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 팬데믹의 시대를 2년째 관통하고 있는 지금, 세상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집합금지, 모든
사람들의 마스크 착용 등 과거와는 다른 가시적인 변화가 우리 일상의 풍경을 변화시켰다. 그러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산업화 시대 이후 도시 풍경의 변화, 과거
시스템의 해체, 경제적 불평등, 획일화된 문화 등, 다양한 사회적 변화가 우리 주위에서 일상 다반사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회 상황에 주목한 작가가 있다. 김정인은
급변하는 사회의 속도, 획일화되는 사회 분위기, 심해지는
경제적 불평등 등등, 이렇게 세상을 변화시키는 어떤 동인(動因), 혹은 ‘비가시적인 외부 압력’(작가의 작업 노트에 따르면), 좀더 극단적으로 이러한 사회를 조종하는 숨겨진 ‘권력’(작가와의
인터뷰에 따르면)에 주목한다.
2020년 열린 첫 개인전 《견고하지 않은 땅을 딛고 서기》는 이러한 사회 상황에
대해 작가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대응하는지, 그 태도를
처음으로 볼 수 있는 전시였다. 도시의 풍경이 바뀌는 개발 현장이 작가에게는 비인간적인 사회의 민낯으로
다가왔고, 급변하는 풍경이 주는 속도는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앞에서 언급한 변화의 ‘압력’은 작가에게 자신과 사회를 휩쓰는 일종의 급류였다. 첫 전시는 이러한 급류의 한가운데에서 우리 스스로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아니
어떻게 버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다. 현재 디디고 있는 땅 자체가 급류가 된 듯, 작가가 포착한 화면에는 큰 물이 흐르듯, 탁색으로 조합된 붓질이
강하게 드러나 있었다.
왜 작가는 현재의 사회 현실이 혼란스럽고, 이러한
혼란의 배후에 비가시적인 압력, 혹은 권력이 숨어서 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을까. 여기에는 작가가 살아온 삶과 연관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생활해
온 장소가 서울의 장충동과 신당동 일대였다. 서울의 급변하는 여러 지역과는 다른 시간 흐름이 있는 곳이
바로 이 동네다.
주변 동대문의 고층빌딩과 아파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급변하는 도시의 풍경을 보여줄 때, 이곳에는 조선시대 도성 주변과 함께 오래된 단독주택과
자전거포와 철물점이 여전히 느릿느릿 숨쉬고 있었다. 이곳과는 다른, 급변하는
도시와 사회 시스템에 숨이 탁 막혔다. 내가 ‘사회 시스템을 좇는데 느린 이유가 이러한 환경적 차이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작가와의 인터뷰 중에서)
대전과 서울 중 개발과 변화의 혼란스러운 풍경이 혼재하는 장소들은 작가에게 폭력적인
불안함으로 다가왔고 이러한 현실은 불안정하고 유동적인 액체의 감각으로 전이되었다. 이러한 ‘액체성’이
작가의 화폭 속에 스며들게 되었다.
“그리는 행위는 변화의 물결로 습하게 젖은 땅을 버텨내기 위한 방책이다. 부정적 내면은 붓이라는 매개를 통해 캔버스 위로 산재된다.”(작가의 작업 노트 중에서) 작가는 자신이 보고 경험한 일상과 풍경을
무채색적인(색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색감과 궤적이 드러나는
붓질로 이른바 ‘드라이하지만 강렬한’ 화면을 만들어 낸다. 반 고흐의 표현주의적 회화처럼, 김정인의 붓질에는 자신의 불안과 분노가 담긴 절박한 에너지가 강하게 발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