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성, 〈빛나는 마음이 모여든 풍경〉, 2024 © 주용성

2024년 연말의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적 참사라는 비극 속에서 더없이 혼란스러운 시간이었다. 안전한 세상을 위해, 서로에게 힘이 돼주기 위해 거리에 모인 사람들, 국가권력과 폭력에 맞서는 시민의 소식이 SNS의 피드와 미디어의 기사로 쉼 없이 올라왔다. 멀리 해외에서 거리감을 두고 있는 나는 집회에 나가는 친구와 동료들의 안부를 물으며 그네들의 말과 기록을 매일같이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맨손으로 탱크 앞에 선 시민, 경찰에게 손난로를 건네는 시민, 케이팝 응원봉을 통해 결집한 형형색색의 빛들, 이른바 ‘덕후’의 정체성을 행동주의로 드러낸 다채로운 깃발까지. 공권력에 맞선 여러 투쟁의 현장을 기록해 온 주용성 작가가 2024년 12월 13일에 촬영해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는 응원봉에서 퍼진 빛망울들이 하나하나 단단히 맺혀 따뜻한 빛의 연대를 이룬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여의도에서의 집회 현장을 기록한 그는 이 장면을 〈빛나는 마음이 모여든 풍경〉(2024)이라 부른다.

2030 세대 여성을 중심으로 확산한 최근의 집회에서 돋보이는 것은 연결과 연대의 감각이다. 케이팝 팬덤 문화에서 확산하여 투쟁의 깃발과 손팻말로 퍼져 나간 “00야, 살기 좋은 세상 만들어 줄게”라는 문구는 ‘최애(가장 사랑하는 멤버)’에서 시작하여 친구이자 동료를 너머 미래의 시민들을 향한 연대 의식을 칭하는 말이 되었다. 과거 거대조직이 주도한 ‘적폐청산 사회대개혁’의 동시대 버전의 언어로서 비장함보다는 평화의 의지를, 거시적 선언보다는 미시적 변화의 의지를 담아 권력과 폭력에 맞선다.

페미니즘으로 기성 사회에 맞서온 2030 여성들의 커뮤니티는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새로운 정치 주체의 발현으로 이들이 문화 정치의 새로운 챕터를 이끌고 있다. 각자도생의 삶 속에서 소시민들의 연대, 허약하고 소외된 개개인과 소수자들의 용기있는 드러남은 연결과 연대의 가능성, 이로부터 구축된 공공 영역이야말로 부당한 권력에 맞설 수 있는 시민들의 공간임을 증명해 보인다.

그러한 가운데 한남동 대통령 관저 근처에서 있었던 집회 현장에서는 한밤에 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위해 화장실을 내어준 수도원과 전시장을 집회 참여자들을 위한 쉼터로 개방한 갤러리 영상이/사진이 SNS에 올라오면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예술 작품 주위로 은박담요를 몸에 두른 시민들이 공존하는 장면은 오늘날 예술 공간이 민주주의에 어떻게 참여하고 공공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시사점을 남긴다.


권준호의 시국선언 포스터 2025 ‘시대 정신’ 프로젝트 © 권준호

2000년 이후 동시대 전시는 만남, 교류, 집회 등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참여의 장을 마련하고자 노력해 왔다. 새로운 시민성의 발현과 문화정치의 역량이 대두되는 시기에 전시라는 플랫폼은 어떻게 현실 세계와 연결되어 소통해 나갈 수 있을까? 앞서서 언급한 갤러리의 사례처럼 유연한 공공영역으로서 전시장에 진입한 관계가 갖는 잠재력은 어떠한 실천으로부터 연장이 가능할까? 쏟아지는 질문들은 전시라는 형식에 대한 관습을 탈피하는 것에서부터 답을 찾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전시에는 예술을 세상과 연결하는 방법론 및 예술 제도, 예술 규범, 관람객과의 소통 방식, 그리고 상상력이라는 잠재력 사유와 대안적 사고관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공공영역의 민주적 조직이 모색되는 현시점에서 전시는 관습적인 형태를 넘어 기성 제도와 규범에 맞서 대결하면서 미래를 상상하는 대안적 영토로서 재조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질문과 고민 속에서 얼마 전 그래픽디자인 63팀이 연대한 ‘시대 정신’ (일상의실천 기획) 프로젝트는 동시대 디자이너들의 시국선언 작업이 SNS, 웹플랫폼(1월 24일 오픈, https://manifesto.ing), 오프라인 전시(2.24~3.17)로 전개되어, 대항적 시각문화와 사회참여의 확산을 기대하게 한다. 미학과 정치 사이에서 존재하는 가능성을 시민 동료와 현실 세계로 확장하고, 예술 내부의 패권적 공간을 벗어나 공공 영역으로 변화해 나가는 실험은 2025년 전시라는 형식 너머의 과제로 주어져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