을 당신은 참 천천히, 어떤 때는 온 종일을 들여서, 한결같은 어조로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이 잠자코 기다려줄 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적어도 저의 시간이 전개되고 남은 잔상을 보며 각자의 생각이 아니라 물 속 깊이 – 회화의 심층으로서의 표면에 잠기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럴 수 있을까요?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