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Tongue of Rain》 © Art Sonje Center

아트선재센터는 세 명의 여성주의 시인 세실리아 비쿠냐, 차학경, 김언희에게 영감을 받은 극장형 전시 《혀 달린 비》를 4월 4일부터 5월 5일까지 아트홀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세대를 가로질러 기억의 통로를 뚫어내고, 트라우마와 침묵으로부터 도주선을 발생시키는 시적 발화의 힘을 주목한다.

극장에 들어서면 칠레 출신 시인이자 미술가 비쿠냐의 비통한 애도가 울려 퍼진다. 비쿠냐의 〈소리로 꿈꾼 비:차학경에 대한 경의(Rain Dreamed by Sound: Homage to Theresa Hak Kyung Cha)〉는 약 20분간 진행되는 사운드 설치 작업으로 차학경의 영혼을 위로하는 비쿠냐의 헌정 시이자 노래다.

차학경은 어린시절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내 여성소수인종으로서 언어적 분열과 회복의 과정을 글쓰기와 퍼포먼스, 영상 설치 작업 등으로 보여주었다. 차학경은 시이자 소설인 『딕테(Dictee)』를 발표하고 미국 문화예술계에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 어처구니없게도 무참히 강간 살해당했습니다. 그녀의 나이 31세였다.

Installation view of 《Tongue of Rain》 © Art Sonje Center

이번 전시에서 비쿠냐의 ‘비’는 젠더 폭력의 잔존하는 악몽에 파동을 일으키고, 고통 받는 영혼을 정화시키는 힘의 상징으로 제시됩니다. 멈출 수 없는 비와 같이 비쿠냐는 차학경의 삶과 예술에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칠레와 한국에서 뉴욕으로 이민 온 비쿠냐와 차학경은 시와 퍼포먼스를 통해 페미니즘, 샤머니즘, 모계적 전통과의 연결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비쿠냐와 차학경 사이의 대화는 세대를 넘어 나미라, 제시 천, 차연서로 연결됩니다. 이들은 애도, 시적 발화의 힘, 그리고 언어의 변혁적 가능성을 탐구합니다.

비쿠냐의 사운드 작품이 끝나면 무대 뒤 백스테이지에 설치된 나미라의 비디오 작업 〈테트라포비아(TETRAPHOBIA)〉가 상연됩니다. 이 작업은 차학경의 미완성 필름 〈몽골에서 온 하얀 먼지(White Dust from Mongolia)〉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나미라의 필름에서 텅 빈 영화관의 관객석을 타고 넘어 무대 위로 등장하는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은 차학경이 〈몽골에서 온 하얀 먼지〉를 위해 마지막 장면으로 구상한 이미지였습니다.

하지만 나미라의 목표는 차학경이 끝내지 못한 작업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미라는 차학경이 실현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방향 가운데 몇 가지를 파편적으로 선택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것의 잠재성을 기리고 있습니다. 차학경의 미완성 작품은 세대를 넘어 소통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버클리 미술관의 협조로 한국에서 최초로 소개될 예정인 〈몽골에서 온 하얀 먼지〉는 차학경이 1980년 한국에서 촬영한 필름입니다. 작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완성되지 못하고 유작이 된 이 필름은 일본 식민 통치를 피해 만주로 건너간 할머니와 어머니의 삶을 바탕으로 만주에 사는 실어증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차학경이 남긴 영상들은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의 흔적들이며, 우리는 이미지의 얼개 사이로 그녀가 상상했던 장면들을 함께 상상해야 합니다. 

Installation view of 《Tongue of Rain》 © Art Sonje Center

비쿠냐의 사운드 작품과 나미라의 비디오 작품 사이에 설치된 제시 천의 〈탈언어화의 악보(천지문 and Cosmos, no. 042823)〉는 드로잉 설치 작업입니다. 작가는 지배적 언어인 영어의 의미체계를 분열시키고 추상화하기 위해 스텐실(stencil) 기법을 이용해 로마 알파벳을 특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는 추상적 언어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또한 천장에 매달린 네 개의 프레임의 형태로 인해 중앙에 원 형태의 빈 공간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네거티브 형상과 추상 악보는 한국 민속춤과 소리의 재해석을 통해 활성화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작가는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의미 전달의 가능성을 실험합니다.

언어의 한계점에서 마주하는 것은 언어와 몸의 분리불가능성입니다 . 김언희 시인의 표현에서 빌린 “혀 달린”이라는 시적 표현은 신체기관이자 언어를 발생시키는 통로로서 혀의 이중적 존재성을 강조하고, 시 언어에 내재한 몸/감각을 발화시키는 트리거로 작동합니다.

차연서의 〈축제〉는 법의 부검 자료에서 바라본 무연고의 몸을 가위질로 필사하는 닥종이 콜라주입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유품으로 남겨진 채색된 닥종이를 잘라  유기된 몸을 그리는 창작 과정이 마치 아버지의 몸을 죽은 자들에게 공양하는 방식으로 수행하는 일종의 천도재와 같다고 말했습니다. 차연서가 만들어 내는 제의의 공간은 이 전시를 관통하며, 예술이 죽음과 상실에 대한 치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 탐구합니다.

《혀 달린 비》는 시적 발화의 치유의 힘과 혀의 저항의 힘이 결합하여 생성되는 제의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멈출 수 없는 비와 같은 유대감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목소리가 없었던 자들의 몸/감각을 기억해 내고자 합니다. 세실리아 비쿠냐, 차학경, 나미라, 제시 천, 차연서가 보여주는 세대를 초월한 대화와 소통의 통로에서 우리는 이러한 기억의 힘을 발견합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