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술적 우화는 오늘날의 ‘영원한 현재’ 속에서도
되풀이된다. 인공지능(AI)은 데이터의 층위적 누적과 역전파
기반의 반복 학습을 통해 ‘지능’을 생성하며, 그 구조적 축적은 경로 의존적 기술 패러다임 안에 고착되어 있다. 딥러닝의
블랙박스적 성격(설명 불가능성)은 소급적 추적과 수정 메커니즘을
거의 무력화시키며, 결과적으로 기술적 자율성의 시뮬라크라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알고리즘적 편향과 데이터 정치로 대표되는 기술 시스템 내부의 권력 관계는 또한 인간의 의도를 초과하며, 특히 인간/기계, 논리/감정, 입력/출력, 의도/자동화와 같은 이항 대립의 경계가 해체되는 혼란의 지대에서
그 불투명성이 드러난다.
이때 ‘글리치(glitch)’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선언이다. 시스템이 일시적으로 내재한 편향, 불투명성, 혹은 인간 인지와의 불일치를 노출하는 균열에서 비판적 성찰이 발생한다.
노상호의 작품 〈Permanent Beta – How Can I Not Believe
in God?〉(2020)은 ‘영원한 베타(permanent beta)’ 상태에 갇힌 디지털 캐릭터들을 통해 시뮬라크라의 역설을 드러낸다. 전지적 관찰자인 작가는 물리 법칙을 초월하는 ‘마우스 클릭의 기적’을 통해 그들의 세계를 조작하고, 그 속에서 신앙의 선언과 고통의
순환을 동시에 유도한다.
관람자는 서사 속에서 주인공, 창조자, 목격자 사이를 오가며, 데이터의 무한한 소비 과정 속 ‘기적의 목격자이자 공모자’로 남게 된다. 작품은 기술적 신앙을 밈(meme)적 미학으로 해체하며 권력의 공백을
시험하는 ‘시스템 테스트’로 변모한다.
aaajiao는
〈bot〉(2017–2018)에서 설명 불가능한 ‘흔적’을 삽입함으로써 알고리즘적 현실을 해체하며, 스크린을 ‘물리적·디지털의
경계막’으로 다뤄 데이터가 촉각적 피드백을 통해 신체 기억을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탐구한다. 이어 〈Agent〉(2023)에서는
버섯 균사체에서 영감을 받은 가상의 존재(‘인터넷 보이드’)를
통해 인공지능이 생성하는 환영과 인간의 상상력 사이의 공생 관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TAN Mu는
해저 통신망과 데이터 흐름, 우주 관측과 기억 체계 등 현대 사회를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탐구하며, 기술사를 개인적 경험과 연결짓는다. 그는 기술을 신체의 확장인 동시에
기억의 외화로 바라보며, ‘연결과 지속성’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본질을 질문한다. WU Ziyang의 영상 〈Agartha〉(2024)는 미디어 고고학, 다큐멘터리 자료, 현장 조사, 그리고 공상적 서사를 결합해 우리의 기술생태학적 현재를
추적한다. 그는 우연적 기술 연결망을 통해 형성된 자아와 그 이면에 잠재한 물질적·정신적 위험을 사유한다.
RAO Weiyi의
회화는 정보 과잉 시대 속 정서적 균형을 탐색한다. 고요한 장면 속의 고독한 인물 혹은 친밀한 두 인물을
묘사하며, 디지털 시대의 이질적 공간(heterotopia)에서
소외되지 않은 감정의 안식처를 마련한다. 이들 작가는 인공지능에 대한
‘숙련’이나 ‘통제’를 지향하지 않는다. 대신 예측 불가능성과 미끄러짐, 공동 창발을 포용하며 예정된 순환을 넘어서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그들의
실천은 해결이 아닌 모호함, 유려함이 아닌 마찰을 전면에 둔다.
《비욘드 더 서큘라 루인스》는 따라서 ‘봉합의 장소’가 아닌 ‘근원적 잠재성의 공간’을
제안한다. 인식이 굴절되고, 예술이 기술과 비판적으로 얽히며, 새로운 가능성의 발아점이 되는 지점 — 바로 그 틈에서 전시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