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다현(b. 1995)은 크고 작은 스티로폼 조각에서 컴퓨터 그래픽에
이르기까지 복제를 주요한 수단으로 삼아 다양한 매체를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작가는
현재 우리의 삶 가까이에 있는 현상이나 사물을 스티로폼, 박스, 종이
등 가벼운 재료로써 재현하며, 오늘날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을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전달한다.

남다현은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책을 복제하는 평면 작업을 시작으로, 이후
설치, 퍼포먼스와 같은 경험의 영역으로 복제의 개념을 넓혀 나가기 시작했다. 그에게 있어서 복제는 단순히 재현의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닌, 동시대성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우리가 이미 만들어 낸 것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술이다.
작가는 자신이 속한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사회적인 현상들과 직접 경험한 일들을 바탕으로 복제할 대상을 선별한다. 그 대상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위기에 놓인 서울 용산구의 우사단로, 제프
쿤스의 ‘풍선 개’, 소셜미디어의 다양한 밈 등 다양하다.

예를 들어, 2019년 보광동에 자리한 룬트갤러리에서 열린 개인전
《#21》에서는 갤러리 맞은편에 위치한 오래된 세탁소를 스티로폼, 박스, 각목, 종이, 비닐 등의
재료로 복제하였으며, 2020년 개인전 《#22》에서는 충무로역
통로에 위치한 갤러리의 특징을 살려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한 가짜 개찰구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22》
전시 전경(오!재미동 갤러리, 2020) ©남다현이처럼 일상 속 익숙한 공간이나 사물 등을 복제하는 그의 작업은 쉽게 지나치던 사소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며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때 작업의 색감과 질감은 이러한 생경함을 극대화 한다. 가령, 지하철 개찰구를 복제한 《#22》에서는
은색을 표현하기 위해 아크릴 물감과 스프레이 페인트, 은박지를 사용하며 다양한 질감과 느낌을 만들어
냈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 부분은 전통적이고 익숙한 회화의 느낌을 자아낸다면, 작은
입자로 고르게 표면을 착색하는 스프레이 페인트는 금속의 재질을 더욱 잘 재현하여 도시적인 느낌을 낸다. 한편, 은박지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구김을 통해 작업의 조각적인 요소를 부각시킨다.
남다현, 〈#23-5〉, 2021, 스티로폼, 박스, 보드, 종이, 나무에 아크릴릭, 잉크, 호일
등, 230x350x80cm ©남다현한편, 2021년 갤러리 요호에서 열린 개인전 《#23》에서 남다현은 팬데믹으로 인해 현시대가 겪고 있는 삶에 대한 서사를 ‘여행의
흔적’을 통해 엮어내고자 하였다. 전시는 여행길에서 마주할
수 있는 대상과 풍경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울러 작가는 갤러리로 사용되기 이전 게스트 하우스였던 건물의 특징을 반영해 전시 공간을 실제 게스트 하우스처럼
탈바꿈 시켰다. 그러나 이 또한 견고한 재료 대신 종이와 박스, 은박지
등 가볍고 사소한 소재를 사용해 복제함으로써 어딘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즉, 그의 작업은 형태는 실제와 매우 흡사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볼
때 그것이 가짜임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실제와 허구 사이의 모호한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작품의 아우라로
드러나는 일련의 환상, 대상에 깃든 추억 등을 함께 보여준다.

이후 남다현의 작업은 ‘복제’에
대한 개념을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나가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2021년부터 전개된 〈환전소 프로젝트〉는 단순히 환전소라는 공간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환전’이라는 경험 자체를 복제한다.
여기서 관객은 실제 돈을 지불하고, 그에 상응하는 ‘가짜’ 화폐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겉으로는 일반적인 금융 거래와 닮아 있지만, 그 결과로 교환되는
것은 아무런 실질적 가치를 갖지 않는, 즉 무용한 기호들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반복하는 경제적인 행위와 그것의 구조에 질문을 던진다.

이후에도 작가는 금전 거래의 형식을 활용해 제프 쿤스의 풍선 개를 모방한 풍선 작품을 1천원에, 포켓몬 카드 팩은 5천원에
판매하는 관객 참여형 작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90년대생인 작가의 추억 속 강렬하게 자리한 포켓몬이라는
대상을 복제한 작업은 단지 과거 순수한 기억을 모방하는 데에서 나아가, 갑갑한 현실을 상징하는 신용카드
또한 함께 포함시킴으로써 진짜와 가짜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 사이의 간극을 극대화 시킨다.
또한 이처럼 거래를 바탕으로 한 남다현의 작업은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일 뿐 아니라 미술 작품에 값을 매겨
거래하는 시장의 구조와 속성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나아가, 그 연장선상에서 전개한 또 다른 참여형 작업 〈복권방 프로젝트〉(2023-)는 복권이라는 대중적인 소재를 활용해 현대사회의 허황된 욕망의 모순을 비판적으로 탐구한다. 작가는 스피또와 로또 형태의 가짜 복권을 제작하고 갤러리에 복권방을 재현하며,
관객이 직접 복권을 구매하고 추첨에 참여하도록 유도해 기대와 현실의 괴리를 체험하게 한다.
특히 당첨금을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사라진 짐바브웨 달러로 지급함으로써 현대의 경제적 불안과 취약함을 드러내며, 현대사회에서 노력과 성취가 정비례하지 않는 허무함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한편, 2024년부터 진행한 시리즈 작업 ‘MoMA form TEMU’를 통해 남다현은 명작’이라 불리는 미술
작품들이 지닌 경제적, 상징적 가치에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미술사에서 권위를 획득한 작품들을 테무, 다이소, 쿠팡, 이케아 등에서 구매한 저가 공산품과 일상 속 폐기물로 재구성하며, 예술의
본질적 가치와 시장에서 매겨지는 경제적 가치 사이의 간극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
작품 〈Untitled〉는 다이소에서 구매한 3개입 양면
스펀지 수세미로 복제되며, 스테인리스 스틸로 제작된 제프 쿤스의 〈Rabbit〉은
투박한 은박지와 스티로폼으로 재현된다.

또한 작가는 이와 같은 서구 거장들의 작품 속에 오늘날 한국 소비문화의 맥락을 개입시키기도 하는데, 가령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의 경계를 해체한 앤디 워홀의 〈Brillo Box〉는
청하, 비빔면 등 한국 브랜드가 적힌 박스 위에 브릴로 로고를 덧입히며 워홀이 던졌던 질문 ‘무엇이 예술인가’를 한국 사회의 맥락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고귀하고 숭고한 것,’ 혹은 ‘지적 창조물의 정수’로
여겨지는 예술의 신화를 걷어내며, 자본으로서의 미술품 가치는 과연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2025년 아뜰리에 아키에서 열린 개인전 《국립현대폐차장》을
통해 작가는 현대미술의 아이콘을 폐차장에서 수집한 자동차 부품으로 재현하며, 예술과 소비사회의 경계를
허무는 신선한 시도를 선보였다.
전시는 폐차장에서 수집한 재료들로 유명한 현대미술 작품을 재현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남다현은 자동차 헤드라이트, 문,
바퀴 등의 폐차 부품을 활용해 알렉산더 칼더, 엘스워스 켈리, 자코메티, 리처드 세라 등의 작품을 복제함으로써, 현대미술의 권위와 독창성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각적 해석을 제시하였다.

아울러, 그의 작품은 대량생산과 소비사회의 폐기물이 재탄생하는 과정을
통해 과잉 소비와 환경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자동차는 발전과 혁신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대량생산과 과잉 소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런 자동차를
예술작품의 재료로 사용하여, 그 과정에서 자동차가 가진 긍정적인 의미(진보, 혁신)와 부정적인 의미(환경
문제, 과잉 소비)를 함께 보여준다.
대량생산된 부품들을 통해 현대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풍자하는 것에서 나아가, 작품은
복제와 재현을 통해 현대미술과 자본주의 체계의 관계를 다시금 성찰한다.
‘MoMA from TEMU’에서 저가 공산품으로 현대미술의 권위를
해체했던 시도처럼, 이 전시에서도 자동차 폐기물을 재료로 현대미술의 상징적 작품들을 재구성해 예술과
소비재의 경계를 허문다. 대량생산과 폐기라는 소재는 과잉 소비와 환경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작가 특유의 유머와 풍자적 접근은 이를 친근하면서도 강렬하게 전달한다.

이렇듯 남다현의 복제는 단순한 재현을 넘어, ‘진짜’의 위상을 되묻고 ‘가짜’가
지닌 전복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시도이다. 효율과 혁신, 진보와
같은 가치들을 바탕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작가는 현실과 닮은 가짜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하며, 놓치고 있는 것들을 재인식하게 만든다.
"소셜미디어 시대는 문자의 전달성과 그 효율에 감탄했고, 이러한 소통의 방식은 다시금 확실한 정답, 더 나아가 하나의 진리를
원하게 하였습니다. 이 흐름은 대화가 아닌 대결, 생각이
아닌 믿음에 우리를 가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체성은 다양한
미술적 표현과 해석이 아닌 트윗 한 줄로 청구되었고, 낡은 가치를 위한 치열한 대결과 글과 이미지의
무한한 반복은 사회를 오히려 권태롭게 만들었습니다. 본인의 작품은 이러한 현상을 야기하는 것들의 가치를
해체하여 가장 모호한 것이 되고자 합니다." (남다현, 작가노트)

남다현은 토론토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개인전으로는 《국립현대폐차장》(아뜰리에 아키, 서울, 2025),
《MoMA from TEMU》(공간 황금향, 서울, 2024),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챔버,
서울, 2023), 《SB-129 Part 1》(인가희갤러리, 서울, 2022)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모두에게: 초콜릿, 레모네이드
그리고 파티》(수원시립미술관, 수원, 2025), 《The Year Book: Class of ‘24》(Space xx, 서울, 2024), 《예술, 실패한 신화》(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 2024),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_Part II》(아뜰리에 아키, 서울, 2023),
《오징어는 자기 먹물을 선택한다》(탈영역우정국, 서울, 2022), 《NEW RISING ARTIST 탐색자》(제주현대미술관, 제주, 2022)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남다현의 작품은 제주현대미술관과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