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ckness of Pictures》 전시 전경(Hall1, 2022) ©김혜원

[작가노트] 도안의 이해
 
캔버스 바탕과 물감이라는 물질적 재료가 그림을 구성하는 일차적 요소라면 이차적 요소를 이미지라고 생각했다. 그럼 그 이미지라는 것은 눈 앞에 보이는 것인가, 눈을 감았을 때 떠오르는 것인가? 잠시 고민했지만, 후자는 너무 밋밋한 것으로만 차 있어서 상상하기를 관뒀다. 바깥 풍경은 몇 시간이고 바라보면서 관찰할 수 있지만, 시각적으로 연상하지 않고서는 이미지에 다가갈 수 없었다. 실제로 보는 광학적인 현상을 ‘이미지’라 스스로 정하고, 자연스럽게 그걸 간편하게 취할 수 있는 도구로 사진을 택했다. 사진은 단지 도구적 수단이기 때문에, 사진 자체는 생소하지 않은, 누구나 언제나 어디에서나 보고 다니는 이미지였으면 했다.

이렇게 늘 보고, 찍는 일상적 풍경을 재료로 택하고, 고른 사진을 곰곰이 쳐다보는 것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실제로 보는 풍경과 달리 사진은 사물의 정면만 볼 수 있게 시점을 못 박아버린다. 지상 위의 세계를 뒷면이 평평한 부조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사진 속 공간은 비록 두 발로 거닐 수는 없겠지만, 누구에게나 한 번쯤 가 본 것 같은 공간일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가장 전면에 있는 물체로 가려진 배경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세상의 세세한 겹을 기억에서 끄집어내며, 그 각각의 겹을 머리 속에서 도안으로 재구성한다.

《Thickness of Pictures》 전시 전경(Hall1, 2022) ©김혜원

적당한 그리기 재료를 선택하면 비로소 그리기 시작한다. 그림을 실행하기 위해 도안을 만드는 단계에서 상상력과 생각을 비약시키는 실천을 거의 다 써버리고,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단계에서는 반복하는 것에만 온 힘을 기울인다. 물감을 짜서 계산된 색을 섞어 만들고 적절한 모양과 크기의 붓을 선택하여 물감을 화면에 바르는 행위는, 어느 순간 특정한 대상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기계적인 동작으로 겹을 만들어가면서 점점 더 작업의 섬세한 국면으로 치달으면, 온 몸의 신경은 붓을 움켜쥔 손으로 쏠린다. 대상을 그린다는 생각이 0에 수렴하는 그 때, 즉 창작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오직 손의 움직임만이 내 시각을 자극한다. 손목과 손가락 뼈 마디마디의 반복된 움직임으로 완성된 그림은, ‘작가성’을 담보하는 무언가라기보다 하나의 수공예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의 내용보다는 화면 안에 겹을 쌓아가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 자체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가 매 순간 창의적으로 구상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행위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작업 과정에서 창조적인 행위가 발현되는 시간은 짧게 지나가고, 나머지 시간은 예술적 창의와는 무관하게 흘러간다면, 그림을 그리는 매 순간의 합인 그 시간을 도대체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