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시는
닮음에 대한 사유를 회화의 기호 체계로 시각화 한다. 그의 회화는 단순한 풍경이나 대상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기호와 상징, 기하학적인 형태, 언어 유희를 통해 지적인 플레이를 시도한다. 닮음은 단지 외형적인
유사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적 질서나 관계의 구조로 작동하며. 논리를 넘어선 새로운 질서를
암시하기도 한다. 그의 회화는 어떤 의미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간접적이고 파편적인 징후들을 통해서
암시함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단서를 수집하고, 규칙을 유추하며, 인과 관계를 스스로 구성하도록 유도한다. 이 글은 개인전 《트윈
플레임(Twin Flame)》에서 조은시가 시도한 닮음의 구조가 보이지 않는 힘이나 체계의 질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논하고자 한다.
전시
제목인 ’트윈 플레임(Twin Flame)’은 ‘쌍둥이 불꽃’ 정도로 해석이 된다.
의미를 좀 더 파악하자면, 한 영혼이 둘로 나뉘어 서로 다른 두 사람 안에 존재한다는 믿음에
기반하여 거울처럼 비추는 강렬한 관계로 볼 수 있다. 조은시는 회화 또는 회화에 기반한 설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펼쳐왔으며, 이번 개인전 제목 역시 창작의 숙명을 짊어진 작가로서, 자신의 지적 사고의 출발이 되는 계기나 사건, 또는 이를 통해 도달해야
하는 예술 그 자체를 암시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트윈
플레임’은 개인과 개인, 부분과 전체의 관계가 닮음이나 불가항력적인
연결에 의해 상호 공명하는 상태를 시각화 하고자 한 작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전시된
작품들에는 산, 바다, 비,
파도, 바람, 나무, 돌 등 자연으로 인지되는 요소들과, 점, 원, 직선, 곡선 등으로
인지되는 기하학적 도형이나 기호들이 혼재한다. 사용된 재료들도 캔버스 천 위에 그린 그림도 있지만, 합판을 지지대 삼아 그린 그림이 좀 더 많다. 합판 위에서 다양한
형상이 서로 대응, 비례, 순열적인 질서를 구축하며 다채롭게
구성된 작품들은 무균실처럼 새하얀 전시장 공간의 사방 벽과 마름모꼴 바닥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고, 한
두 작품이 도드라져 보이기 보다는 모든 작품이 동등한 존재감을 갖도록 디스플레이 되었다. 이때 회화와
오브제의 주요한 지지대 역할을 하는 합판의 물성이 두드러졌는데, 이 합판과 그 위에 채색된 유화 물감, 붓질, 선묘 등의 차이는 시각적인 것 이상으로 작품들을 서로 연결했다. 멀리서 보면 조용한 질서가, 가까이서 보면 예상치 못한 차이와 반복이
섬세한 리듬을 형성한다.
전시장 입구 가까이에 설치된 〈방법론적 접근〉(2025)은
단순한 풍경의 재현이 아니라 작가가 세계를 인식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방법 자체를 시각화 하여 제시한다. 화면
중앙의 산은 상대적으로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현실의 산과 닮았으며, 하단의 드로잉과 상단의 붉은 삼각형도
중앙의 산과 포괄적인 닮음을 제시한다. 여기에 피보나치 수열에 의한 분할과 나선, 기타 기하학적 요소들이 중첩되어 이 시각적 표상들이 수학적 사고의 틀 아래 조직된 닮음으로, 즉 구조적 유사성으로 전환된다. 작품 제목에 쓰인 ‘방법론’이라는 말은 작품에 대한 인식의 틀, 즉 회화의 구성에 대한 해석과 이해의 방식을 일컫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화면
우측의 작은 캔버스는 큰 캔버스와 닮았으면서도 동시에 차이가 있는데, 두 캔버스의 병렬 배열을 통해서
이미지가 어떻게 순환 가능하며, 또 어떻게 도식화되는지를 사고하게끔 만든다. 여기서 작가는 각각의 캔버스 또는 두 캔버스의 상황을 통해서 어떻게 닮았다고 보이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닮음이 시각적 본질이 아니라 인식의 방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두 그림에서 우리가 인식하는 닮음은 언어로 서술 가능한 것 이상인데, 형상과 기호, 규칙과 비례, 반복에 있어서 차이를 둠으로써, 닮음으로 허용되는 범위 자체부터 사유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