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시, 〈방법론적 접근 A Methodological Approach〉, 2025, oil on canvas, 65 x 65 cm © 조은시

조은시는 닮음에 대한 사유를 회화의 기호 체계로 시각화 한다. 그의 회화는 단순한 풍경이나 대상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기호와 상징, 기하학적인 형태, 언어 유희를 통해 지적인 플레이를 시도한다. 닮음은 단지 외형적인 유사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적 질서나 관계의 구조로 작동하며. 논리를 넘어선 새로운 질서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의 회화는 어떤 의미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간접적이고 파편적인 징후들을 통해서 암시함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단서를 수집하고, 규칙을 유추하며, 인과 관계를 스스로 구성하도록 유도한다. 이 글은 개인전 《트윈 플레임(Twin Flame)》에서 조은시가 시도한 닮음의 구조가 보이지 않는 힘이나 체계의 질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논하고자 한다.

전시 제목인 ’트윈 플레임(Twin Flame)’은 ‘쌍둥이 불꽃’ 정도로 해석이 된다. 의미를 좀 더 파악하자면, 한 영혼이 둘로 나뉘어 서로 다른 두 사람 안에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반하여 거울처럼 비추는 강렬한 관계로 볼 수 있다. 조은시는 회화 또는 회화에 기반한 설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펼쳐왔으며, 이번 개인전 제목 역시 창작의 숙명을 짊어진 작가로서, 자신의 지적 사고의 출발이 되는 계기나 사건, 또는 이를 통해 도달해야 하는 예술 그 자체를 암시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트윈 플레임’은 개인과 개인,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닮음이나 불가항력적인 연결에 의해 상호 공명하는 상태를 시각화 하고자 한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전시된 작품들에는 산, 바다, 비, 파도, 바람, 나무, 돌 등 자연으로 인지되는 요소들과, 점, 원, 직선, 곡선 등으로 인지되는 기하학적 도형이나 기호들이 혼재한다. 사용된 재료들도 캔버스 천 위에 그린 그림도 있지만, 합판을 지지대 삼아 그린 그림이 좀 더 많다. 합판 위에서 다양한 형상이 서로 대응, 비례, 순열적인 질서를 구축하며 다채롭게 구성된 작품들은 무균실처럼 새하얀 전시장 공간의 사방 벽과 마름모꼴 바닥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한 두 작품이 도드라져 보이기 보다는 모든 작품이 동등한 존재감을 갖도록 디스플레이 되었다. 이때 회화와 오브제의 주요한 지지대 역할을 하는 합판의 물성이 두드러졌는데, 이 합판과 그 위에 채색된 유화 물감, 붓질, 선묘 등의 차이는 시각적인 것 이상으로 작품들을 서로 연결했다. 멀리서 보면 조용한 질서가, 가까이서 보면 예상치 못한 차이와 반복이 섬세한 리듬을 형성한다.

전시장 입구 가까이에 설치된 〈방법론적 접근〉(2025)은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작가가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방법 자체를 시각화 하여 제시한다. 화면 중앙의 산은 상대적으로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현실의 산과 닮았으며, 하단의 드로잉과 상단의 붉은 삼각형도 중앙의 산과 포괄적인 닮음을 제시한다. 여기에 피보나치 수열에 의한 분할과 나선, 기타 기하학적 요소들이 중첩되어 이 시각적 표상들이 수학적 사고의 틀 아래 조직된 닮음으로, 즉 구조적 유사성으로 전환된다. 작품 제목에 쓰인 ‘방법론’이라는 말은 작품에 대한 인식의 틀, 즉 회화의 구성에 대한 해석과 이해의 방식을 일컫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화면 우측의 작은 캔버스는 큰 캔버스와 닮았으면서도 동시에 차이가 있는데, 두 캔버스의 병렬 배열을 통해서 이미지가 어떻게 순환 가능하며, 또 어떻게 도식화되는지를 사고하게끔 만든다. 여기서 작가는 각각의 캔버스 또는 두 캔버스의 상황을 통해서 어떻게 닮았다고 보이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닮음이 시각적 본질이 아니라 인식의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두 그림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닮음은 언어로 서술 가능한 것 이상인데, 형상과 기호, 규칙과 비례, 반복에 있어서 차이를 둠으로써, 닮음으로 허용되는 범위 자체부터 사유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조은시, 〈평행 세계 Parallel Worlds〉, 2025, oil on panel, 20 x 26 cm © 조은시

〈평행 세계〉(2025), 〈크고 작은 것〉(2025), 〈10분의 9〉(2025), 〈세 형제〉(2025)는 각각 다른 층위들에 수학적 또는 분석적인 틀을 작동시켜 닮음을 구성하고 있으며, 관람자는 화면의 요소들을 통해 각각의 도형과 선, 위치의 관계를 추론하고 구조적 규칙을 상상하게 된다. 일례로 〈크고 작은 것〉은 바다라는 큰 물과 양동이의 작은 물을 대비시키면서도, 삼각형, 트라이포드 등으로 숫자의 반복도 암시한다. 또 두 개의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몇 개의 곡선은 화면 위에 시각적인 역동성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무언가(바람, 파도, 물방울 등)의 운동성의 궤도를 가시화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 역시 중앙의 바다 물결, 상하단에 그려진 양동이와 트라이포드, 이들과 상관 관계를 파악할 수 없는 뾰족한 삼각형들과 긴 곡선 궤도들에 의해 해석의 방향이 분산되고 있다. 이렇게 대상의 사실적인 묘사와 도식화된 그래픽이 혼재하는 상황은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하는 다양한 앱이나 디지털 기기들의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우리는 친숙해져 있다. 특히 디지털 게임 인터페이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상황이다. 게임의 UI 디자인은 게임 유저들의 몰입감을 높여주면서도 게임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구성한다.

이때 게임의 세계관을 설명할 수 있는 배경에는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지고, 유저들의 게임 수행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이템이나 퀘스트에 대한 구조를 도식화하여 보여주곤 한다. 상이한 형식의 이미지들이 하나의 화면 위에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질적이지 않게 된다. 이는 가장 오래된 매체인 회화라고 해서 예외일 필요는 없다. 그래서 조은시의 〈크고 작은 것〉은 이미지를 제시하고 해석하는 구조 자체를 하나의 화면으로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은시, 〈땅속 연대기 Chronicles of the Earth〉, 2025, oil on panel, volcanic stone, 45 x 30 x 30 cm © 조은시

한편, 〈땅속 연대기〉(2025)나 〈관성적 태도〉(2025)는 평면보다 공간 설치에 가까운 작업들이다. 두 작품에서 제목은 작품을 인식하는 언어적 지침으로 작동한다. 먼저 〈땅속 연대기〉라는 제목은 시간(연대기)과 장소(땅속)의 축적을 암시하는데, 땅속이라는 일반적으로는 비가시적인 공간과 연대기라는 시간적 질서를 결합해, 지층처럼 쌓인 사건들의 흔적을 시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관성적 태도〉는 관성이라는 물리학 개념을 연상시키면서도 태도라는 말을 통해서 윤리나 도덕, 또는 심리, 철학적인 층위로 의미를 확장시킨다. 또 형태적으로 그네는 진자 운동을 암시하여 관성의 시각적 장치 역할을 한다.

그네 안장에는 작은 그림이 놓여 있는데, 앞뒤로 각각 해와 달로 유추 가능한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이들은 조석 현상을 일으키는 힘의 원천을 암시하면서 동시에 세계의 질서가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의 체계로 인해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보이지 않는 질서나 체계에 대한 암시는 오늘날 우리의 일상적 삶을 패턴을 구성하고 행동 방식을 디자인하는 디지털 인터페이스에서도 보편적이다. 검색, 소비, 기록, 저장,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퀘스트를 수행하는 동안 우리는 반복적인 감응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질서나 체계의 난이도를 파악한다.

조은시의 회화는 외양의 닮음만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질서와 구조 속에 있는지 암시한다는 점에서 동시대적이다. 그의 회화에서 닮음은 단지 형태의 유사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관계를 감각하고 사고하게 만드는 구조로 작용한다. 회화의 표면 위에서 사유의 계기를 작동시키는 그의 작업은, 재현을 넘어 구조의 인식을 유도하고, 관계와 질서의 암시로 확장된다. 결국 조은시에게 닮음은 단순한 시각적 유사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과 사유의 구조를 드러내는 방법론이며, 의미를 생성하는 회화적 동력이다. 그는 유사성 개념을 통해서 지식과 감각, 세계와 이미지 사이의 새로운 연결 가능성을 탐색하며, 이를 회화라는 오래된 매체의 범주에서 성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