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늘(b. 1991)은 조각과 퀴어성이라는 두 축을 상황에 따라 형식과 내용에 적절히 활용하고 혼합한다. 특히 작가는 신체, 감정, 그리고 사회적 구조의 교차점을 탐구하며, 퀴어 정체성과 인간 경험을 중심으로 한 예술적 표현을 실험해 오고 있다.
 
이를 통해, 최하늘은 실제의 몸과 비현실적인 몸, 신체의 여러 장면들, 영구적인 재료와 가변적인 재료가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몸’으로 재맥락화 되는 장면을 제시한다.


《Traitor’s Patriotism》 전시 전경(커먼웰스&카운슬갤러리, 2018) ©P21

초기 작업에서부터 최하늘은 조각의 매체적 특징, 형식적인 내용, 혹은 내용적인 특징 등을 총체적으로 고민해 왔다. 가령, 작가는 조각(하기)의 다양한 방법론에 관심을 가져 오며, 병풍, 일필휘지, 조각극 등 본인이 고안한 형태를 ‘조각하기’의 행위와 무대에 접목하곤 하였다.


《No Shadow Saber》 전시 전경(합정지구, 2017) ©합정지구

이러한 조각적 실험들은 오늘날의 조각이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나아가 대상을 계획하고 실제 수행을 하는 작가의 위치는 무엇인지 등의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최하늘의 첫 번째 개인전 《No Shadow Saber》(합정지구, 2017)은 그러한 연장선상에서 촉발된 입체물을 ‘보는 방식’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전개되었다.
 
조각을 자르고 그 과정에서 내부의 숨겨진 단면을 발견하는 조각가 최하늘은, 잘린 조각들을 다시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에게 입체물의 인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하였다.

《No Shadow Saber》 전시 전경(합정지구, 2017) ©합정지구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평평한 스크린을 통해 모든 것을 접하는 시각 경험은 조각마저 평면으로 쉽게 환원된다. 전시 《No Shadow Saber》는 이러한 비물질적인 것들이 만연하는 시대에서 조각이라는 입체 매체의 역할과 가능성에 대한 작가 나름의 고민과 답변을 담고 있었다.
 
그의 조각은 잘린 조각을 바깥으로 끌고 나오는 행위, 조각을 의도적으로 난삽하게 분해해서 단면을 드러내는 행위를 통해 완성되며, 원래의 형태를 상상하기 어렵게 한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관객은 조각의 이전 형태를 추적하게 되며, 나아가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최하늘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훈련 가능한 인식법’이라 말하며, 주어진 문제의식에 대한 임시적 돌파구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최하늘, 〈초국가를 위한 내일의 원근법 모듈〉 시리즈, 2019,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19) ©국립현대미술관

이와 같은 조각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최하늘은 조각의 정의, 과거와 현재, 가능성 등에 대해 고민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하나의 주제에만 집중하여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조각을 가운데 두고 다양한 물질과 맥락을 결합시키는 등 견고하고 영원한 것처럼 보이던 조각에 대한 인상을 유연해 보이게 하거나 임시적인 형식을 가진 것으로 전복시키는 작업으로 확장하였다.


최하늘, 〈초국가를 위한 내일의 원근법 모듈〉 시리즈, 2019,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19) ©국립현대미술관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에서 최하늘은 자신이 가진 다양한 주제를 조각이라는 입체로 표현한 일련의 조각 작업들을 소개했다. 그 작업들은 ‘초국가를 위한 내일의 원근법 모듈’(2019)이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총 8개(10점)의 조각이 하나의 군상을 이루고 있었다.
 
각각의 조각은 모든 인종과 성, 종교가 한 몸을 이루는 초월적인 신체를 지니고 있거나, 평면과 입체, 청년과 노인, 이동과 고정 등 서로 대척점에 있어 쉽게 가까이서 만날 수 없었던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최하늘, 〈초국가를 위한 내일의 원근법 모듈〉 시리즈, 2019, 《젊은 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19) ©P21

그리고 이처럼 작가에 의해 탄생한 변종 조각들은 전시장에서 기존의 일방향적인 접근법을 해체하는 다시점의 장치이자, 관람객에게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연기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작업이 제시하는 시점은 작가 자신을 둘러싼 서울이라는 도시의 풍경과 그곳에서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분위기와 사회의 시류 등에 대한 감각을 반영한다. 이는 다양한 주제와 재료가 뒤엉킨 조각 군상들과 맞물리며 관객으로 하여금 오늘날의 ‘보는 방식’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최하늘, 〈The Other Part of His Siamese 2: Hermaphrodite〉, 2020, 혼합매체, 70x70x178cm ©P21

이처럼 최하늘의 조각은 고전적 조각의 문법과는 달리 결코 하나의 덩어리로 스며들거나 흡수될 수 없는 물질과 사물 등을 해체, 교차, 재조합하며 기성의 인식과 시점을 흐트러뜨린다. 상충하는 개념과 물질을 맞붙임으로써, 최하늘은 우리 안에 오랜 시간 확고하게 자리 잡은 통념과 질서, 예술의 유산, 문화의 위계, 젠더 이슈 등을 파괴하고 갱신된 새로운 질서와 방향을 제시한다.
 
이러한 파괴와 갱신의 태도를 장착한 최하늘의 혼종의 기술은 ‘퀴어’와 ‘퀴어 포멀리즘’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최하늘은 남성 중심적이고 때로는 마초적이었던 모더니즘 조각의 대표적인 작품이나 그것을 연상시키는 형태들을 바탕으로 그 위에 다양한 정체성의 표피를 입혀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샴》 전시 전경(P21, 2020) ©P21

예를 들어, 2020년 P21에서 열린 개인전 《샴》에서 최하늘은 한국 모더니즘 조각의 거장인 김종영을 극복이자 의심의 대상으로 의식하고, 김종영의 형태 위에 퀴어 페티쉬의 조형성을 덧씌웠다. 김종영의 조각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인체 모티프와 인간의 시각성을 통한 휴먼스케일이라면, 최하늘은 예의 형상에 욕망의 골격을 포갠다.
 
퀴어 섹슈얼리티의 렌즈를 통해 점잖고 금욕적인 불각의 이미지는 몸의 쾌락적 분위기로 역전되는 새로운 해석을 제안한다. 자극적이지만 동시에 경쾌하게 다가오는 색감과 패턴으로 된 표피를 입은 최하늘의 작업은, 강경하게 그리고 어쩌면 폭력적으로 자리 잡은 기존의 질서에 대한 의심, 질문, 조롱, 비판 사이를 영리하게 오고 간다.


《벌키(Bulky)》 전시 전경(아라리오뮤지엄, 2021) ©P21

이처럼 최하늘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퀴어 작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조각의 어법으로 솔직하게 표현해 왔다. 2021년 아라리오뮤지엄에서 열린 개인전 《벌키(Bulky)》 또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조각과 퀴어라는 두 개의 축을 한국 예술의 토양에 뿌리내리는 방법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었다.
 
전시 제목 ‘벌키(Bulky)’는 부피가 크다는 뜻으로, 근육량을 늘려 보기 좋게 덩치를 키우는 벌크업(Bulk-up)을 연상시킨다. 흙이나 석고 등을 빚거나 덧붙여 형태를 만들어가는 소조 기법, 또는 빈약한 한국 퀴어 아트의 뼈대에 살을 붙여가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로 해석될 수 있는 중의적 표현이기도 하다.


《벌키(Bulky)》 전시 전경(아라리오뮤지엄, 2021) ©아라리오뮤지엄

이 전시에서 최하늘은 비물질이 일상이 되는 시대에 입지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조각과 사회적 소수자인 퀴어가 모두 상대적으로 소외된 비주류라는 유사성에 기반하여,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동등한 선상에 놓고 결합하는 실험을 전개하였다.
 
조각 창작 방식에서 퀴어 요소를 발견하고 조각과 연결하는 등, 전시작들은 전작들의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표현에 있어 좀더 과감하고 솔직해진 모습을 띈다. 특히 도수 치료, 주짓수 대련 등 평범한 삶 속에 녹여낸 퀴어는 색다르지 않은 일상을 다루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이 일련의 작업은 일상 속 두 사람 간의 신체적 접촉을 통해 합체되는 개인적 경험과 감각을 조각적으로 반영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최하늘, 〈합신 용자합체(最強合体) Bulky_fusion 2〉, 2021, 에코 보드, 컬러 스펀지, 금속 등, 190x120x140cm ©최하늘

나아가 다양한 재료와 주제를 결합해온 최하늘의 혼종적인 조각은 본 전시에서 SNS라는 새로운 장르와도 합쳐졌다. 예를 들어, ‘합신 용자합체’(2021) 시리즈에는 QR 코드가 새겨져 있어, 관객 각자의 스마트폰을 매개로 오늘날 게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영국 SNS 플랫폼 온리팬스(Onlyfans)로 연결된다.
 
한편 이 조각 시리즈는 세 개의 조각이 하나로 결합된 형식을 가지는데, 이는 일본 만화에 등장하는 로봇 캐릭터(주로 남성으로 상정되는)가 합체하면 더 강한 로봇이 되는 방식에 착안하여 제작되었다.
 
이러한 물질과 비물질적 장르 간의 결합을 통해 작가는 퀴어 컬처를 가시화하고 동시대 조각과 연결시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아직은 얄팍한 퀴어 아트의 뼈대를 벌크업 시키고자 하였다.


《태》 전시 전경(갤러리2, 2022) ©갤러리2

한편, 2022년 P21과 갤러리2에서 동시 진행된 개인전 《태》에서 최하늘은 이상하고, 기형적인, 퀴어적 형태들이 뒤섞인 ‘몸’들을 선보였다. 몸이나 몸 일부의 형태를 따라 만든 그의 조각들은 ‘정상’이 아닌 신체를 빈틈없고 단단한 재질로 보여준다.
 
남성의 몸 입상 세 점은 가장 온전하게 몸 전체를 재현한 작품으로, 플라스틱의 종류인 FRP로 만들어져 있어 단단한 마네킹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이상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 중 한 조각은 근육이 비정상적으로 발달되어 있어 극단적인 남성성을 띄고 있으며, 그 옆에 나란히 선, 키가 비교적 작은 남성의 신체는 팔이 잘린 채 둔부를 뒤로 빼며 마조히즘의 형태를 비유하듯 매우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반면 나란히 서있는 또 다른 조각은 어깨가 부풀려져 있고 과시적인 자세를 취한다. 건조하게 서 있는 이 세 몸은 모종의 권력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세 몸의 관계성을 바탕으로 한 어떤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


《태》 전시 전경(P21, 2022) ©P21

둘로 나뉜 공간을 가진 두 갤러리에서 진행된 전시는 정상적인 몸과 기형적인 몸, 현실적인 것과 초현실적인 것, 구부러지는 것과 딱딱한 것, 음각과 양각과 같은 형식으로 데칼코마니처럼 나타난다. 모종의 이분화된 사고 구조 안에서 한 쌍의 세포가 개체 분열하듯이 짝을 이루고, 확장된다.
 
그 안에서 각 형태들은 이분화된 사고 구조를 증명하기 위한 것이 아닌 이상하고, 기형적인, 퀴어적 형태들의 뒤섞인 알레고리처럼 나타난다. 망가진 모양 혹은 미완의 형태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게 하면서 그 부정적인 의미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망가진 것을 그대로 안은 채 외부의 규준 없이도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몸의 경험으로 유도한다.


권현빈, 〈Humming Facades〉, 2021, 대리석, 잉크, 30x21x2cm ©기체

나아가 최근의 작업에서 최하늘은 점점 더 개인화되고 고립된 사회에서 작가의 퇴직감이나 유사한 감정을 담고 있다. 2023년부터 전개해 온 ‘삼촌’ 시리즈는 한국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 나이 든 퀴어, 또는 작가 자신을 은유하며, 작가의 신체를 통해 그가 느끼는 어둡고 낯선 감정을 표현한다.
 
예를 들어, 제15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작업 〈우는 삼촌의 방〉(2024)에서 ‘삼촌’은 암울하고 낯선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분절된 신체들의 군집으로 이루어진 조각과 부조는 자기 몸의 완전한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스러진 모든 퀴어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곡성이다.


최하늘, 〈Nephew〉, 2025 ©최하늘

‘삼촌’ 시리즈를 통해 최하늘은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자기 자신을 여러 모양과 형태로 드러내고자 하였다면, 2025년부터는 가족의 다양한 구성원을 포함하는 제목으로 바꿔 새로운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아직 동성 간 결혼이 합법화 되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작가는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제도는 무엇일까?”라는 질문과, “내가 속한 커뮤니티 안에서 새로운 대안 가족의 형태는 어떤 모습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해 왔다. 이러한 ‘가족’이라는 이념에 대한 의구심은 그의 신작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최하늘, 〈In the act of dying〉, 2025, 우레탄 레진, 발포 폴리스티렌, 브론즈 와이어 및 파이프, 실리콘, 실리콘 와이어, 약 120x50x200cm ©P21

이렇듯 최하늘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 속에서 퀴어 작가로서 우회적이기보다는 솔직한 화법으로 자신을 드러냄에 망설이지 않는다. 작가 스스로의 신체적, 사회적 경험을 담아 본인의 정체성을 조각의 언어로 풀어내면서,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가는 퀴어들의 삶과 가족, 그리고 자신의 신체와 맺는 관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최하늘의 작업은 분절되고 해체된 신체 부위들의 익명적인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인간 형태에 대한 상상을 가능하게 하며, 단순히 유사성에 기반한 연대를 넘어 새로운 연대로의 여정을 제안한다.

 "퀴어로서 저는 제 몸에 대한 의구심을 항상 느껴왔고, 어떠한 사건을 계기로 제 몸이 온전한 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온전한 몸이라는 것은 그냥 환상에 불과하며, 이는 그저 부분들의 집합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하늘, 프리즈 서울 인터뷰 중) 


최하늘 작가 ©일민미술관

최하늘은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태》(P21 & 갤러리2, 서울, 2022), 《벌키(Bulky)》(아라리오뮤지엄, 서울, 2021), 《샴》(P21, 서울, 2020), 《Traitor’s Patriotism》(커먼웰스&카운슬갤러리, 로스앤젤레스, 2018)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Pigment Compound》(P21, 서울, 2025), 《Aura Within》(하우저앤워스, 홍콩, 2025),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광주, 2024), 《언박싱프로젝트 3: Maquette》(뉴스프링프로젝스, 서울, 2024), 《뒤집기》(에스더쉬퍼, 서울, 베를린, 2023), 《Fantastic Heart》(파라사이트, 홍콩, 2022), 《나를 닮은 사람》(일민미술관, 서울, 2022), 《인간-일곱개의 질문》(리움미술관, 서울, 2021)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최하늘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2021)및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2019) 레지던시 입주 작가로 활동하였으며, 그의 작품은 아틀랜타 하이뮤지엄, 홍콩 선프라이드재단, 마이애미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 대구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