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The
Other Self》 © Ilmin Museum of Art
굳이
담대하게 말하자면, 모든 것은 ‘조각’이다. ‘조각’을 3차원의 공간 안에서 형태와 물성을 지닌 덩어리로 정의한다면, 회화, 사진, 필름, 퍼포먼스
등의 여러 미술 장르뿐 아니라 일상 사물들까지 (조금 과장해서) 모든
것은 ‘조각’이 될 수 있다. 미술비평가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이러한
조각의 확장된 성격에 대해 조각이라는 용어/장르가 “잡아당겨지고
늘려졌다”는 멋진 표현을 쓰기도 했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이란 무엇일까? 어쩌면 잡아당겨지고 늘려진 조각에 대해 제기해야 하는 질문은 단순히 ‘조각’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아닌,
조각이 지닌 모호한 ‘확장성’ 그 자체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아닐까? 즉, ‘덩어리’에서 나아가 지속적인 ‘확장’ 자체를
조각의 중요한 가치로서 간주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글은 일민미술관에서 개최한 권오상, 최하늘의 2인전 《나를 닮은 사람(The
Other Self)》 속 무한히 팽창하는 두 조각가의 조각세계가 어떻게 교차하고 분열되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모호하고도 어려운 용어/장르로서의
‘조각’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권오상의 1998년 작품명이기도 한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은 두 조각가 권오상, 최하늘의 확장하는 조각세계를 침투할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다.3 일민미술관의 로비에 위치한 권오상의 〈뉴 스트럭처(New Structure)〉(2022)는 작가의 ‘뉴 스트럭처’ 시리즈 일환으로, 기하학적
형태와 모닥불 같은 일상의 오브제들이 납작한 자작나무 합판에 UV 프린트되어 바닥에 세워져 있다. 뉴 스트럭처 시리즈는 잡지 속 시계, 화장품, 보석 등의 광고사진을 프린트하고 바닥에 세워 일종의 정물 조각을 만든 후 이를 다시 사진이라는 평면으로 귀결시키는 ‘더 플랫’(The Flat) 시리즈에서 확장 및 변형된 것으로, 평면 이미지들을 그대로 3차원의 공간으로 가져와 건축적 요소로 활용한다.4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Alexander Calder)가 1930─40년대
모빌의 움직임을 곡선으로 대체해 청동, 강철판 등으로 육중한 기념비적 조각을 선보였던 ‘스태빌’(stabile)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권오상의 '뉴 스트럭처' 시리즈는 무게를 덜어낸 채, 이질적인 요소들과 오브제들 사이로 담기는 주변 풍경들을 조화시키며 새로운 환경을 구축한다.5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뉴 스트럭처 패널은 여러 추상적인 패턴으로 구멍이 뚫려있는 얇은 벽으로, 일민미술관에서 선보인 2022년작 뉴 스트럭처의 구성요소를 오려내고
남은 자작나무 합판이다. 권오상은 가벼움을 넘어 공백 자체를 조각으로 제시하며, 위치에 따라 다르게 담기는 구멍 속 다수의 전시 전경들은 새로운 환경, 새로운
대화의 가능성이 된다.
전시에서
가장 거대한 크기를 선보이지만 역시 가벼운 최하늘의 〈뻔뻔하게(Become a kenta)〉(2022)는 검정색의 추상적인 형태를 지닌 조각이다. 형상과 제목에서
크고 건강하다는 뜻의 일본어 단어 켄타(kenta)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간의 상반신과 말의 하반신을
지닌 육체적 능력이 뛰어나게 묘사되는 켄타우로스(Centaurus) 모두를 연상시키는 이 추상조각은
직각의 스펀지에서 작가가 직접 손으로 여러 덩어리를 뜯어내어 완성되었다.
이 단단하면서도 푹신한 조각은
스펀지 본래의 직각 형태 중 일부와 덩어리가 뜯겨나간 흔적들이 고스란히 모여 하나의 새로운 형상을 이룬다. 조각의
재료 그리고 그 재료를 조각하는 방식은 모두 ‘가벼움’으로
귀결되지만, 제작 과정 속 작가의 노동/행위/퍼포먼스 그리고 재료가 보여주는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표면과 은은한 광택이 함께 만들어 낸 조각의 “물질적 흔적”(material trace)은 결코 가볍지 않다.6
이에 대해 미술사학자 아멜리아 존스(Amelia Jones)의
멋진 표현을 빌려 첨언하자면, 행위와 물질성이 결부되어 “만들어진”(having been made) 느낌을 자아내는 이 “물질적 흔적”은 “관람자의 신체와 감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반응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며”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다.7
전시장
제일 안쪽에 천장에 매달려 있는 최하늘의 〈주인공(Booger)〉(2022)은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을 더 공격적으로 덜어낸 조각 작업으로, 하나이자 전체, 전체 속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어두운 회색 우레탄 페인트를 도장한 스티로폼의 오돌토돌한 피부 표면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공중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여러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이 추상조각은 감각적인 경험과 긴장을 동시에 자아내는데, 유쾌하게도 제목은 ‘주인공 코딱지’(Booger)다.
QR 코드를 스캔하면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무수히 많은 코의 분비물이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조각은 QR 코드를 스캔 하기 전까지는 하나이자 전체이지만, 스캔하고 난 뒤에는 여러 비물질 조각과 함께 증식되면서 전체 속의 하나가 된다.
이러한
두 작가의 조각 속 ‘확장성’은 최근의 ‘머티리얼 에이전시’(material agency)와 관련된 논의와도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8 권오상이 사진이라는 객체와 함께 조각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얇고 평평한
것 그리고 공백 자체를 조각의 영역으로 가져오게 되었다면, 최하늘은 스펀지, 스티로폼 그리고 스마트폰 어플이라는 ‘행위자’와 함께 뜯어내는 조각의 방식, 비물질이라는 덩어리를 조각의 조건으로
제시한다.
강한
육체적 감각을 과시하는 최하늘의 또 다른 추상조각〈새 이름(Always reboot: Ghost)〉(2022; 재출력) 역시 3D 프린트로
출력한 뒤 흰색 톤의 우레탄 페인트로 도장했다. 이지창 모양으로 벽면에 세워진 듯 설치된 조각 아래는 QR 코드가 있고, 이를 스캔하면 비슷한 모양의 그러나 어두운 색의
또 다른 이지창 형태의 추상조각이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전시장에 세워진다.
이
조각은 제목처럼 계속 새롭게 태어나는 중이다. 2019년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추상의 형태를 띄고 있지만
마치 인간의 몸처럼 티셔츠와 우산을 들고 있던 〈티셔츠는 나의 의사를 표현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 중 하나이다(A
T-shirt is the most simple way to express an opinion)〉가 다음해 일우스페이스에서는 오돌토돌한
피부표면만 드러낸 〈스트레칭 하는 애(Stretch)〉로 재탄생했고,
올해 초 부산현대미술관에서는 같은 제목의 작업이 마치 엑스레이 화면처럼 혹은 영원히 죽지 않는 혼령처럼 스크린 속 디지털 형태로 보여졌다.9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보여진 개별 조각들의 역사가 겹겹이 쌓인, 또
여러 관람자들의 스마트폰을 통해 여러 시간과 장소에서 앞으로도 계속 새롭게 태어날, 이 조각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동시에 존재하며 계속 확장된다.
이러한
끊임없는 ‘수집’ 혹은 ‘축적’ 또한 두 작가의 조각세계를 관통한다. 권오상의 〈세 조각으로 구성된
와상 (Three Piece Reclining Figure)〉
(2022) 은 작가가 직접 찍은 최하늘의 이미지 수천 장이 합쳐진 사진조각이다. 조각가
헨리 무어(Henry Moore)가 세계대전 중 방공호에 숨어있던 사람들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던 일련의
와상들을 느슨하게 가져온 형상에 다초점과 특정 시점을 강조한 시선이 동시에 담겨 사과, 나무, 생선 등의 문신이 새겨진 근육을 가진 몸이 강조된다.10
얼핏 끊어져 있는듯 보이는 세 몸-덩어리는 좌대 위에 붙어 하나의 이어진 몸을 구성한다. 좌대 역시
사진조각의 일부이다.
이
조각에는 권오상과 20세기 조각가 헨리 무어와의 조각적 대화뿐 아니라,
권오상의 조각사가 담겨있다. 90년대 내부가 비어있는 사진조각에서 아이소핑크(강화 스티로폼)로 형체를 만들고 그 위에 사진들을 붙여가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했던 작가는 최근 붙인 사진 표면을 마감하는 방식에서 또 한 번의 변화를 꾀한다.11
2010년대에는
조각의 표면에 사진을 붙인 뒤 유광 에폭시로 마감처리를 해 사진 특유의 광택이 강조되었던 반면, 최근에는
무광 에폭시로 마감처리를 하여 보다 전통적인 재료, 즉 나무-종이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12
일민미술관에서 선보인 이 조각 역시 사진들로 구성된 표면을 무광 에폭시로 마감했다. 권오상의 조각은 내부에서 외부까지 계속하여 변화를 거듭한다.
그
옆에 위치한 최하늘의 〈낡은(Old?)〉 (2022)도 겉으로
보기엔 전통적인 재료, 다시 말해 나무를 이용한 매끈한 추상조각 같지만, 스티로폼으로 3D 프린트를 하고 스틸 페인트를 도장하여 바닥에 가로로
길게 눕혀 놓았다. 의미심장한 이름을 가진 이 조각을 포함해 전시장 내 최하늘의 조각은 여러 재료들의
물질적 대화를 이끌어낸다. 더불어 최하늘의 조각은 중력을 거스르며 공중을 자유롭게 부유하기도 하고, 사선, 수직, 수평 등
여러 방향으로 놓여있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한다.
한편, 두 작가의 조각사는 교차하기도 한다. 전시장 중앙에 놓인 최하늘의
〈나란히(Rank)〉(2022)는 3D 프린트로, 권오상의 작업을 스캔했다. 권오상의 사진조각 속 인물들이 하나의 데이터로 변환되어 최하늘 스타일의 추상조각이 되고도판, 이를 권오상의 조각들과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둘의 조각적 대화를 넌지시 암시한다. 권오상 역시 전시장 입구에 위치한 사진조각 〈세 망령들(The Three
Shades)〉(2022)에서 최하늘이 준 추상조각을 지지체로 삼아 그 표면을 주름이 많은
것이 특징인 스핑크스 고양이 피부 표면(사진)으로 채워 세워둠으로써
조각적 대화를 이어 나간다. 조각의 피부와 포즈는 다르지만, 형상만큼은
최하늘의 〈낡은?〉과도 닮았다.
서로의
조각적 대화는 구상과 추상을 오가고, 여러 질감의 비-/물질
재료들을 발산시키며, 또 여러 개인적/역사적 레퍼런스를 소환하면서, 시간들의 그물망을 쌓아간다. 이들의 가벼운 조각안에는 무수한 역사적
레이어가 축적되어 있는 것이다. 서로를 차용하는 면에서 말 그대로 닮은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조각세계는 끊임없이 갈라진다. 전시장 속 두 조각가의 조각적 대화는 곧 무한히 갈라지는, 계속
변화하고 확장하는 조각사이다.
올해
한국 미술계의 화두 중 하나는 조각이다. 신화적인 역사적 인물을 집중 조명하거나 동시대 조각가들을 나열하는
형식의 여러 전시들 가운데, 《나를 닮은 사람》은 개별 조각가 간의 비-/물질적 대화에서 시작하여 이를 조각사적 대화로 확장시킨다. 전시장
안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두 조각가의 끊임없이 팽창하는 두 조각세계가 무엇이 닮고 다른지, 다시 말해
어떤 시공간을 공유하고 공유하지 않는지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이는 두 조각가와 조각이 덜어내고 더해감으로써
이뤄내는 조각의 지속적인 ‘확장’에서 분명히 드러나며, 이러한 조각 속 모호하리만큼 광대해져 가는 ‘확장’은 곧 ‘조각’을 ‘조각적’인 것들과 구분시키는 하나의 단서가 된다. 모든 것이 조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시대에서, 전시는 조각이란
무엇인지 수고스럽게 짚어본다.
1.
이 글의 제목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El jardín de senderos que se bifurcan)」(1941)를 변용했다.
2.
Rosalind Krauss, “Sculpture in the Expanded Field,” The Originality of the
Avant-Garde and Other Modernist Myths (Cambridge, London: The MIT Press, 1985),
276.
3.
권오상, 〈참을 수 없는 무거움〉(1999),
작가 웹사이트, https://osang.net/portfolio/1999-underable-
heaviness.
4.
“권오상”, 아라리오 갤러리,
https://www.arariogallery.com/ko/artists/119-gwon-osang/.
5.
주 4 참조.
6.
물질적 흔적에 관해 다음을 참조했다. Amelia Jones, “Material
Traces: Performativity, Artistic “Work,” and New Concepts of Agency,” TDR/The
Drama Review 59, no. 4 (Winter 2015): 18-35, https://
doi.org/10.1162/DRAM_a_00494.
7.
Ibid., 20.
8.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 제인 베넷(Jane Bennett) 등의 이론을 포함하는, 객체를 주체(인간)와 같은 하나의 행위자로 보고,
객체가 주체의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연구함으로써, 새로운 정치사회적 구조에 대해
논하는 담론을 뜻한다.
9.
수장고×최하늘, 〈스트레칭 하는 애(Stretch)〉[2019(2022 재제작)], 작가 웹사이트, https://
www.choihaneyl.com/mocabusan, 최하늘, 〈스트레칭 하는 애(Stretch)〉, 2019, 작가 웹사이트, https:// www.choihaneyl.com/ilwoospace, 최하늘, 〈티셔츠는 나의 의사를 표현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 중 하나이다(A T-shirt
is the most simple way to express an opinion〉, 2019, 작가
웹사이트, https://www.choihaneyl.com/.
10.
와상 시리즈에 관해 다음을 참조했다. 「물성 탐하는 권오상 조각가의 일상 물건5」,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
2021년 10월 15일,
https://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2560031&member
No=36301288.
11.
권오상의 ‘데오도란트 타입’ 조각에
관해 다음을 참조했다. 「권오상」, 아라리오 갤러리, https://
www.arariogallery.com/ko/artists/119-gwon-osang/biography/www.facebook.com/arariogallery/.
12.
권오상 조각의 무광 표면에 관해 다음을 참조했다. 「[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75) 작가 권오상 ‘조각의 시퀀스’] 코로나 이후 사진 조각의 실험성을 확장」, 『문화경제』, 2021년 9월 14일, https://
m.weekly.cnbnews.com/m/m_article.html?no=14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