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수, 〈알프스 #49〉, 2018, 디지털 피그먼트 프린트, 65 x 50 cm © 김천수

하얗게 눈이 덮인 산등성이 사이로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오브제들. 지극히 한국적인 산과 골짜기, 흙과 나무 숲 사이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면 잊혀진 유령처럼 빈 건축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때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을 알프스 스키장의 현재에는 폐허와 같은 공허함과 스산함, 정적만이 남아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빛이 바래고, 곰팡이에 상하고, 물리적으로 부서지고 버려진 공간은 알프스 스키장의 화려했던 날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조금 충격적일 수 있다. 마치 대상이 파괴되는 이 공간을 카메라로 담아내고 있지만 기억과 버려진 장소로서의 현재를 사진에 함께 담아내고 있다.

한때 생동감에 넘치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었을 스키장은 바뀌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해 죽은 공간이 되어 버렸고, 철거도 재생도 되지 못한 채 현재 유령마을처럼 버려져 있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고 레저도 스키도 이국적이었던 시절, 바쁜 일터에서 벗어나 신비롭고 세련된 느낌의 스키장에서 설원을 내달리던 모습들은 두근거리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변해 해외여행이 일상화되고, 새로운 시설들이 생겨남에 따라 알프스 스키장은 자연히 도태 되었고, 공간과 건축은 시대에 뒤떨어진 값싼 모방물로 전락해 버렸다.

버려진 공간을 돌아다니며 조심조심 흔적들을 담아가는 김천수의 렌즈를 천천히 따라가 보다 보면, 과거와 현재의 공간에 대한 기억과 슬픔이 교차한다. 한창 알프스 스키장이 사랑받던 시기, 스키복을 입고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사람들이 한가득 담긴 사진들은 이제는 빛이 바래고 먼지가 쌓이며 곰팡이로 얼룩진 채 변질된 텍스처를 이루고 있다. 곰팡이, 파괴, 변색, 흙먼지로 뒤덮인 장소는 필터링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퇴색되어 있다. 멈추어 버린 리프트들, 버려진 이름표, 무의미하게 매달려 있는 전등과 널브러진 소품들은 미처 정리되지 못한 채 수장되어 버린 선박 잔재처럼 현재의 공간에 머물러 있다.

사람과 달리 공간은 죽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면 장소의 성격이 바뀌고 공간은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의미를 찾기 나름이다. 그래서인지 목적을 잃은 공간은 더 무섭고 무겁고 슬프다. 생기를 되찾아 보기 위해 새로 칠했을 리프트의 강렬한 빨간색과 파란색은 다가오는 퇴행에 항거하다 실패한 쿠데타처럼 버려진 잔재들과 함께 시간에 갇혀 있다. 과연 이곳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게 된다면, 누군가 다시 이곳을 재개장하려 한다면, 어떤 생각과 어떤 마음으로 일을 진행하게 될지 사뭇 궁금하다.

지난 몇 년간 화려함을 자랑하던 평창에 대비해 더욱더 어둡고 슬픈 시간을 보냈을 이 공간이 언젠가 다시 힘차게 살아 움직이는 상상을 해본다. 이전의 영광을 되찾아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을 때, 작가가 생기도는 Alps의 또 다른 순간들을 렌즈에 담아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