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나(b. 1990)는 버려진 사물, 비디오, 사운드, 음식, 발효, 냄새 등 물질과 비물질성을 한 데 모아 작동하는 하나의 퍼포먼스적인 설치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는 이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불안과 욕망의 근원을 탐구하고, 소비자이자 현대인으로서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에 대해 관심을 가져 왔다.


유해나, 〈Maintain Disgust〉, 2018, 혼합재료, 가변크기, Sterling Wells와 협업, 《Maintain Disgust》 전시 전경(AWHRHWAR, 2018) ©유해나

유해나는 널리 유통되고 소비되는 일상적인 상품들을 작품의 소재로 끌어들여, 이를 통해 변화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생하는 문화, 정치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2018년 작품 〈Maintain Disgust〉의 경우, 버려진 일회용기와 직접 재배한 재료를 활용해 세계화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이 작업에서 유해나는 재배한 재료들을 소비주의를 상징하는 플라스틱 일회용기에 담아 밀폐함으로써 순환의 흐름을 제한한 조각 설치로 만들어 냈다. 플라스틱이라는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생의 흐름이 정체되는 양상은, ‘수용(containment)’에 대한 속성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유해나, 〈Maintain Disgust〉, 2018, 혼합재료, 가변크기, Sterling Wells와 협업, 《Maintain Disgust》 전시 전경(AWHRHWAR, 2018) ©유해나

작가는 이를 통해 세계화라는 문화/자본주의적 현상 안에서 상품과 물자의 국경 간 이동은 장려되는 한편, 사람의 이동은 엄격한 조건 하에 제한되는 현실에 대해 재고한다. 아울러, ‘수용(containment)’과 ‘유지 및 보수(maintance)’에 대한 차이에 대해 탐구하며, 그는 사람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많지만 자유롭게 오고 나갈 수 있는 출구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인지 질문한다.

유해나, 〈The Birth of Venus〉, 2019, 혼합매체, 가변크기 ©유해나

한편, 2019년에 처음 선보인 설치 작품 〈The Birth of Venus〉는 유해나가 어머니의 암 투병 과정을 지켜보며 품은 신체에 대한 사유를 반영한다. 건강을 되찾기 위해 다양한 동서양의 치료법을 믿고 의지하는 어머니를 통해 작가는 질병과 노화에 대한 사회적 현상과 시스템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되었다.

유해나, 〈The Birth of Venus〉, 2019, 혼합매체, 가변크기 ©유해나

자연의 섭리에 따라 인간의 신체는 노화를 겪고 죽음을 향해 간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이러한 질병과 노화를 개인의 실패로 치환해 자본의 이익 구조로 편입시키며, 다양한 ‘치유법’들이 통제 불가능한 생물학적 반응을 다스릴 수 있는 해법으로 상품화된다. 이러한 현상은 곧 사람들로 하여금 ‘정지되기를 바라는 욕망’을 갖게 한다.


김혜원, 〈사진촬영금지〉, 2022, 캔버스에 수채, 과슈, 아크릴 미디엄, 45.5x45.5cm ©김혜원

이러한 사유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 〈The Birth of Venus〉는 화장품을 담은 플라스틱 용기, 약초 추출물, 알약, 오일, 각질 제거 마스크, 인조 속눈썹, 향수처럼 몸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약속하는 상품들과 더불어, 수잔 손탁의 『은유로서의 질병』(1978)과 샹탈 애커만의 『My Mother Laughs』(2013)에서 가져온 사진과 텍스트 등을 엮어 동시대의 재료적 풍경을 시각적으로 기록한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 ‘웰니스(wellness)’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건강과 질병의 상품화와 더불어 유한한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The Oriental Sauce Factory》 전시 전경(갤러리 신라, 2022) ©갤러리 신라

2022년 갤러리 신라에서 열린 유해나의 국내 첫 개인전 《The Oriental Sauce Factory》는 ‘냄새’라는 비물질적 요소를 작업의 주된 소재로 삼으며 ‘타자성’과 ‘신자유주의 시장’의 구조를 탐색한다.
 
작가는 충청북도 음성에 소재한 아버지의 간장 공장에서 제조과정을 지켜본 것을 계기로, 냄새가 특정한 공간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인지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매체라는 점을 경험하였다. 이에 따라서, 그는 전시 《The Oriental Sauce Factory》의 설치 작품을 통해 이를 구체화시키고, 관객을 그 경험으로 초대하고자 했다.  


《The Oriental Sauce Factory》 전시 전경(갤러리 신라, 2022) ©유해나

이러한 과정을 위해 작가는 “액체 순환 여과 설치물”이라는 공장 운영 시스템의 설치를 전시장에 구현했다. 타자성을 지닌 짭짤하고 짙은 갈색의 소스(간장)은 이 공장이 작동함에 따라 “소비, 추출, 착취”라는 일련의 과정을 겪게 된다. 작가는 이를 통해 구현된 시스템의 통제와 감시 가운데 존재하는 긴장감을 드러낸다.


《The Oriental Sauce Factory》 전시 전경(갤러리 신라, 2022) ©유해나

우선, 〈메주 (Dictee)〉(2022)는 소스(간장)의 예비적 상태를 보여준다. 이 조각은 차학경의 저서 『딕테』에서 발췌한 구절을 담은 한지 조각들과 면역체계에 도움을 주는 한약재, 대두를 한지로 함께 섞은 후, 손으로 메주 모양을 만들어 발효에 필요한 누룩 곰팡이의 생성을 유도한다.
 
여기서 『딕테』에 등장하는 여성 화자들 -유관순, 잔 다르크,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그리고 미국 1세대 이민자인 차학경의 어머니 허영순 여사, 차학경 -의 고통의 서사는 이 소스(간장)의 재료로 쓰여진다.


유해나, 〈주입기계: 너는 나를/나에게〉, 2022, 혼합매체, 가변크기 ©유해나

한편, 전시의 주요 작품인 〈주입기계: 너는 나를/나에게〉(2022)는 “순환 여과 장치”로서 작동된다. 설치물 안에서는 메주, 소금물, 대추, 오레가노 오일, 타이레놀, 애드빌, 마그네슘 등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의약품들과 쌍화탕에 쓰이는 한약재들이 서로 뒤섞이고 용해되어 하나의 혼합체가 된다.
 
이 액체는 좁고 긴 미로와 같은 아크릴 수조를 통해 폭포처럼 흐르며, 설치 구조물은 소스를 가두고 지배하는 동시에 전시 공간을 구분 짓는다. 이 구조 안에서 소스(간장)은 의료용 튜브와 연결된 왁스 조각, 주사기, 『딕테』의 언어들, 약통, 암호 화폐, 복권, 각종 다국적 기업의 로고들이 새겨진 알루미늄 조각 등 수중 장애물들을 담거나 피하며 갈 길을 나아간다.


《The Oriental Sauce Factory》 전시 전경(갤러리 신라, 2022) ©유해나

갤러리 뒤편에 설치되어 있었던 영상 작업 〈체크메이트〉(2021)는 AI 프로그램으로 생성된 음성을 통해 엘리자베스 여왕 2세가 우롱차 “Bai Hua”를 ‘오리엔탈 뷰티-동양의 아름다움’으로 명했다는 차의 유래를 설명한다.
 
이후 영상은 간장 공장에서 여성 근로자들이 병 주입 및 포장 작업을 하는 장면으로 바뀐다. 간장병들이 레일을 따라 주입 및 포장과정을 마치는 단계에서 소스(간장), 그 기원의 복잡성은 브랜딩과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희석되고 감소되어진 상태이다.
 
유해나의 우의적인(allegorical) 공장은 제한된 규모 안에서 시장의 폭력성을 담담히 노출시키면서, 시간에 따라 증가하는 냄새의 강도를 통해 점차 공간을 잠식해간다.


유해나, 〈주입기계: 너는 나를/나에게〉, 2022, 혼합매체, 가변크기 ©유해나

소스(간장)의 근본적 본질을 컨테이너에 담아내려는 노력과는 무관하게, 소스는 그 컨테이너에 스며들고 발효하여 유기성을 생성하고, 더 나아가 병 안에 담긴 물체들을 부식시키기도 한다. 자극적인 소스의 타자성을 억제하고 순응성을 유지하려는 시도는 살아있는 엔트로피를 향해 나아가려는 소스 본연의 유출적 저항성과 부딪힌다.
 
이분법적인 제조 시스템과 자연발생적 발효의 과정은 상호의존성이라는 경계에서 서로 경쟁하며, 이 가운데 발생하는 욕망과 통제의 충돌을 만들어 내는 듯 하다. 작가는 궁극적으로 냄새, 소리, 그리고 박테리아의 성장을 통해 불가측성을 확장시키며 구체화해 나간다.


유해나, 〈L’Oriental 담금주병 시리즈〉, 2023, 혼합재료, 가변크기 ©유해나

이후 제작된 ‘L’Oriental’ 시리즈(2023)에서 유해나는 ‘Oriental’이라는 단어가 라벨이 되어 상품화 되었을 때 상상할 수 있는 상품들-샐러드 소스, 향수, 비누, 차 등-을 병 시리즈로 구현하였다. 
 
대표적으로 이 작업에서 작가는 동양의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혹은 갖고 싶어하는 욕망적인 토템들을 알코올이 담긴 병에 넣고, 불로초로 상징되는 약초들과 함께 숙성시켜 하나의 담금주를 만들었다.
 
아시아 현대인의 욕망, 특히 빠른 속도로 경제 발전을 이룬 한국의 자본주의/소비주의 문화와 욕망은 담금주 병 안에 응축되어 또 다른 변화의 시간을 겪게 된다.


유해나, 〈I Was Placebo (3)〉, 2024, 블로운 글래스, 스펙큘럼, 왁스, 체인, 참 장식, 도금된 인삼, 구슬, 알약, 끈, 20.3x61x17.8cm ©유해나

이처럼 구름버섯과 황기(약용 뿌리)와 같이 몸에 좋다 알려진 식품이나 악세서리와 같은 사치품 등을 보존과 부패의 힘 사이에 가두는 유해나의 작업은, 최근 담금주 병에서 나아가 유리 구슬을 부풀려 만든 형태 속에 고정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어, ‘I Was Placebo’(2024) 시리즈는 유기적인 곡선을 지닌 유리 컨테이너 안에 보관된 각종 유기물과 사물, 그리고 각종 의료 기구가 그 표면을 접촉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의료용 가위나 집개 등은 마치 수술 현장에서 신체를 다루듯 유리 조각을 고정시키거나, 관통하거나, 자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작업은 오늘날 ‘완벽한’ 신체에 대한 욕망과 두려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며 발전해온 의학 기술의 역사, 이와 더불어 형성되어 온 생존에 대한 자본화라는 시스템 속에서 ‘안전’과 ‘신뢰’의 의미에 대해 묻는다.  


《Self Love Club》 전시 전경(Murmurs, 2024) ©유해나

한편, 2024년 로스앤젤레스 Murmurs에서 열린 개인전 《Self Love Club》에서 유해나는 요가와 필라테스와 같은 셀프케어 산업 및 문화에 주목했다. 작가는 몸과 마음을 잇는 전통적인 개념과 정신을 바탕으로 오랜 역사를 구축해온 요가가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 이후 어떻게 그 정신이 분해되고 상품화되어 왔는지 주목했다.


《Self Love Club》 전시 전경(Murmurs, 2024) ©유해나

식민지배 이후 요가는 서구로 유입되며 점차 기형적으로 변화해 가기 시작했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페티쉬와 더불어 건강, 미용에 대한 기능적 효과는 여성을 중심으로 한 요가의 대중화와 함께 뷰티, 영양제와 같은 부가산업까지 급속도로 비대해지게 만들었다. 
 
이는 허브 및 약재들의 재배와 같은 토착민들의 지식, 자원, 노동에 대한 수탈과 나아가 환경에 대한 과도한 개입으로까지 이어졌다. 오늘날, 화장품 기초재료인 글리세린의 원료인 팜유는 노동 착취로 생산되고, 과도한 재배와 유통은 심각한 탄소 배출을 발생시키고 있으며, 페루의 안데스 지역에서 자라던 마카와 같이 다수의 야생종은 재배종으로 개발되며 생태계 순환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GMO처럼 오늘날의 요가는 1920년대 초 서구의 상반된 관점에서 탄생한 필라테스 및 수많은 운동과 이종교배되어 산업의 개척을 꾀한다.


《Self Love Club》 전시 전경(Murmurs, 2024) ©유해나

식민지배 하에 형성된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신자유주의 발전은 개인의 몸과 정신을 반복적으로, 또 자발적으로 자본의 피식민지로 만들며 절단된 관계 속의 고립과 자기의심에 빠트린다. 작가는 여기서 우리는 그 주체의 자리에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자아의 회복, “스스로를 사랑하기”를 통해 환심을 사는 ‘셀프러브’ 산업은 결국 자본주의 사회 밖을 꿈꾸는 자아를 치유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다시 노동의 사이클로 복귀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작용한다. 작가는 전시를 통해 이러한 셀프러브 산업의 속성과 그 과정에서 변질된 역사를 복용하는 신체와 양가적인 감정의 기형적 풍경을 펼쳐 놓았다.


《Self Love Club》 전시 전경(Murmurs, 2024) ©유해나

이렇듯 유해나는 소비자에게 희망을 약속하는 동시에 통제하는 시스템과 규율이 지닌 힘, 그리고 그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가져 왔다. 그리고 물질과 비물질을 오가는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통해 그 이면에 모순과 현실을 공감각적인 차원에서 제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를 경험하고 재고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나의 작업을 통해 체계적·사회구조적 실패를 전달하고 싶다. 이러한 실패를 주어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작품 속에 반영하고자 한다.”    (유해나, 아트인아메리카 인터뷰 중) 


유해나 작가 ©Contemporary Art Review Los Angeles

유해나는 이화여자대학교 섬유예술과 학사를 전공하고, ArtCenter College of Design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최근 개인전으로는 《Self Love Club》(Murmurs, 로스앤젤레스, 미국, 2024), 《Severance》(Bibeaukrueger, 뉴욕, 미국, 2023), 《The Oriental Sauce Factory》(갤러리 신라, 서울, 2022), 《The Birth of Venus》(P.Bibeau, 브루클린, 미국,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Æterna Flux》(Le Cyclop de Jean Tinguely, 밀리-라-포레, 프랑스, 2025), 《Body Counts》(Torrance Art Museum, 토런스, 미국, 2025), 《인공우아》(화이트노이즈, 서울, 2025), 《Pigment Compound》(P21, 서울, 2025), 《Porsche SCOPES》(레이어20, 서울, 2023), 《I’ve Gone To Look For America》(Murmurs, 로스앤젤레스, 미국, 2023)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유해나는 2024년 아트 인 아메리카가 선정한 “New Talent” 작가 20인에 이름을 올린 바 있으며, 현재 서울과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