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호, 〈야~호〉, 2007, 종이에 먹, 122.5 x 111.5 cm © 유승호

깨알같이 새겨진 문자나 점으로 이루어진 유승호의 작품 앞에 선 관객들은 일단 작품의 표면에서 발견되는 그 엄청난 노동력에 놀란다. 거기에는 농부가 논에 모를 심는 듯한 육체적 노고가 그대로 전해진다. 전업 작가로 작품에만 매달려 열심히 작업하고도 1년에 3점이 나올까 말까한 밀도 높은 작품의 형상을 이루는 글자들이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가벼운 내용들로 채워지는 것은 역설적이다. 작가는 문자로 상징되는 의미의 무거움을 무한 반복을 통해 비워내고, 작품을 자신이 정한 놀이 원칙이 관철되는 장으로 만든다.

표면을 점과 문자로 빼곡히 채워가는 원칙만 분명하고 모든 것이 불확정적이다. 이러한 불확정성이 그의 작품을 단지 노동이 아니라, 예술의 차원에 속하게 한다. 글자는 의태어와 의성어들이 많다. 로켓 발사 때 나오는 ‘슈’, 산골짜기에서 메아리치는 ‘야호’, 슬며시 흘러나오는 웃음 ‘히히히’, 무엇인가 ‘우수수’ 떨어지는 느낌들이 형태를 채운다. 형태소를 이루는 글자들은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은 중력이 느껴지며, 희박한 공기 속에서 밀도 차이에 의해 서서히 분산되는 듯하다.

그의 작품의 형태소를 이루는 것은 주로 한글이다. 영어나 한문, 숫자는 별로 발견되지 않는다. 단어는 단지 형식을 꾸미기 위해 동원되는 소재가 아니라, 형태와 내적 관계를 맺고 작품의 내용과도 관련된다. 한글은 표음 문자로, 분해된 이미지와 잘 어울리며 정확하지는 않지만 내포적 다양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유승호의 작품에는 심오한 의미를 담으려는 심사숙고가 아니라, 탄식처럼, 탄성처럼, 노랫말처럼 일상 속에서 즉흥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한글 문자가 많이 발견된다. 그 밖에 흔히 사용하는 영어 표현과 한글 사이의 동음이의어 말장난도 발견된다. 글자들은 작가가 최소한의 방향성을 설정한 의미와 관련되지만, 문장이 되지는 않는다. 형태소로서의 글자들이 이합집산 할 뿐 분명한 경계를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분명한 실체보다는 사이와 관계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다. 초기부터 드로잉을 중심으로 작업해왔던 작가는 목탄이나 콘테로 하는 드로잉에서 경계가 흩어지는 요소를 발견한다. 유승호의 대표적인 스타일로 알려진, 글자로 이루어진 산수풍경에서 이러한 경계 소멸은 정점을 이룬다. 화선지에 그어진 먹 선이 퍼지듯이 경계는 모호해 진다. 잉크 성분이 먹인 5mm 이하 굵기의 로트링 펜으로 동양화를 그리는 종이에 그린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수묵화이다.

작가는 ‘형상이나 이미지가 뿌옇거나 흐트러지거나 부유하거나 연약해 보이고, 그냥 있다가도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고 말한다. 화사한 바탕색에 수많은 점으로 이루어진 추상화는 시각성 보다는 청각성이 두드러진다. 그의 작품에 두드러진 문자성(literacy)은 쓰기와 그리기를 일치시키는 근대적 스타일이 아니라, 말하기와 덧붙이기라는 방식, 즉 구술성(orality)이 특징적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