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애착 도시》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18) ©송은

황문정 작가는 도시를 구성하는 다층적인 요소들 간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현상들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을 통해 탐구해왔다. 그가 관찰하는 도시의 현상들은 주로 동식물과 구조물, 특정한 장소에 관하며 종종 그것들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위치하기도 한다. 황문정은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고유한 특성을 포착하여 확장시키기도 하고 이들간에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면서 이를 독립된 장치 또는 장소특정적 설치작업으로 구현해왔다.

영국의 레지던시 프로그램(Airborne Artist Residency)에 참여하는 동안 황문정은 지역주민들의 생활과 주위 환경 그리고 그 곳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유기물을 관찰하고 그와 관련된 여러 작업을 선보였다. 새총과 기중기의 작동 원리를 이용하여 애완동물과 함께 산책을 즐기는 노인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는 놀이기구 〈해피 페치〉(2015)와 공원에 서식하는 다람쥐 등 작은 동물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제작한 〈다람쥐 계단〉(2015)은 모두 특정 지역의 주 서식물에 주목한 작품들로 해당 지역에 직접 설치되었다.

최근 참여했던 전시 《투명함을 닫는 일과 어두움을 여는 일》(강남아파트, 서울, 2018)에서는 재개발이 계획된 강남아파트의 빈 집 벽면에 허물어진 후 새로 들어설 아파트의 조감도를 트릭 아트의 방식으로 그린 〈미래의 가치, 최고의 프리미엄!〉(2018)을 선보였다. 가상의 이미지인 조감도와 특정 시점에서만 완성된 이미지로 보여지는 트릭 아트라는 두 가지의 다른 시각물에서 그는 ‘허구’라는 유사성을 끌어내었으며, 과거의 시간이 쌓인 공간에서 현재의 시점으로 아직 생성되지 않은 미래의 이미지를 그림으로써 생성과 확장, 그리고 소멸을 반복하는 도시의 생태를 나타내었다.

《무애착 도시》 전시 전경(송은아트큐브, 2018) ©송은

이번 전시 《無愛着(무애착) 도시》는 황문정 고유의 화법은 유지하되 개별적인 장치가 아닌 전시장에 도시 생태계에서 펼쳐지는 서사를 담아낸다는 점에서 이전의 작업과 구별된다. 먼저 전시장 입구에서 보여지는 〈무애착 도시_궤도〉(2018)는 현대 직장인들의 일반적인 옷가지가 회전문에 걸려 빙글빙글 돌기를 반복하는 영상작품으로, 옷의 반복적인 회전과 기계적으로 출퇴근을 반복하는 현대인의 행태가 오버랩되는 듯하다.

영상 옆의 벽이 살짝 뜯겨진 틈으로 전시장 내부를 들여다보면 바닥을 가득 채우고 있는 소금 위로 여러 형상들이 보인다. 빌딩 외장재로 흔히 쓰이는 유리, 아파트 단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회양목, 도심 곳곳에 흐르는 작은 개천 그리고 가로등이 현수막에 사용되는 천에 프린트되어 전시장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한쪽 벽면에 널려 있는 붉은 벽돌 벽과 시선의 가장 먼 곳에 비스듬히 놓여진 아파트는 모두 풍선으로 제작되었다. 내재된 공기의 상태에 따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는 풍선은 도시생태계 안에서 각각의 요소들이 상호작용하여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양상과 맞닿아 있으며, 그 물성적 측면에서 작가 특유의 아날로그적인 표현 방식과 도시 풍경에 대한 세심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황문정이 펼쳐내는 서사의 마지막은 송은 아트큐브가 위치해 있는 삼탄 빌딩 건물 자체로 향한다. 〈무애착 도시표본화〉(2018)는 삼탄 빌딩이라는 모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건축 재료들을 추출하여 한데 뭉쳐 조각화한 작업으로, 위에서 작품을 내려다보면 바닥과 평면을 이루는 듯하지만 측면에서 보면 마치 바닥이 솟아올라 그 내부가 드러난 듯한 모양새를 띈다.

전시장 바닥의 원목, 벽면에 붙어 있는 화강석, 창문의 유리와 난간 손잡이를 이루는 황동 그리고 조경용 회양목까지 건물을 구성하고 있지만 쉽게 인식되지 않는 건축재를 작품화하여 눈에 띄게 만듦으로써 요소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더욱 확장시킨다. 건물 내부의 기둥을 모조해 풍선으로 제작된 〈무애착 도시소실점〉(2018)의 일부는 〈무애착 도시_표본화〉(2018) 옆 실제 기둥들 사이에 세워져 있으며, 이 역시 수축과 팽창을 통해 도시 생태계의 반복적인 생성과 소멸을 가시화하는 요소로 작동한다.

긴 세월 동안 제자리를 지켜 온 과거의 것들은 새로운 계획으로 인하여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롭게 그 자리를 채우는 것들 또한 이전과 비슷한 것들이다. 이러한 현대 도시의 행태는 이젠 너무나 익숙해져서 오히려 그 양상이 반복되는 순간에도 우리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황문정의 《무애착 도시》는 이러한 행태가 조용히 그리고 끊임없이 반복됨으로써 우리 주변의 풍경을 재인식하게 하며 잊혀진 도시에 대한 애착의 흔적만을 남긴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