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나(b. 1988)는 인간이 가진 다양한 욕망에 관심을 가지고, 그 욕망들이 우리에게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고 있는지를 작업을 통해 이야기한다. 특히 그는 인간의 욕망과 자본에 의해 생산된 인공물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새로운 형태로 존재하는 현상에 주목하고, 이에 대해 수집, 관찰, 조사한 내용들을 사진, 드로잉, 설치, 영상 등을 활용해 드러낸다.


장한나, 〈뉴모픽락_플라스틱통〉, 2018, 제주도 ©장한나

인공물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다시 우리의 생활권에 돌아오는 현상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경계’에 있는 것들을 탐구해 왔던 초기 작업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작업 초반의 장한나는 재개발지역을 돌아다니며 그곳에 살고 있던 동물과 식물들에 주목했다.
 
그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물건과 화분 등을 수집하고, 식물을 옮겨 심어 사람들에게 분양하거나 비어 있는 공간에 수집한 물건을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였으며, 2017년에는 집 앞에 오는 쓰레기차를 추적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장한나, 〈뉴모픽락_플라스틱통〉, 2019, 제주도 ©장한나

이때 그는 플라스틱 컵이 버려진 후 어떤 과정을 거쳐 재활용 되는지 추적했다. 플라스틱 생산에 관한 리서치를 진행하며, 자연스레 플라스틱이라는 인공물과 연관된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2017년 울산의 해안에서 우연히 특이한 돌처럼 보이는 플라스틱 덩어리를 발견한 것을 계기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뉴 락’ 프로젝트를 전개해 오고 있다.
 
장한나는 해변에 버려진 플라스틱이 자연의 시간을 거쳐 돌의 역할을 하고 있거나 돌의 형상이 되어버린 것들에 ‘뉴 락(New Rock)’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들은 자연과 인공이 뒤섞인 존재로, 인간의 욕망과 자본에 의해 생산된 인공물이지만 오랜 자연의 시간 동안 해풍과 태양열에 의해 변형되어 암석화된 결과물이다.

장한나, 〈뉴모픽락_플라스틱통〉, 2019, 제주도 ©장한나

장한나는 버려진 플라스틱이 자연에 놓인 이후 그 속에서 인간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관찰하며, 이들이 이미 인공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선 ‘다음 단계의 물질’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그는 이들이 ‘이 시대의 새로운 돌’ 혹은 ‘새로운 땅’의 역할을 하는 존재처럼 느껴졌고, 이에 따라서 이들에게 ‘뉴 락(New Rock)’이란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장한나, 〈스티로폼 락 표본 2020〉, 2020, 한국 ©장한나

장한나는 이러한 ‘뉴 락’을 관찰하며 미묘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한편 어딘가 불편하고 소름이 끼치는 감각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후 그는 이러한 자연의 일부가 된 인공물들을 수집하고 연구하며,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물과 자연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장한나는 ‘뉴 락’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서 생산을 최소화하고 수집과 리서치를 중심으로 하는 작업 방식을 택한다. 이는 기후 위기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태도였다. 이에 따라, 작가는 수집한 ‘뉴 락’들을 가공하지 않음으로써 미세플라스틱 생산을 피하고, 수집할 때의 행동반경과 액션 또한 최소화 함으로써 자연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지 않고자 노력한다.


장한나, 〈뉴 락 표본 2020〉, 2020 ©장한나

이렇듯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개입으로 풀어낸 그의 작업은 ‘뉴 락’을 표본의 형태로 전시하거나, 그 자체로서 하나의 조각처럼 보여주기도 하거나, 영상 작업을 통해 작가의 사유를 나눈다.
 
2020년 스튜디오 스퀘어에서 열린 개인전 《뉴 락》은 장한나가 2017년부터 4년 동안 해변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뉴 락’을 정리하여 선보인 첫 번째 전시였다. 작가는 바닷물에 떠밀려 온 다양한 형태의 ‘뉴 락’을 수집하고, 이들 중 형상이 아름다워 다시금 감상하고 싶은 것들을 골라 ‘수석’ 컬렉션으로 선보였다.


《뉴 락》 전시 전경(스튜디오 스퀘어, 2020) ©장한나

매끈했던 플라스틱 본래의 표면은 자연과의 접촉을 거쳐 불균질한 질감을 갖게 되며, 파도에 의해 쪼개지고 녹는 사이 안쪽 오목한 부분은 바다 속 생명체들의 새로운 둥지가 되기도 한다. 장한나의 ‘뉴 락’ 수석 컬렉션은 우리에게 익숙한 플라스틱의 모습이 아닌 자연도 인공물도 아닌 중간적 상태로서 등장하며, 인간에게서 태어난 이 인공물이 버려진 이후 자연 속에서 겪었을 시간들을 유추하게 만든다.


《뉴 락》 전시 전경(스튜디오 스퀘어, 2020) ©장한나

‘뉴 락’으로부터 오는 생경함은 곧 불편함으로 바뀐다. 매일 우리가 한순간 사용하고 순식간에 버리는 막대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땅 속에 묻히고 바다에 버려져, 세월이 흐름에 따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장한나, 〈신 생태계〉, 2021, 수집된 플라스틱, 수조 3점, 기포 발생기, 조명, 모래, 혼합설치, 가변크기, 《간척지, 뉴락, 들개와 새, 정원의 소리로부터》 전시 전경(인천아트플랫폼, 2021) ©장한나

한편, 2021년에 선보인 설치 작품 〈신 생태계〉을 통해 장한나는 ‘뉴 락’으로 조성된 수중 생태공간을 선보였다. 작가가 채집한 플라스틱 조각이 서로 다른 크기의 수조 속에 작은 생태계를 이루고, 이 세 개의 수조들은 전시 공간 안에서 모래에 뒤덮인 채 또 다른 자연으로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었다.
 
또한 실제 생물이 거주하는 기묘하고 낯선 모습의 2채널 영상이 함께 설치되었다. 영상은 뉴 락의 여정을 통해 주변 환경과 자연, 함께 살아가는 생물을 포착하며 그 관계를 조망할 수 있게 하였다.


장한나, 〈신 생태계〉, 2021, 수집된 플라스틱, 수조 3점, 기포 발생기, 조명, 모래, 혼합설치, 가변크기 ©장한나

이를 통해 인적 드문 해변에 모이는 대량의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이나 자연과 절대 섞일 수 없었던 플라스틱이 지질학의 일부가 되고 해양생태, 나아가 오묘하고 아름다운 바다의 새로운 암석들이 되어 수중 생물의 터전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처럼 뉴 락을 중심으로 자연과 인공 사이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던 작가는 자연스레 “순수한 자연이 과연 존재할까?”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고, 이러한 사유는 ‘신자연’ 프로젝트라는 새로운 작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뉴 락》 전시 전경(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2023)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뒤섞인 존재인 ‘뉴 락’을 접하며 작가는 인간이 정의한 자연, 그리고 인간이 원하는 자연의 이미지가 가진 허구성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생태계를 순수한 자연이라 정의하곤 하지만, 작가는 “오늘날 인간의 힘이 더해지지 않은 자연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품으며 그 ‘순수한’ 자연이라는 것은 사실 인간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제한적이고 대상화된 자연이 아닌지 되묻는다.


장한나, 〈신자연, 뉴 락 속 개미〉, 2023(2025년 재편집), 단채널 영상, 컬러, 5분 30초 ©국립현대미술관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한 ‘신자연’ 프로젝트를 통해 작가는 인간이 가한 오염에도 불구하고 적응해 살아가는 오늘날의 자연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 거듭된 오염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DNA를 바꾸는 등 계속해서 적응해 나가며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러한 강한 생명력으로 무수한 인공물들과 공존하는 오늘날의 자연 환경을 드러냄으로써, 과연 인간은 이처럼 빠르게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버린 수많은 인공물들이 새로운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오늘날, 그 안에서 인류는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인가를 되묻게 한다.


장한나, 〈Being〉, 2025,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전시 전경(국립현대미술관, 2025) ©국립현대미술관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에서 선보인 일련의 신작들은 이러한 사유를 반영한다. 그 중, 대형 설치 작품인 〈Being〉(2025)은 전국의 해안에서 수집한 500여 개의 뉴 락으로 이루어진 작업으로, 다양한 플라스틱이 변형된 뉴 락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구조물을 이룬다.


장한나, 〈신자연: Being〉, 2025,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7분 40초 ©국립현대미술관

이는 중심에 수직으로 매달린 플라스틱 조각들과 수평으로 펼쳐진 뉴 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 수직의 플라스틱 구조물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자본을 축적하고자 위아래로 위계를 나누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한편, 수평 구조의 뉴 락은 인간과 달리 어떠한 구분이나 판단도 하지 않고 위계도 만들지 않으며, 인공마저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순환시키는 자연의 모습을 은유한다.
 
그리고 함께 전시된 영상 〈신자연: Being〉(2025)을 통해 작가는 플라스틱뿐 아니라 공장의 온폐수, 급격히 배출되는 탄소 등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을 자연이 자연의 일부로 순환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한나,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 전시 전경(백남준아트센터, 2025) ©백남준아트센터

이러한 장한나의 작업은 인간이 생산한 모든 것이 통제 하에 처리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인간의 창조물들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장한나는 인공과 자연의 경계에서 태어난 이 시대의 새로운 물질, ‘뉴 락’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인간 중심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난 시각으로 오늘날의 자연과 인공물을 다시 바라보게 하며 공생에 대한 진지한 사유로 이끈다.  

 “플라스틱의 시간을 다시 바라보니, 결국 인간 시스템의 끝은 땅속, 땅 위, 혹은 바닷속, 결국 자연이었습니다.”    (장한나,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 인터뷰 중) 


장한나 작가 ©구하우스 미술관

장한나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조소과를 졸업했다. 개인전으로는 《신자연, 신대지미술》(칠성조선소, 속초, 2024), 《뉴 락》(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김해, 2023), 《신자연의 탄생》(무대륙, 서울, 2023), 《뉴 락》(스튜디오 스퀘어, 수원, 2020)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다시, 지구: 다른 감각으로 응답하기》(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서울, 2025),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4.0》(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25), 《젊은 모색 2025: 지금, 여기》(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5), 《무등: 고요한 긴장》(광주비엔날레 광주파빌리온, 광주시립미술관, 광주, 2024), 《일상의 기후, 이상한 기후》(국립중앙과학관, 대전, 2022)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