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너무 많은 ‘서정’이 있다. 서정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글은 미술의 중심이 된 서정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돌파하려는 황예지의 특징을 반서정 혹은 비서정으로 범주화하기보다
여전히 서정의 테두리에서 관점과 개념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의 사진에는 ‘나’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엔
자명한 ‘나’가 지워져 있고, 무엇으로든 변화할 수 있는 ‘나’의
역량은 소실되어 있다. 자아의 나르시시즘을 벗어나 점멸하는 비아(非我) 사이에서 ‘나’가 아닌
것을 향해 나아간다. 동시에 타인을 자기화하는 서정적 메커니즘을 포기하고―애초에 그럴 능력은 버렸으므로― 타자와 만나기 위해 사진의 연출적
권력을 거부하는 실험을 거듭한다.
작가는 또한 자연을 풍경화해 가상의 아르카디아를 구축하려는 갈망과
위안을 기각한다. 이는 점차 탈물질화돼 가는 현실에서 ‘가상의
가상’을 건설하려는 공모를 꿰뚫고 있다. 그에게 자연은 당장의
직접적인 현실(reality)이 아닐지 모르나, ‘나’와 ‘타자’가 함께 있는 ‘실재(the Real)’을 향해 나아간다. 자아란 사실 무력하다는 것, 자아는 타인에게 영원히 가닿을 수 없다는
것, 자연은 동떨어진 형이상학이 아니라 상처를 지닌 세계의 연장이라는 것. 무력하고 외로운 그리고 상처를 목도하는 사진은 위협적이다. 그렇다고
그가 아름다움을 저버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전히 서정의 세 항에 매달린 그의 사진이 아름답지 않다면
비평은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서정은 세계와 싸울 때조차도, 아름다움을
위해, 아름다움과 함께 싸워야 한다. 변혁론? 그것은 서정이 급진화될 때 도래하는 것 아닌가.
References
서동진, 「“서정시와 사회”, 어게인」, 『동시대 이후: 시간―경험―이미지』, 현실문화연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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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문제는 서정이 아니다」, 『몰락의 에티카』, 문학동네, 2008, pp.181–203.
신형철, 「시의 천사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2018, pp.270–273.
Theodor
Adorno, “On Lyric Poetry and Society,” Notes to Literature vol.1,
trans. Sherry Weber Nicholsen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1), pp. 37–54.
* 이 원고는 예술경영지원센터 지원 특별 기고로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