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주(b. 1993)는 기술의 진화 과정을 인간 욕망의 반영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 내재된 연약함과 폭력성에 주목한다. 작가는 기술의 발전사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퍼포먼스, 실험적 영상, 설치 작업을 통해 기술과 감정, 물질과 기억 사이의 충돌을 하나의 시적 긴장으로 끌어올리며, 개인과 사회의 상처가 겹쳐지는 지점을 응시한다.


홍은주, 〈High Fever〉,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10분 ©홍은주

의학기술, 광학기술, 자동화된 비인간 주체 등 인간이 '삶을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온 장치들은 역설적으로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홍은주는 이러한 기술적 메커니즘과 그것이 남긴 상실, 억압, 소외의 감정에 공감하며, 신체적 기억과 트라우마를 매개로 이를 재구성한다.
 
다양한 매체를 경유하는 그의 작업은 선형적인 서사의 질서를 거부하고, 단편적 이미지와 불완전한 감정의 파편을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I want to mix my ashes with yours》 전시 전경(갤러리175, 2022) ©홍은주

2022년 갤러리175에서 열린 개인전 《I want to mix my ashes with yours》에서 홍은주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종류의 몸-건물, 인간, 기계, 동물 등-이 가진 경계가 비선형적으로 뒤엉키며 허물어진 모습을 상상했다.
 
전시의 제목인 “I want to mix my ashes with yours”는 막 결혼을 마친 신부가 쓴 중국 고시(古詩)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그러나 뼈와 살이 재가 되어 섞일 때까지 영원히 사랑하겠다는 원래의 주제와는 달리, 전시는 “재를 섞는다”는 표현을 오늘날 다종다양한 주체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장면에 대한 은유로 바라본다.


《I want to mix my ashes with yours》 전시 전경(갤러리175, 2022) ©홍은주

전시 공간에서 인간의 언어, 동물의 언어, 기계의 언어는 서로를 흉내내거나 비웃기도 하며, 세계에 대한 균열을 꿈꾼다. 3채널 영상 설치 작업 중 처음으로 관객을 맞이한 영상은 인간이 마치 열매가 나무에 열리듯 태어나는 세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중심과 주변이 없는 비선형적인 친족관계를 암시하는데, 이들은 부모가 아닌 언제든 교체 가능한 보호자임을 드러내고 이들에게 길러지는 아이의 배꼽은 하나가 아닌 모습을 띤다.


《I want to mix my ashes with yours》 전시 전경(갤러리175, 2022) ©홍은주

영상과 짝을 이루는 다른 두 영상 안에서는 두명의 댄서가 대벌레와 춤을 추고있다. 대벌레의 움직임은 살아있는 나뭇가지 같기도, 갓 태어난 새끼 같기도, 어설픈 기계 같기도 하다. 대벌레는 나뭇가지를 의태하며 몸을 숨기는 동시에 암컷은 수컷 없이도 무성 생식을 할 수 있으며, 때로는 알을 품은 채로 새에게 먹혀 새의 배설물을 통해 번식을 하기도 한다.
 
대벌레의 더듬거리는 움직임들은 당연한 듯 이세계의 경계를 뛰어넘는다; 종의 구분, 먹이사슬과 생존, 재생산과 번영, 성별, 개별적 몸의 연장과 단절. 두명의 댄서와 두 대벌레는 섬세하면서도 투박하게 몸을 맞대며 줄다리기를 하듯 서로의 무게와 균형을 맞추어 본다.


《I want to mix my ashes with yours》 전시 전경(갤러리175, 2022) ©홍은주

이러한 영상 앞 전시장 바닥에 놓인 이미지는 인공지능과 작가의 의식 사이의 교묘한 협업의 결과물이었다. 경계가 애매하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색채들의 추상 안에서 드러나는 형상들은 곤충의 마디, 포유류의 털, 얼굴의 구멍, 세포의 막의 모양과 비슷한 것들이었다.
 
유일하게 표상적인 이미지는 숫자가 쓰여진 손가락의 이미지인데, 이는 협업과정에 관한 결정적 단서이다. 텍스트기반 이미지 생성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이 콜라주는 인공지능이 단어에 담긴 표면적인 ‘특성’을 재생산 할 수 밖에 없는 작동 원리에 내재되어 있는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동시에 부식시킨다.


《I want to mix my ashes with yours》 전시 전경(갤러리175, 2022) ©홍은주

마지막으로 전시장 입구의 욕조는 기이한 피부를 연상시키는 무언가를 담고 있는데, 몸덩어리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져버린 모습처럼 놓여 있었다. 욕조 밑에는 파티가 끝난 뒤 미처 정돈되지 못한 듯한, 마치 가상세계의 노이즈 또는 재처럼 보이는 가루가 흩어져 있다.
 
전시는 이와 같은 일련의 작업을 통해 익숙한 행위주체자들의 경계 바깥으로 귀를 열도록 하며,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의 첫 걸음으로 초대한다. 그리고 마침 출입문 옆에는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경계를 알 수 없는 “…From and of all the languages that were spoken and written…” 이라는 구문의 타원이 걸려있었다.


홍은주, 〈Annagreen〉, 2023, 혼합재료, 가변설치 ©홍은주

한편, 2023년에 발표한 영상 및 설치 작품 〈Annagreen〉을 통해 홍은주는 시간에 따라 바뀌는 물질의 의미와 물질에 살아가는 기억들에 대해 다뤘다. 작품은 ‘대공황유리’로도 알려진 우라늄 유리를 소재로 삼는다.
 
이는 1920년대 미국과 유럽 가정에서 유행했던 식기로, 경제 불황 중 밝게 빛나는 연두색의 유리잔은 당시 가정주부들을 현혹시켰다. 우라늄 유리를 자주 사용하던 유리 장인의 딸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색의 이름, ‘안나 그린(Annagreen)'은 UV 조명 밑에서 형광색으로 빛나는 특성으로 아직까지도 안티크 수집가들을 유혹한다.


홍은주, 〈Annagreen〉, 2023, 단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스테레오), 10분 ©홍은주

이후 미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진행된 비밀 원자폭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우라늄을 확보하기 위해 우라늄 유리 생산을 금지했다. 과학이 우라늄의 방사 능력을 발견하면서, 그것은 히로시마 원자폭격이라는 악명 높은 사건에 사용되었고, 점차 21세기에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다.
 
〈Annagreen〉은 반짝이는 것을 향한 욕망과 수많은 희생을 낳은 이데올로기를 가로지르는 비밀 사이의 교차점을 다루며 물질에 내재된 다양한 맥락의 역사와 기억을 가시화 한다. 


홍은주, 〈Suture〉, 2023, 퍼포먼스, 20분 ©홍은주

그리고 같은 해 홍은주는 서양 의학사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한 퍼포먼스 작업 〈Suture〉(2023)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제목에 사용된 단어 ‘Suture’는 수술 과정에서 상처를 봉합하는 행위를 뜻한다. 16에서 18세기 서양 의학사를 살펴보면, 과거의 수술은 원형극장에서 이루어졌으며 수술의 원리를 보여주려는 의도 외에도 유희의 한 방식이 되어 일반인들도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원형 극장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마취제가 발명된 후 극장을 채운 수많은 사람들이 벌어진 상처로 박테리아 등을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수술실은 지금처럼 멸균된, 닫힌 방의 형태를 띄게 되었다.


홍은주, 〈Suture〉, 2023, 퍼포먼스, 20분 ©홍은주

뮌헨의 한 보험회사 사무실에서 진행된 퍼포먼스 작업 〈Suture〉(2023)는 이러한 ‘오퍼레이팅 시어터(Operating Theater)’를 공연의 형식으로 차용해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트라우마에 대해 다룬다. 관객으로 가득 찬 좁은 공간에서 네 명의 퍼포머가 서로의 의료기록을 낭독하고, 특수 분장으로 만든 상처들을 들여다 본다.
 
이 공연은 퍼포머가 스스로 상처를 꿰매는 ‘자가수술’로 끝이 난다. 여기서 몸 위의 상처들은 죽은 자들을 위한 통로이자 ‘몸’이라는 집의 열린 창, 균열, 그리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파노라마처럼 들여다보게 하는 렌즈로 작동한다.


홍은주, 〈Suture-rewired〉, 2024, 퍼포먼스, 45분 ©홍은주

이듬해, 이 연장선상에서 진행된 개인전 《Suture-rewired》(아케이드 서울, 2024)는 과거 의학사의 극장, 현대의학의 멸균실과 전시장이라는 세 곳의 다른 층위를 오가며, 관객으로 하여금 목격자와 구경꾼, 또는 현대 의료 체계에서 엄숙한 수술 과정의 참여자로 위치시켰다.
 
원형극장, 멸균실, 전시장이라는 세 공간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권력과 시선, 관계, 그리고 봉합되지 않은 이야기들로 구성된 풍경이다. 원형극장에서 상처는 스펙타클로 소비되며 대상화 되었다면, 이후 현대 의학을 거쳐 멸균된 수술실로 들어가며 상처는 가려지고 통제된다.
 
이 전시에서 홍은주는 멸균실의 문을 열어 젖히고 비가시적 영역으로 은폐된 상처의 관계망을 다시 열어 보이고자 했다. 원형극장을 재현하듯 펼쳐진 퍼포먼스 〈Suture-rewired〉(2024)에서 관객은 단순한 목격자로 머무는 것이 아닌 상처 봉합의 과정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묻게 된다.


홍은주, 〈She seemed devastated, when I was weeping with Joy〉, 2025, 퍼포먼스, 30분 ©홍은주

그리고 최근 홍은주는 2024년에 머물렀던 대만 레지던시에서 접한 동아시아 인형극과 전통극에 관심을 두고 작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괴물과 귀신, 영적인 존재들은 오래전부터 인간의 기쁨과 고통, 갈등을 체현해 왔고, 인형극과 가면극은 신체가 ‘다른 존재’로 변모해 또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통로가 되어 왔다.
 
2025년 독일에서 홍은주는 이러한 맥락에 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인형을 조종하는 행위와 감정의 재현에 대해 다룬 퍼포먼스 작업 〈She seemed devastated, when I was weeping with Joy〉(2025)를 발표하였다. 작가의 얼굴을 3D 스캔하여 만들어진 인형은 퍼포먼스에서 퍼포머의 몸짓에 따라 움직이며 감정과 기억의 교차를 탐구하는 주체 중 하나로 등장한다.


《Shadow Play》 전시 전경(팩션, 2025) ©홍은주

이후 인형극에 대한 작업은 서울 팩션에서 열린 개인전 《Shadow Play》에서 한국 전통극이라는 맥락과 함께 확장되어 전개된다. 인형극에 대한 리서치를 거치며 발견한 ‘한국 전통극의 부재’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이 전시는, 일제강점기 이후 사라진 한국 전통 인형극의 흔적을 더듬는다.
 
이는 단순히 잊힌 전통을 재현하거나 복원하는 작업과는 달리, 괴물, 귀신, 영혼 등 비가시적인 존재들이 오랜 세월 인간의 감정과 갈등을 체현해 왔던 것처럼 신체와 사물이 서로를 매개하는 감각적 서사를 무대 위로 소환하였다.


《Shadow Play》 전시 전경(팩션, 2025) ©팩션

이를 위해 작가는 전시장 내부를 인형, 영상, 사운드 그리고 아카이브 이미지로 뒤섞인 무대처럼 연출함으로써 현실과 비현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장면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인형과 퍼포머, 캐릭터와 배우 사이의 흔들리는 경계 속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감정과 기억의 교차를 탐구함으로써 사라진 전통극을 현재의 감각 속에서 재구성한다. 


홍은주, 〈She seemed devastated, when I was weeping with Joy〉, 2025, 퍼포먼스, 30분 ©홍은주

이렇듯 단편적 이미지와 불완전한 감정의 파편을 이어 붙이는 홍은주의 작업은 논리적 이해보다는 직관적 직면 속에서 ‘인간다움’의 경계를 다시 묻게 한다. 또한 기술과 감정, 물질과 기억 사이의 충돌을 시적인 긴장으로 풀어내는 그의 작업은, 현재라는 시공간 이면에 놓인 혹은 은폐된 다층적인 관계망을 끌어올리며 “나는 어디에 놓여 있는가?” 또는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기술은 삶을 개선하기 위해 발명되었지만 동시에 인간의 연약함과 폭력성 또한 드러낸다. 나는 그러한 기술과 감정, 물질과 기억 사이에 충돌하는 시적인 긴장을 만들고자 한다."  (홍은주, 2025 아르코데이 인터뷰 중)


홍은주 작가 ©홍은주

홍은주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하고 DAAD 석사 장학생으로 뮌헨 미술원에서 공부했다. 개인전으로는 《Shadow Play》(팩션, 서울, 2025), 《She seemed devastated, when I was weeping with Joy: A story that ends from the beginning》(아파트먼트 데어 쿤스트, 뮌헨, 독일, 2025), 《Suture : Rewired》(아케이드 서울, 서울, 2024), 《Joy of the Worm》(뮌헨미술원, 뮌헨, 독일, 2023)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바이에른 예술상 수상자전》(갤러리 데어 쿤스틀러린, 뮌헨, 독일, 2025), 《The 3rd Two》(갤러리 데어 쿤스틀러린, 뮌헨, 독일, 2024), 《Sterling Darling》(쿤스트아카덴, 뮌헨, 독일, 2023), 《LASSITUDE》(괴테 인스티튜트, 파리, 2022), 《포스트모던 어린이》(부산현대미술관, 부산, 2022), 《PERFORM 2019》(일민미술관, 서울;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9)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홍은주는 2024년에는 타이베이 아티스트 빌리지에서 레지던시를 거쳤으며, 잉빌트와 슈테판 굇츠 재단의 ‘미디어 아트상’, 바이에른주 과학예술부의 ‘바이에른 미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