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수(b. 1990)는 키네틱 아트, 사운드, 조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표면 아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는 객관적인 수치화 또는 신체적 감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시간의 본질이 가진 간극을 공감각적이고 비선형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며, 의식적 세계의 이면으로 초대한다.


이호수, 〈Pendulum Project (Time Machine)〉, 2017, 혼합매체, 가변크기 ©이호수

이호수의 작업세계는 2017년부터 전개해 온 ‘Pendulum Project’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시공간의 비선형성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한 이 프로젝트는 사운드, 키네틱 퍼포먼스, 회화, 조각 등을 통해 공감각적인 경험을 이끌어 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전의식(preconscious)의 상태로 유도한다.  


‘Time Machine’ 아이디어 스케치 ©이호수

이 프로젝트의 대표작인 ‘Time Machine’ 시리즈는 진자 운동에서 착안한 최면적인 움직임과 사운드를 동원한다. 이 작업은 “우리가 시간의 개념을 몰랐던 시기는 언제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였다. 이에 작가는 대부분의 사람이 어느 순간 어린 시절의 일상적인 기억과 함께 시공간에 대한 경험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유아 기억상실증이라는 현상에 주목했다.  
 
작가는 이러한 현상이 사실은 시공간에 대한 기억을 상기시킬 수 있는 어떠한 메커니즘을 상실한 것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더 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 시간을 되살릴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하기 시작했다.

이호수, 〈The Symphony of Time Machine〉, 2018, 키네틱 설치, 퍼포먼스 ©이호수

그렇게 만들어진 ‘Time Machine’ 시리즈의 첫 번째 작업은 어린 시절 자주 타던 그네의 움직임과 놀이터라는 공간에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유아기의 경험과 맞닿아 있는 건축물을 제작하고 연출함으로써,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개념을 통해서가 아닌 본질 그 자체로 감각했던 시간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촉매제로서의 작업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호수, 〈Time Machine II〉, 2023, 혼합매체, 96x67x320 cm ©이호수

나아가 2023년에 제작한 두 번째 ‘Time Machine’ 작업 〈Time Machine II〉는 고대의 의식과 지금의 의식의 차이를 유아 기억상실증과 연결 지으며 시작되었다. 작가는 줄리언 제인스가 그의 저서 『의식의 기원』(1976)에서 고대 인류의 의식 체계는 지금과 달리 양원적이었다고 본 것에 주목했다.
 
책에 따르면, 과거 우리 안에는 신과 인간의 목소리가 구분되어 있었지만, 문명의 발달로 문자나 기록의 행위가 자리잡은 이후 어느 순간 신들의 목소리가 우리의 내면에서 사라지게 되었고, 양원적 정신이 붕괴한 자리에 자기 성찰을 하는 내성(introspect)을 특성으로 하는 ‘의식’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호수, 〈Time Machine II〉, 2023, 혼합매체, 96x67x320 cm ©이호수

작가는 이러한 변화를 유아 기억상실증과 연관 지어 사유했다. 즉, 고대의 양원적 정신과 유아기의 전의식 상태를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보며, 그 정신성이 반영된 고대의 피라미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 〈Time Machine II〉를 제작했다.


이호수, 〈Time Machine II〉, 2023, 혼합매체, 96x67x320 cm ©이호수

피라미드를 형상화한 기둥에는 진자 운동을 하는 시계추가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최면을 거는 듯한 느낌을 자아내는 가운데, 이와 함께 흘러 나오는 사운드는 어떠한 내부에서부터 진동하는 듯한 알 수 없는 소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작가가 청진기를 사용해 신체 내부의 소리를 녹음한 것으로, 우리의 감각 체계로는 의식 불가능한 내부의 원초적인 소리를 포착하고 증폭시킨다.


《시-공간 여행: Space-Time Travel》 전시 전경(윈드밀, 2023) ©이호수

2023년 윈드밀에서 열린 개인전 《시-공간 여행: Space-Time Travel》은 이러한 작품 〈Time Machine II〉를 중심으로 선형적인 시공간의 개념을 뒤흔드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는 우리가 이 땅에 발붙여 일상을 지속하는 와중에도 어떻게 시간의 상대성을 체감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시-공간 여행: Space-Time Travel》 전시 전경(윈드밀, 2023) ©이호수

그 결과물로 제시된 작품들은 마치 심장 박동이 생명체 내의 혈액을 순환시키듯 진동하는 진자처럼 각자의 리듬과 속도 속에서 다르게 펼쳐지는 사건들의 집합으로 등장했다. 이들이 만들어 내는 다감각적이고 비선형적인 환경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의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환기하는 데에서 나아가 존재론적인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Time And Machine》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25) ©이호수

그리고 2025년 OCI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Time And Machine》을 통해 이호수는 그간 오랜 시간 전개해 온 ‘Time Machine’ 시리즈를 장소라는 개념으로 더욱 확장시키면서, ‘Time’과 ‘Machine’이라는 개별적인 장소, 구간, 그리고 개념을 분리시켰다.
 
기존의 탐구를 확장한 결과물로서의 전시 《Time and Machine》은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조각적 몸체로 다룬다. 이전 작업에서는 관객이 거리를 두고 개별 조각 개체를 감상할 수 있었다면, 본 전시 《Time And Machine》에서는 조각이 하나의 상황으로 변신하여 관람객을 그 안으로 끌어들였다.


이호수, 〈Time〉, 2025, 공압 파이프, 솔레노이드, 삼나무, 히노키 합판, 미러 폴리싱 스테인리스 스틸, 충전식 배터리, 맞춤 제작 PCB 등, 390 × 88 × 10cm, 《Time And Machine》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25) ©이호수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작품 〈Time〉(2025)은 반사되는 표면을 가진 거대한 시계추가 움직이면서 공간을 투영하고 점유한다. 한편, 시간의 불가항력에 최면이 걸리듯 어두운 통로를 지나 마주하게 되는 작품 〈Machine〉(2025)은 낯섦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기이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이때 그 둘 사이를 매개하는 어두운 통로는 현실에서 경험하는 어떤 감각 체계 그 이상의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장소로 이어지는 통로이자, 〈Time〉과 〈Machine〉 사이의 틈, 즉 ‘And’에 해당하는 공간이다.


《Time And Machine》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25) ©이호수

다시 전시장 내부의 작품 〈Machine〉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그 안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바깥의 감각을 담고 있었다. 전봇대와 실외기, 콤프레서와 저장 컨테이너, 이를 둘러싸고 있는 진입금지 펜스 등은 마치 사람이 사라진 풍경처럼 전시장 내부 공간을 점유하며, 안과 밖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그리고 작품 안에는 안과 밖의 경계뿐 아니라 인공물과 자연물이 서로 뒤엉킨 조형물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어떤 것들은 새 것처럼 보이는 한편 어떤 것들은 낡은 상태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 중간 상태에 있는, 즉 산화되어 가는 인공물은 사물 고유의 시간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연의 흐름 속에 놓인 상태로 제시되며 인공과 자연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Time And Machine》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25) ©이호수

이와 함께 설치되어 있던 다양한 사운드 시스템은 기계 설비에서 흘러 나오는 각종 기계 작동음을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가령, 기계의 원초적인 소리들은 우퍼를 통해 저음으로 방출되거나, 전봇대 위 혼 스피커를 통해 플랫한 소리로 확장되어 퍼지거나, 로터리 스피커를 통해 인간의 귀로는 들리지 않는 아주 낮은 인프라 사운드를 구현하는 등 다양한 영역대의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Time And Machine》 전시 전경(OCI 미술관, 2025) ©이호수

이렇듯 《Time And Machine》에서 이호수는 ‘Time Machine’을 구성하는 두 단어 사이에 틈을 벌리고 그 사이에 접속사를 끼워 넣음으로써, 시간과 기계가 각각 존재하기보다는 기계의 운동성이 시간을 발생시키고 변형하며 감각하게 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안과 밖, 본질과 외양 그 사이를 부단히 움직이는 기계의 운동성은 우리에게 낯선 시간을 열어 놓으며, 차원의 벽을 허물고 사유할 수 있는 틈을 마련한다. 이러한 이호수의 작업은 신념의 공백과 존재의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동시대 조건 속에서 ‘기계적 의례’라는 새로운 수행 구조를 제시하며, 새로운 감각 질서와 영적 프로토콜을 탐색한다.

 "의식의 감각적 경계를 넘어 우리는 어떻게 시공간을 경험할 수 있을까? 시간과 공간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까?"  (이호수, 작가 노트) 


이호수 작가 ©이호수. 사진: 송석우.

이호수는 시카고예술종합대학교(SAIC) 순수미술 학사를 졸업하고 현재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Time And Machine》 (OCI 미술관, 서울, 2025), 《시-공간 여행: Space-Time Travel》(윈드밀, 서울, 2023), 《On the Verge of Consciousness》(Greenpoint Gallery, 브루클린, 미국,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우리는 섬처럼 떨어져 있을지라도》(대구예술발전소, 대구, 2024), 《Sonic Arts Biennale》(Het HEM, 네덜란드, 2024), 《National Juried Show》(First Street Gallery, 뉴욕, 미국, 2022), 《Portraiture: Photography Now》(Black Box Gallery, 포틀랜드, 미국, 2020), 《Data Corpse》(Chelsea College of Arts, 런던, 2018)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이호수는 2025 OCI YOUNG CREATIVES 및 2025 아르코데이 ‘아티스트 라운지’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2020년에는 Greenpoint Gallery가 주최한 ‘Emerging Artist Prize’를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