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구조를 지각하는 장치가 되다
이번 전시는 언어, 속담, 자연재해, 혈연 등 다양한 질서와 규범을 미시적으로 재구성하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중심
연구〉는 추의 무게와 천의 긴장을 통해 안정적 구조처럼 보이는 시스템의 유동성을 드러내며, 인간이 의지하는
중심의 허상에 질문을 던진다.
허들 모양의 회화작품에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등 모순되는 속담들이 병치된다. 언어적 질서마저 충돌하는 현실을 드러냄으로써, 작가는 필연적 진리나
절대적 의미의 부재를 시사한다.
작품 〈착각〉에서는 자신을 닮은 그림 앞에 선 계란의 형상을 통해 정체성과 이미지 사이의 간극, 재현과
실재의 불안정성을 유머러스하게 드러낸다. 회화는 단지 보는 것을 넘어,
오인과 혼동을 유발하며 인식의 메커니즘 자체를 문제 삼는 장치로 기능한다.
신화와 구조, 아틀라스를 다시 읽다
전시 제목과 더불어 공간 구성 전반에 흐르는 사유적 중심축은 ‘아틀라스’라는 상징이다. 신화 속 존재 아틀라스는 원래 천구를 짊어진 형벌의
상징이지만, 시간이 흐르며 체계화된 지식과 구조의 은유로 자리 잡았다.
조은시는 이 아틀라스를 회화적 언어로 다시 호출한다. 작가노트와 전시서문에 따르면, 그는 아틀라스를 하나의 정체화된 이미지로 고정시키기보다, 오해와
유추, 전유의 반복을 통해 다양한 해석의 지층을 만들어낸다.
작품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닮음’과 ‘불가항력’이라는 주제는, 동일한
기원을 가지되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미지들의 배열로 이어진다. 씨앗과 알, 땅속 형제와 땅위 형제, 갈색과 흰색의 계란, 각각의 오인과 전복은 해석의 단일화를 거부하며, 회화를 하나의 시각적
사유 구조로 기능하게 한다.
동시대 회화의 새로운 접점
이번 전시는 단순한 회화 전시를 넘어, 회화라는 장르가 동시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시도다. 구조적 균열과 사유적 틈, 오인과
기호의 중첩 속에서 조은시는 하나의 해석이 아닌 복수의 독해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 틈은 감각적 긴장과
유희로 채워지며, 관객에게 능동적 개입을 요청한다.
조은시는 회화를 “인식의 매개”로 삼고, “우리는 어떤 전체의 일부이면서도 하나의 독립된 존재”라는 관점을
통해 체계와 개별성, 질서와 그 균열을 병치시킨다. 그가
구축하는 회화적 세계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넘어선, 하나의 사고 실험장이다.
전시는 8월 6일부터 24일까지 열리며, 일부 작품은
Kiaf Seoul 갤러리밈 부스(A31)에서도 동시 공개된다. 전시 관련 자세한 정보는 갤러리 공식 웹사이트 및 SNS 채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