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gin Kim, Place where rapids pass by, 2020, oil on canvas, 162.2 x 130.3cm © Jungin Kim

인간의 감각은 복잡하고 다단하다. 그것을 수용하는 기관에 따라 일컬어지는 감각은 크게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오감으로 나뉘어 있는데, 인간은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반드시 요하는 원초적 조건 중 하나인 신체로 이와 같은 감각들을 행위한다.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이 감각의 행위를 통해 받아들여지는 것들로부터 인간은 어떠한 영향을 다시 자신에게로 미쳐내는가 하는 부분이다. 지속해서 받아들여지는 외부에서의 물리적 자극이 그 신체적 차원으로부터 의식적 차원에까지 도달해 나아간다는 전제가 감각 행위의 근원이 될 때, 감각은 그저 신체적으로 물리적으로 일회적으로 인간이 인간으로서 행해야만 하는 어떤 처리 과정 이상의 의미를 내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신체가 매개하는 환경은 뇌가 관장하는 신경 체계로 재지각되고, 이는 또한 일정한 방향으로 재해석될 것이다. 신체가 행하는 신경 과학적(Neuroscientific) 처리 과정은 자아라고 하는 인간 의식 체계를 개인적 혹은 집단적으로 형성하거나 갱신하며, 변화시키거나 때로는 붕괴해버리게도 한다. 그리고 그 절차는 일정한 방향을 두고 재생되기(PLAY), 되감아지기(REWind), 빨리 감아지기(Fast Forward)의 형태로 수행됨으로써 인간을 구성하는 총체적 인터페이스로서의 신체 장치(body-apparatus)와 그 내적 회로를 작동케 한다. 그 가운데 각기 다른 감각들은 서로 다른 자극에 의해 도맡게 되는 이질한 층위에서 그 감각적 특징을 따라 각자 주도적으로 일으켜진다.
 
시각 예술의 범주로 이 가동의 범위를 한정하면, 단연 감각의 통솔과 그 이끎의 중심에는 마땅히 시각이 자리할 것이다. 1972년 『어떻게 볼 것인가(Ways of Seeing)』(1972)를 출간한 존 버거(John Peter Berger, 1926-2017)에 따르면, 본다는 것은 사물이 드러내는 의미를 포착하는 행위이자 사물의 깊이를 경험하는 행위이며 이는 곧 시각이라는 감각이 촉발하는 의식과의 어떤 상호작용이 실재함을 뜻한다. 말인즉슨, 본다는 행위가 그 자체로 작동하면서도 그것은 또한 시각 외 다른 감각들과 연동할 수도 있다는 거다. 이로써 시각은 그 안팎의 차원에서 실시간적인 다중 경험의 형태로 확장될 수 있고, 나아가 시각이라는 감각 행위는 인간 개체를 이루는 의식이라는 축의 형성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는 명제를 성립 가능케 한다.

이때 어떤 감각은 상대적으로 강화하며 무언가를 쌓아 올리기도 할 것이고, 다른 어떤 감각은 약화하며 무언가를 스러져 내리게도 할 것이다. 그처럼 시각은 자기 감각 체계로부터 스스로를 관장하는 의식 체계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구축할 수도 또는 붕괴시킬 수도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음을 꾸준하게 자기 증명해왔다. 때문에 시각의 응시 행위로부터 감각을 당하는 피동적 대상, 이를테면 ‘도상(Image)’은 이상의 명제를 증명하는 근거로서도 기능한다 볼 수 있다. 그로부터 시각 예술의 범주 안에서 도상은 그 자체로 무엇을 지칭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직시적으로 관찰되지 않는, 그것의 이면에 서린 어떤 의도나 어감만으로도 충분한 제 존재감을 과시하기에 이른다. 결국 그처럼 이미지의 존재는 시각을 사용하는 주체의 의식 형성에 기여함과 동시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 주체의 의식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정인의 작업은 이미지 차원에서의 의미 확장의 일련과 연대기적으로 공명한다. 그의 작업기에서 비교적 초창기라고 할 수 있는 2017년부터 2018년 사이에 작가는 이른바 ‘저항’의 개념을 중심에 두고 인물에게 그들과 관계하는 (초)현실을 구체적 상황으로 재연함으로써, 일정한 방식으로 이미지에 맥락을 투영한다. 때문에 그의 화면이 발산하는 에너지의 유형은 응축적으로 다가온다. 펼쳐진 상황 덕분에 인물들은 맞서 갇히고 무너져 내린다. 하나의 화면 안에서도 어떤 인물들은 구체적으로 묘사되었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이라면, 특정한 상황에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들은 보통 그 원근을 위한 배치나 묘사의 세밀함을 성취하는 정도에 따라 주연과 조연의 역할을 가르게 되지만 당시 작가의 작업에서는 그것이 역의 방향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작업에서 그의 주요 인물들은 대부분 뭉그러트려진 형상으로 등장하며,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풍경 작품의 경우에도 그들을 바라보는 주체의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투영하는 데에 표현이 집중된다. 이 시기의 색채와 표현이 그와 같다면, 김정인이 제시하는 이미지의 심상은 바깥으로부터 가해지는 불가피한 힘에의 저항을 과감하게 표출한다. 인물과 인물이 처한 상황 사이의 관계에서 형성된 응축의 에너지와의 관계 속에서 역설적 내파를 촉발하는 김정인의 도상은 자아의 상태가 불안이라는 감정과 함께 있음을, 더불어 그 불안의 감정에서 피어오르는 저항의 심리를 직접적인 선형의 태로 의식화한다. 이로부터 작가는 이미지로 하여금 그것이 주체로서의 위상을 도맡게도 하지만, 그로 인해 도리어 실제 창작 주체와의 의식적 동기화를 실현하는 감상의 알고리즘에 부가적인 여과 단계를 더하는 피치 못한 결과를 맞기도 한다.
 
2019년부터 2020년 사이에 김정인의 작업은 자체적인 변혁의 양상을 보인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이미지가 파편화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전까지는 하나의 화면 안에 산파한 이질한 서사들이 완전한 구분보다 여전히 단일한 구성을 이뤄내고자 했었다면, 이때부터 상황에 부닥친 인물로부터 인물이 처한 상황 그 자체가 한층 도드라진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지에게 부여하는 주체의 위상을 통해 창작의 주체, 즉 자신의 자아를 대리토록 하는 식의 간접 화법적 표현과 작별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이렇게 김정인의 도상은 무엇을 말하거나 지칭해야 하는 책무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그렇기에 명료했던 이미지의 전언은 상대적으로 흐려질 수 밖엔 없었겠지만, 그 대신 작가 의식으로의 접속을 위한 적절한 신체성을 그의 이미지는 표상함으로써 역설적으로 한층 더 자연스럽고도 설득력 있는 공감의 영역을 열어내는 효과를 발산한다.
 
2020년 이후로 김정인은 파편화한 이미지들을 접합하여 엮는, 이른바 ‘연대 서사’의 가능성을 역설한다. 이곳저곳에서 뜯겨 나와 부유하던 이미지들도 한 화면 안에서 또 다른 형태로의 이미지 규합을 위한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은 모양새다. 원래는 전체였을 부분들은 스스로 분열하는 순간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 자신을 재편입한다. 다시 말해, 자의와 타의, 이것은 그중 어떠한 방식으로든 ‘떨어져 나온’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듯 의도적으로든 필연적으로든, 조각난 이미지들을 지지체 삼아 작가는 최초 품었던 저항과 같은 소극적 방어 기제를, 이들 분열된 이미지들의 규합을 통해 특정한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 데 뜻을 모아 함께 행동한다는 이 연대라는 적극적 방어기제로 승화한다.

2020년의 작업들이 이미지 조각 혹은 조각난 이미지들을 소환하는 단계였다면, 2021년의 작업에서는 그것을 회화라는 매체에 수반되는 표현의 측면에서 시각적으로 이들을 이어 붙이려는 시도가 발견된다. 서로를 안정감 있게 의지함으로써 연대의 서사를 그리는 이미지들은 물론 작가가 마련하는 어떤 유도의 지침을 우선하여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창작의 주체인 작가 역시도 조각나 있음을 보여주는 파편화된 이미지 수집의 작업을 넘어 어떻게든 그것들을 잇고 붙여내며 새로운 총체를 세우는 것에 이들을 일조할 수 있게 하려는 노력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앞선 실천과는 분명 구별된다고 하겠다. 결코 멈추지 않고 계속될 창조와 소멸 그리고 소멸과 창조의 순환처럼, 김정인의 이미지는 붕괴와 구축 그리고 구축과 붕괴를 그의 이미지 안에서 끊임없이 아우르려 한다.
 
이 반복적 압제와 구조의 순환을 어떻게 선의 구조로 조직할 것인가? 아마도 한번 일으켜진 붕괴와 구축의 수레바퀴는 작가 작업의 범주 내에서 계속해서 회전하려 할 것이고, 더불어 그 바깥을 향해 제 기조의 방향을 끝없이 제기하고자 할 것이다. 이처럼 김정인은 일종의 붕괴한 이미지-신체를 전면화하는 것으로 이면 의식의 존재 자체를 호소하며, 그 과정에서 이미지-행위를 통해 특정 주제 의식과 관람 주체의 동기화를 실현하기 위한 시각적 장치로서 도상의 개념을 확장해낸다. 이제 그에게 남겨진 과제가 있다면 조각난 이미지의 연대를 통해 이들을 다시금 통합해냄으로써 일으켜지는 또 하나의 총체, 그것이 다시 배제하게 될 파편의 이미지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일 테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