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나의
머머스(Murmurs) 전시는 미친 듯한 피트니스
수업이 끝난 직후의 현장을 연상시켰다. 뒤죽박죽으로 놓인 요가 매트,
간헐적으로 작동하는 모터 기반 필라테스 기구, 그리고 바닥에 무기력하게 놓인 탁한 액체가 든 기묘한 주머니들. 이 낯선 풍경을 더욱 이상하게
만드는 것은, 인접한 공간에서 반복 재생되는 1채널 영상
〈Who Is John Galt?〉(2024)의 불안한 자기
암시 문구들(“All is well”, “I’m a miracle worker”)이 서로 경쟁하듯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Self Love Club》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 유해나는 웰니스
문화의 범람과 그 이면의 어리석음·부조리성을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 이를
어딘가 우스꽝스럽지만 결국 교묘하고 기만적인 사회문화적 힘으로 제시한다. 이번 전시의 중심 서사는 웰니스
산업 복합체가 판매하는 ‘변신’의 약속, 그리고 그 변화를 달성하기 위해 작동하는 은밀한 메커니즘이었다. 영상
작업(요가 영상과 함께 Goop, Erewhon 등 웰니스
기업의 상품 이미지가 교차됨)을 포함해, 전시는 총 8개의 개별 조각 설치로 구성되었으며 각각의 작품은 이상한
부품들이 기괴하게 조합된 조형물로 제시되었다.
〈Reformer Sequence〉에서, 형태가 불규칙한 투명 플라스틱
주머니—양수 주머니나 링거팩을 떠올리게 하는—가 모터로 작동하는
필라테스 리포머 같은 장치 위에 놓여 있다. 작동하면 두 개의 금속 노브가 말랑한 주머니를 주무르듯
비비면서 곧 표면이 파열될 듯한 마찰을 만든다. 이 역동적인 움직임은 내부의 액체를 휘저어, 그 안에 떠다니는 씨모스(sea
moss), 구기자(goji berries), 인삼(ginseng),
차가버섯(Chaga) 같은 유기물들이 뒤엉켜 요동치게 한다. 모두 글로벌 웰니스 산업에서 상품화된 약재들이다.
또
다른 두 개의 기형적 액체 주머니는 마치 긴장성 혼미 상태의 신체처럼 프린트된 요가 매트 위에
축 늘어진 채 놓여 있다. 그 옆에는 척추뼈 모양을
연상시키는 금속 덤벨이 함께 배치되어, 신체의 형태와 신체를 ‘교정하는
도구’가 자연스럽게 결합되도록 했다.
전시의
다른 지점들에서 유해나의 플라스틱 기관들은 더 많은 ‘고문’에
처해 있었다. 묶이고, 접히고, 갈리고, 다양한 운동 스트랩과 손잡이에 매달린 채 괴상한 자세를
취한다. 이러한 불안한 동작들은 작품을 단순한 조형적 추상에서 끄집어내어, 우리 사회가 집착하는 신체 개선의 강박적 에너지 속으로
위치시킨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 괴상한 조각들처럼, 우리 역시 사적 허영의 사슬에 묶인 슬픈 ‘액체 주머니들’이라는 것.
유해나의
주제적 사유는 현재의 시대정신과도 절묘하게 맞물린다. 필자는 전시를 방문하기 직전 코랄리 파르지앗(Coralie Fargeat)의 바디 호러 영화 「더 서브스턴스(The
Substance)」(2024)을 보았는데, 여기서
나이 든 피트니스 스타 데미 무어가 자신의 젊고 완벽한 도플갱어(마가렛 퀄리)를 ‘출산’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젊은 분신은 무어의 체액에 기생하여 완벽한 외모를 유지한다.
영화에서 침전된 액체, 바늘과
링거팩 속 썩어가는 액체, 미용을 위해 파괴 직전까지 몰린 신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유해나의 연못 찌꺼기 같은 액체가 담긴 주머니들과 부드러운
신체적 형태는 이 기괴하면서 매혹적인 이미지들과 직접적인 공명 관계를 형성했다. 〈Deep Breathing Sequence〉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사지
모터가 액체 주머니를 마치 숨을 못 쉬는 폐처럼 무자비하게 압박한다. 〈Suffocate〉에서는 뒤틀린 주머니가 구속된 매듭 속에서 부풀어 오르며, 그
괴이한 형태 때문에 처벌을 받는 듯하다.
유해나는
살아 있는 생명체에서 짜낸 체액 자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추출’이라는 과정 전반에는 큰 관심을 보였다. 예를 들어 그녀의 요가 매트는 비서구 치유법이 미국식 대중문화로 전유·상품화되는 과정을
담은 이미지들로 프린트되어 있다. 마릴린 먼로와 오드리 헵번의 요가 자세 사진, 괄사(guasha) 광고, 인드라
데비(Indra Devi)와 그녀의 1959년 출간본 『Yoga for Americans』 이미지 등이 그것이다. 이 요가
매트들은 식민주의적·자본주의적 소비 구조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판을 제시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아 전시의 긴장감을 약간 분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조각 작품들이었다. 〈Lumps on the
Root〉에서는 뒤엉키고 혹처럼 부풀어 오른 금도금 인삼 덩어리가 벽에서 매달려 있다. 여기서 유해나는 치유의 상징인
뿌리(인삼)를 그 실용적·약리적
맥락에서 떼어내어, 말 그대로 ‘황금으로 치장된 사치적 페티시’로 변모시킨다. 이 변화된 조각은 단지 몸이 ‘연금술적 변신’을 욕망한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 아니라, 웰니스 산업이 가진 채굴적 자본주의의 이면을 정확하게 은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