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췌)
자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간다: 하드웨어의 전기신호와
그 명령어가 언어 체계로 일약 도약하며 소프트웨어로 가장됨에 따라, 게임은 수량화된 사이버네틱스로 포획됐다. 물론, 수량화라고 해도 게임은 컴퓨터로 가동되고 비디오로 매개되기
이전의 놀이였을 때부터도 어느 정도는 산수와 규칙으로 이뤄졌겠지만. 때로는 서로 룰을 숙지하고 있다는
믿음에 따라 머리를 굴려 가능한 전술의 가짓수를 세어보고, 때로는 진행자가 규칙서의 세부를 뒤적거리고
주사위 굴림의 셈을 끄적거리며 서로를 중재하는 식으로. 이때, 기계장치는
인간 두뇌로 감당 못 할 만큼 엄격한 규칙과 복잡해진 산수를 대리하는 계산기의 역할을 도맡았다.
그리고
지난 한 세기 동안, 컴퓨터의 증가하는 처리능력에 비례해 이 규칙과 산수의 규모와 밀도는 급격하게 불어났으며
그만큼 기계장치와 인간 사이의 언어를 매개하는 번역 체계들이 그 사이로 두껍게 끼워 넣어졌다. 바로
여기서, 현실과 허구 사이의 어긋남이 발생했을 것이다. 웬디
희경 전은 「소프트웨어, 혹은 시각적 지식의 지속에 대하여」에서 소프트웨어의 발명으로 하드웨어 쪽에
일어나는 두 가지의 은폐 대상을 밝혔다. 하나는 기계들의 언어로, 논리회로를
흘러 다니는 전기신호 자체가 추상화와 기호화를 거쳐 인간들이 알아먹을 수 있게 번역되는 과정에서 컴퓨터의 신경계가 아닌 기계 속의 유령에 가까워졌다. 다른 하나는 여성들의 노동으로, 기계와 인간을 중개하는 전술을 직조했던
놀라운 기예는 편리하고 안락한 자동 제어 체계로 대리되며 양편의 매개가 아닌 체계 속의 유령에 가까워졌다.
기계장치와
그 전문통역가가 은폐된 컴퓨터는 인터페이스로의 접속과 소프트웨어의 표면적인 활용 외엔 평범한 사용자가 심원한 작동법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미지의
사물이 되었다. 그러니 정보기술의 이 두려울 정도로 불필요한 가속을 누구든 제정신으로 따라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컴퓨터의 역량이 어느새 게임을 추월한 만큼 게임의 역량은 어느 순간 그 사용자를
추월했으며, 심지어는 게임과 사용자 모두가 컴퓨터에 잡아먹혀 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컴퓨터 게임 속 허구는 그 사양이 부푸는 속도에 따라 안팎으로 과다하게 팽창하다 못해, 온 지구가 축척 따위 필요 없이 일대일로 복사되고 실제 우주만큼 텅 빈 진공으로 채워진 세계가 대량 생산되는
지경에 닿았다. 사용자에게 행위성이나 전능감이 너무 과다하거나 너무 공허하게 주어지는 이들 세계는 시력보다
높은 해상도의 화면으로 중계되고 지구상의 금융 위기보다도 극심하게 급등하는 경제로 작동했다. 게임의
사용자인 우리가 결국 고도로 발달한 이 기계장치의 처리능력에 합당한 상상력을, 이 능력 있는 기계의
처리장치와 대등하게 겨룰 만한 산수와 규칙을 짜낼 힘을 갖추지 못한 것일까.
어찌 되었든, 게임을 작동시키는 기계장치에 내장된 물질적인 역량과 게임 자체의 산수 및 규칙에 잠재된 비물질적인 역량 간에
어긋남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산수와 규칙이
그리 복잡하지 않아 연산을 기계장치에 대리할 필요가 없는 게임으로는 과연 무엇이 가용해질까? 이제 슬슬
전시로 다시 돌아가자면,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식으로 갈 것이다: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라는 소프트웨어가 구동되는 하드웨어 전반은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라는 전시를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다. 전시장 내부에 설치된 지도가 인터페이스 역할을 한다면, 이 소프트웨어가
실제로 알맞게 작동해 허구를 생산하도록 하는 장치란 다름 아니라 작가들이다. 이는 물론 전시 안에서 GM의 역할을 맡은 작가들이 규칙서를 참조하고, PL의 역할을 맡은
관객과 대화를 나누며 말 그대로 게임 자체를 진행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기계적인 실행이기도
하겠지만 상호작용적인 퍼포먼스이기도 한 이 작업에는 규칙서의 낭독만이 있는 게 아니니까. GM(작가)은 이 게임을 훨씬 실감이 나게 구동하기 위해 지도라는 인터페이스에 스티커로 된 기호를 입출력할 뿐만 아니라, 주사위 판정을 계산하고 지도에 강조를 위해 조명을 비추고 각 상황에 맞춰
BGM을 선곡하고 때로는 NPC를 실감이 나게 연기하는 등 수많은 작업을 실행한다. 현대적인 컴퓨터에서라면 은폐되었을 산수 및 규칙의 연산 과정이 이렇게 《조우를 위한 대화형 지도》에서 분명하게
노출되는 셈이다.
하나의 무대로 기능하는 전시장이라는 샌드박스, 무대
안팎으로 노출된 무대장치로 기능하는 GM(작가)이라는 하드웨어와
무대의 중계기로 기능하는 지도라는 인터페이스로 현실과 허구를 부단히 동기화하는 작동이 효과적으로 가시화된다. 다시
말해, 기꺼이 접속할 만한 허구를 생산하는 언어와 이를 운영하는 노동이 편리하게 자동화된 소프트웨어로
가려지지 않고 도리어 현실에 끄집어내진 셈이다. 그 덕에 관객은 PL의
층위에서 〈노스탤지어의 벌레들〉이라는 게임이 돌아가는 과정을, 대화와 행동을 통해 허구가 현실에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과정을 실제로 관람하고 물론 이에 참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참여를 따라가면, PL이었던 관객은 어느새 PC로서도 P市라는 허구에 수월하게 접속해 있다. 연산을 대리할 컴퓨터도 행위성을
대리할 아바타도 없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