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llation view of 《The Vanishing Horizon: Episode.02》 © WWNN

《The Vanishing Horizon》은 시대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모습을 제시하기 위한 두 번의 연쇄적 전시로 기획되었다. 지난 전시가 지금의 현대 사회가 직면한 과학기술, 자본주의, 가치 관계와 같은 다층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면, 이번 전시는 보다 현상적으로 드러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혹은 이미지를 통해 포착되는 현실의 단면을 묘사하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네 명의 작가 강철규, 이정근, 임희재, Doooo(Masataka Shishido)는 각자가 그려내는 디스토피아의 형상을 통해 허구적 세계관을 탐구한다. '사라지는 지평선'으로 직역할 수 있는 전시의 제목은 모든 것이 소실되는 지평선을 넘어, 다시 어떠한 것도 감각할 수 없는 세계로 넘어가기 직전의 관문을 맞이한 동시대, 그 사회적 이면을 포착하기 위한 상을 그려낸다.

유토피아의 반의어 혹은 반-이상향을 의미하는 '디스토피아'는 미래 사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세계관을 토대로 다양한 장르 문화에서 일종의 양식으로 자리 잡았다. 디스토피아적 상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도사린 위험을 견지하는 것에서 시작하며, 현대 사회가 내포한 불안정한 경향을 미래로 투영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디스토피아'를 활용한 서술은 암울한 미래를 그려내거나 지금의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법론이 결코 아니다. 그것이 그려내는 미래상은 결과적으로 현재를 발화하기 위해 등장하고, 인류 근원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열망과 불안의 정서를 승화하는 형태로 표출된다.

디스토피아 세계관은 1960년대 이후 소설을 필두로 한 대중문화에서 유행처럼 등장했고, 2010년대 이후로는 현대 미술에서도 심심치 않게 활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실과 유리된 기이한 세계관을 서술하거나, 혹은 다양한 존재들의 형상을 기술적으로 증강된 대상으로 그려내는 여러 이미지가 파생되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적 상상은 신화를 모태로 하거나 현실의 구체적인 서사에 빗대어 삶에 침잠하며, 대중문화를 통해 2차적으로 가공된 대상을 경유함으로써 다시 우리에게 잔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Installation view of 《The Vanishing Horizon: Episode.02》 © WWNN

강철규는 회화를 구상함에 있어 문학적 서술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자전적 소설을 토대로 한 허구의 세계를 구축하는 방법론이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된 형식으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구축하는 회화를 곧 문학에서의 '투사' 개념에 빗대어 설명한다. 작가의 주체적인 생각이나 감정, 표상을 외부로 표출하는 일련의 과정은 회화의 세계 내부에서 발전되어 구체적인 서사를 토대로 한 형상으로 안착한다.

자신의 상황이나 심리적 상태를 투사하는 수단으로서의 회화는 그렇기에 자전적 소설을 토대로 하고, 그의 이전 시리즈는 개인의 성장 과정을 은유하는 일련의 서사적 단계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위기와 불안, 승화를 주된 심상으로 표현해 내는 그의 작품은 곧 자신을 투영한 여러 대상을 등장시키고 있다. 검은 구나 반인반수와 같은 구상을 활용하는 그의 서술법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겪는 실존적 물음을 가시화한다.

이정근은 작업실에서 겪었던 홍수 사건을 서술하는 기존의 작품을 확장하여, 자신이 겪었던 재해와 문제 환경을 디스토피아적 경험으로 연관 짓는 작품을 선보인다. 평면 작품을 보호하기 위한 액자를 입체 조형으로 발전시켰던 시도를 넘어, 이번 전시에서는 그 연장 선상에서 동물의 형상을 띠고 있는 오브제를 통해 역설적인 방식으로 작품 세계를 펼쳐내고 있다. 일종의 크리처를 연상케하는 진화적 오브제로서의 동물 이미지는 원시적인 동시에 강하게 기능할 수 있는 '전기 동물'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는 필립 K.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1968)에 등장하는 디스토피아적 전기 동물에 대한 회상에서 출발한 것으로,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치환하는 매질로 활용된다. 사진과 액자의 역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작품은 사슴의 송치를 촬영한 사진과 금속 뿔이 달린 형상을 하나의 동물 이미지로 엮어내고, 새의 발과 파도를 촬영한 사진을 잠수부 헬멧 내부에 위치시켜 기묘한 흉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동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하고 있는 작품은 보다 입체적인 방식으로 관객에게 자신의 경험적 디스토피아를 상상하도록 만든다.

임희재는 자연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을 가진 야생 동물이 다큐멘터리와 같은 기록물에 안착하는 과정에서 '가공된 자연'의 모습으로 편집되거나 소거되는 동물의 생동성에 주목한다. 그는 자연의 이미지가 재가공되어 보여지는 방식을 곧 이미지의 본질에 대한 사유와 연관 짓고 있으며, '상'을 회화로 옮기는 과정에 빗대어 '이미지의 변형'을 탐구하고 있다. 동적 움직임이 소실된 형상이 경유하는 복합적 변형의 과정은 회화적 행위로 전환되어 화폭에 옮겨진다.

그렇기에 그의 작품에는 다큐멘터리 영상 속 야생 동물, 박제된 새, 혹은 박물관 속 표본화된 생물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표본화된 동물의 모습은 회화의 틀과 유리 막을 경유하여 번역되는데, 그 과정에서 유실되거나 일그러진 상태로 포착되는 형상은 작가에 손에 의해 다시금 동력을 형성한 다층적인 이미지로 발현됨으로써 모순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Doooo(Masataka shishido)는 사실적으로 묘사된 신체의 일부를 작은 박스나 오브제의 형태로 변형하여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만들어낸다. SNS를 통해 한 번쯤 마주했을 그의 작업은 눈, 코, 입의 움직임을 통해 기이한 감각을 유발하는 이미지를 연출해냄으로써 화면을 바라보는 시청자를 놀라게 하였다. 공포 영화에서 활용되는 특수 효과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은 착용이 가능한 액세서리로, 이를테면 눈을 깜박이는 펜던트나 잘린 손가락 모양의 USB, 입을 벌리는 지갑 등으로 구체화되어 관객의 품에 안착한다.

과도하게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신체 부위는 언캐니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자극적인 이미지를 토대로 소셜미디어 속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신체를 변형한 모습 혹은 신체의 일부만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형상은 서브컬처에서 등장해왔던 형식으로, 작가는 이러한 문화적 현상을 작은 오브제에 옮겨냄으로써 이미지로서 잔존하는 동시대 디스토피아의 유행을 현상적으로 포착해 내고 있다.


- 문현정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