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반
작가가 〈DMZ Landscape series - 707op에서 본 금강산〉의 풍경은 일차적으로 마치
진경산수화처럼 간략화되고 대담한 필치로 그려진 회화 작업들인데, 산세의 운동성과 속도를 마치 하나의
유기적인 생명체의 기괴한 형태인 양 주조한 것이다―실제 이를 종이에 스케치한 드로잉은 상대적으로 이를
더 명확하게 보존한다. 담백하게 보이는 풍경은 거대한 풍경을 너른 붓질들로 수축한 것이고 따라서 묵중한
무게를 갈음한다. 여기서 회화는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차라리 인상을 재현한다.
실제
먼 거리에서 조망한 풍경에서 통일전망대의 대형 망원경을 통해 조여 본 검은 구멍(=벙커)이 나 있는 금강산으로 시각이 전이되는 작가의 망막 체험 이후, 망원경의
렌즈로 필터링된 실재이며 동시에 실제를 수축해 반영하는 후자의 이미지는, 망원경을 투명한 매체로 상정함으로써, 곧 망원경이 매개되지 않은 하나의 평면으로 펼쳐짐으로써 회화는 성립할 것이다.
두 시선의 종합은 갈(볼) 수 없는 거리를 볼(갈) 수 있는 거리로 반영하며 금강산을 기괴한 형태로 재조립한다―그림은 그 갈 수 없음의 거리를 망각하게 한다.
드로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오히려 드로잉은 회화의 이전 작업보다는 또 다른 작업 양상으로 분류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이해반의 회화는 그리는 방식 자체를 간직한다. 이를
현대 회화의 어떤 당연한 작동방식으로 본다면, 이해반은 장소 자체에서 재현 (불)가능성의 범주가 아닌, 표현의
자율성을 얻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특이점이다). 작가에게는
실제의 재현보다는 체험적 실재의 반영이 더 중요하며 이는 회화의 자율성을 보존한다.
다시
〈길 위에서〉의 아홉 점의 그림으로 돌아오면, 좌측부터 두 개의 강원도의 산, 스치는 풍경, 숲의 세 존재들, 발사되는
그리고 발사된 우주선, 창문 프레임을 포함한 열차 안, 역시
창문 프레임을 포함한 두 개의 침대가 있는 열차 안, 석양이 지는 풍경의 순으로 설치가 이어지는데, 사실 이 자체가 여행의 흐름을 설계한다. 고정된 순간에서 이동하는
시점으로, 그리고 꿈에서 이뤄지는 공상적 차원을 거쳐 이동과 기억이 혼합된 파편적 이미지들이 이어지는
것이다. 꿈을 꾸고 있는 이의 머리에 말풍선이 달려 있듯, 그리고
정방형의 동일 사이즈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이 그림들은 일종의 서사 구조를 띤 드로잉북으로 엮으려던 작가의 계획으로부터 출현했다, 물론 이는 회화의 형식으로 안착되었지만.
드로잉북은
동일한 프레임을 통한 분할의 코드, 그리고 동일한 프레임의 축적을 통한 시계열상의 서사의 흐름을 가정한다. 〈길 위에서〉를 드로잉북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여기서 회화는 순간-깊이의 코드보다는 지속-넓이의 코드를 가진다. 이를 각각의 이름들로 분류하고, 별도의 핸드아웃으로 문장들을 만들어
텍스트의 기의를 부여한다면, 곧 이미지에 기표의 성격을 부여한다면, 이는
읽기의 한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아홉 점의 그림은 하나의 연작 시리즈로 갈음될 수 있는 한편, 개별적(인 제목)으로
분할되지 않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