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석(b. 1990)은 스피커와 마이크 등 직접 수집하고 제작한 음향 장치를 사용해 조각과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 작업을 해오고 있다. 특히, 그는 제너레이티브 아트(Generative Art)와 모노하(Mono-ha)에 관심을 가지고, 입력과 출력, 수신과 발신 등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서 평소 지각하기 어려운 피드백 고리를 빛과 소리, 진동과 공명으로 공간에 구현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한재석, 〈Live Feedback III〉, 2020, 스마트폰, 스탠딩 거치대, 전자부품, 가변크기 ©아르코미술관

예를 들어, 2020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렸던 단체전 《Follow, Flow, Feed 내가 사는 피드》에서 선보인 한재석의 뉴미디어 작품 〈Live Feedback III〉(2020)은 스마트폰의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의 피드백 구조를 활용한다.
 
한재석은 매크로 프로그램과 인스타그램 라이브 기능을 활용하여 스마트폰에 노출된 인스타그램의 정보가 그것을 찍은 또 하나의 스마트폰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송출되고, 또 다시 인스타그램 창에 게시되어 재송출되는 피드백의 무한반복의 과정을 시각화했다.


한재석, 〈Live Feedback〉, 2021, 스마트폰, 프로젝터, PC, 가변크기 ©OCI 미술관

그리고 이때 작가는 라이브 과정에서 수신과 발신 사이에 야기되는 시간차를 이용하여, 시차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울림과 영상의 반복을 통해 수신자와 발신자가 특정되지 않은 채 무한히 유통되는 SNS 시스템 안의 세계를 감각의 표면 위로 드러냈다.
 
한편, 이듬해 OCI 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피드백커 : 모호한 경계자》에서 한재석은 두 대의 AI 스피커들 간의 상호 피드백을 바탕으로 하는 작품 〈모호한 경계자〉(2021)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작가의 메모장에 근간하여 AI 스피커가 음성으로 알려주는 일정이 다른 한 대의 AI 스피커에 수신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이 또 다시 다른 AI에게 송출됨으로써 흡사 두 대의 기계가 양방향의 대화를 나누는 듯한 연출을 자아낸다.


한재석, 〈모호한 경계자〉, 2021, AI 스피커, 삼각대, 가변크기 ©OCI 미술관

나아가 이때 작가는 기계적 시스템이 예측하지 못하는 오류에 대한 피드백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국면에 주목했다. 최초의 발화 내용이 다른 AI 스피커로 반복 수신되는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오류가 발생한다. 사전 입력된 동일한 내용이 무한 루핑하는 듯 하지만, 자세히 그 대화를 들어보면 미묘한 오차로 인해 계속 변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재석, 〈가리성〉, 2021, 중고 스피커, 금속 막대, 전자 부품, 가변크기 ©OCI 미술관

 전시에서 선보인 또 다른 작품 〈가리성〉(2021)은 수십 개의 중고 스피커들 사이의 전기 작용을 통해 변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빛과 소음의 반복을 만들어낸다. 스피커들에 달린 금속봉의 전극들이 진동에 의해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하며, 스피커가 명멸하는 장관이 펼쳐진다.
 
전극끼리 이어지는 순간 발생하는 빛과 소음은 전시공간을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장소로 변화시킨다. 이러한 사건들은 예측불허의 비선형적 변이와 무작위성으로 발생하며, 어디에서 섬광이 켜질지, 어디에서 소리가 날지 모르는 어두운 전시장 안에서 관람객들은 잠재적인 에너지의 상태 속에 놓이게 된다.

《Radio Shower: 3-3000MHz》 전시 전경(윈드밀, 2022) ©한재석

2022년 윈드밀에서 열린 사운드 퍼포먼스 겸 전시 《Radio Shower: 3-3000MHz》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의 그림자로서 도시를 구성하고 있는 전자기파의 소리와 이미지를 탐험한다. 한재석은 이를 통해 3MHz에서 3,000MHz 영역대의 주파수를 들여다보고,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한 파동을 감상하고 더 나아가 이 전파들과 공명해 보고자 했다.
 
물리적으로 들을 수는 없지만 30,000~300,000번 진동하는 전파들을 빛의 이미지를 통해 가시화하고 공간에 채움으로써, 작가는 이를 매개로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지만 점차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도록 했다.


한재석, 〈센트럴 도그마〉, 2023,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 전시 전경(백남준아트센터, 2023) ©한재석

2023년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린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에서 선보인 〈센트럴 도그마〉는 스피커, 금속 막대, 전선, 전구 등 다양한 전자기기와 사물을 사용한 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기둥 상단에 설치된 스피커 판막이 열리고 닫히는 진동에 따라 연결된 구리 막대가 움직이고, 이들이 흔들리며 서로 부딪치는 순간 전원이 연결되거나 해제되면서 빛을 내기도 하고 꺼뜨리기도 한다.

한재석, 〈센트럴 도그마〉, 2023, 라이브 퍼포먼스,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 전시 전경(백남준아트센터, 2023) ©백남준아트센터

나아가 입력과 출력, 수신과 발생 등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서 피드백의 원리를 소리 설치로 구현하는 이 작품은, 전시 공간에서 빛과 소리 요소를 극대화하는 라이브 퍼포먼스로 확장되기도 하였다. 용접에서 발생하는 빛과 노이즈로 작업하는 키네틱 아티스트 김준수와 무당의 굿에서 테크노 음악을 연주하는 사운드 아티스트 준도와 협업한 라이브 퍼포먼스는 전자기파의 다양한 생태계를 보여주고 들려준다.
 
한재석은 이 두 작가와 협업하여 우리의 눈과 귀로 다 보고 들을 수 없는 빛과 소리의 스펙트럼을 공감각적인 차원에서 펼쳐 보이며, 평소 지각하기 어려운 피드백의 고리를 공간에 구현하고자 했다.


《Logistic Feedback》 전시 및 퍼포먼스 전경(플랫폼엘, 2023) ©플랫폼엘

같은 해 플랫폼엘에서 열린 개인전 《Logistic Feedback》에서 작가는 스피커 장치에서 피드백의 시스템을 탐구하고, 자연에서의 복잡한 행동을 모사하는 실험을 선보였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피드백 사운드(howling noise) 및 시스템을 멀티-채널 시스템에 적용한다.
 
하울링이라고도 명명되는 오디오 피드백은 말 그대로 입력인 마이크와 출력인 스피커가 서로 연결된 상태로, 서로 마주본 상태에서 증폭 값을 올리면 자연스럽게 기기에 해당되는 공명 주파수가 발생된다. 이때 1채널(한 개의 스피커와 마이크)일 경우 매체의 특성에 공명되는 단순한 사인파(sine wave)가 발생하지만, 다채널로 늘어나면 보다 복잡하게 주파수가 변형된다.


《Logistic Feedback》 전시 및 퍼포먼스 전경(플랫폼엘, 2023) ©플랫폼엘

한재석은 멀티-채널 피드백 시스템으로 공간을 구성하고, 각각의 채널을 각기 다른 형태와 다른 조합의 스피커와 마이크로 구성하였다. 또한, 피드백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로지스틱 맵(logistic map) 방정식과 쌍갈림(bifurcation)에 의해 생성된 무작위적인 데이터 위치 값을 이용하여, 멀티-채널 피드백 시스템의 카오스적인 특성을 소리로써 드러내고자 했다.
 
군집을 이루며 발생하는 카오스적인 소리들은 자연에서 관측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현상들과 시스템을 모사하고 있었다.


《팰린드롬》 전시 전경(인천아트플랫폼, 2023) ©인천아트플랫폼

비선형적인 자연계의 현상을 피드백 시스템을 통해 모사하고자 하는 작가의 시도는 개인전 《팰린드롬》(인천아트플랫폼, 2023)에서도 이어진다. 작가는 앞에서 읽으나 뒤에서 읽으나 동일한 말이 되는 단어, 숫자, 문자열 등의 회문을 뜻하는 ‘팰린드롬(Palindrome)’을 위아래, 입력과 출력, 재생과 역재생, 플러스와 마이너스, 흑과 백 등을 포괄하는 보다 입체적인 개념으로써 바라보았다.
 
그는 이러한 회문 구조를 탐구하며 생성과 증식, 소멸의 구조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연과 연결 지점을 발견했다. 피드백 시스템을 이용해 끊임없이 순환하며 진동하는 소리를 공간에 채움으로써, 작가는 관객으로 하여금 일출과 일몰처럼 처음과 끝이 모호해지는 자연계의 순환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한재석 x 고휘, 〈하울링 벌트 I〉, 2024, 사운드 퍼포먼스, 45분 ©한재석

한편 2024년 선보인 사운드 설치 작품 〈하울링 벌트〉는 전기 신호를 음파로 변환하는 변화기로서의 스피커를 이용하여 앰비소닉 사운드 시스템을 활성화 함으로써 보다 입체적인 청취 경험을 자아낸다. 앰비소닉 사운드란 위, 아래, 앞, 뒤 등 모든 방향에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좌우의 스테레오 스피커로만 전달되는 소리의 한계를 넘어서 풍부한 공간감을 느끼게 해주는 사운드 기술이다.
 
이와 함께 한재석은 둥근 천장을 의미하는 벌트(Vault) 형태로 공간을 감싼 지름 7m의 구조물과 그에 설치된 12개의 스피커로 사운드스케이프를 형성했다. 벌트 형태의 구조는 소리의 방향과 거리가 끊임없이 변화하도록 설계되어 실제 환경에서 듣는 것과 같은 유사한 음향 환경을 조성한다.


한재석 x 송지윤, 〈하울링 벌트 II〉, 2024, 사운드 퍼포먼스, 45분 ©한재석

아울러, 작가는 이러한 앰비소닉 사운드 시스템 안에서 오디오 피드백을 끊임없이 증폭시켜 노이즈를 보다 명확하게 지각할 수 있도록 했다. ‘벌트’ 안에서 들려오는 사운드는 3번의 협연 퍼포먼스를 통해 생성한 노이즈를 기반으로 한다.
 
퍼포먼스 중 각 퍼포머는 각자의 변환기를 통해 오디오 피드백을 활성화하여 서로의 행위와 사운드에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 간섭 시스템을 구현했다. 중앙에 놓인 마이크는 생성된 노이즈를 수집하고, 스피커는 오디오 피드백 과정을 증폭시켜 공간을 노이즈로 가득 채운다.


한재석 x 진상태, 〈하울링 벌트 III〉, 2024, 사운드 퍼포먼스, 45분 ©한재석

이와 더불어, 벌트 안의 관객들은 이 오디오 피드백 과정에 개입하면서 사운드를 더욱 복합적으로 심화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즉, 관객의 존재가 피드백 과정에 영향을 주어 노이즈가 끊임없이 변조되는 것이다. 이로써 ‘벌트’라는 공간에서 모든 존재는 피드백 네트워크 안에 얽히며 내부의 사운드스케이프를 활성화하고 변형시키는 객체가 된다.


한재석, 〈영소닉〉, 2024, LED, PVC 파이프, 케이블 타이, 멀티 채널 오디오 시스템, 컴퓨터 등, D 700cm, H 500cm ©Unfold X

2024 언폴드 X에 출품한 〈영소닉〉 또한 앰비소닉 기술을 이용하여 멀티 채널 사운드 시스템으로 구축된 입체적인 소리 공간을 연출한다. 작품 제목인 ‘영소닉’은 영소(nidification)와 소닉(sonic)의 합성어로, 번식을 위한 동물의 집짓기와 소리를 결합한 단어이다.
 
작품은 지름 7미터의 반구 안에서 ‘오디오 객체‘들이 상상의 공간을 구성하여 존재하고, 세대를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과정을 담고있다. ‘오디오 객체‘는 새들의 떼 이동을 모사한 플로킹 알고리즘과 유전 알고리즘을 활용해 컴퓨터가 16채널 사운드를 스스로 조절하며 소리가 목표를 향해 진화하도록 하는 작가의 연구에서 탄생했다.
 
이 작품을 통해 한재석은 알고리즘이 생성한 소리와 그 소멸 과정을 공간적인 사운드로 구현함으로써 인간 외 객체들의 존재에 주목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한재석, 〈영소닉〉, 2024, LED, PVC 파이프, 케이블 타이, 멀티 채널 오디오 시스템, 컴퓨터 등, D 700cm, H 500cm ©Unfold X

이처럼 음향 출력 장치와 소리의 성질을 끊임없이 탐구해온 한재석은, 입력과 출력의 이분법적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오디오 피드백 시스템을 통해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지만 일반적으로 감지하기 어려운 노이즈와 피드백의 자연스러운 발생과 성장을 그의 소리-공간 안에서 감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한재석의 소리-공간은 피드백의 증폭 속에서 발생하는 비선형적이고 변칙적인 순간들을 드러내며 자연의 시스템을 상기시키고, 비물질적인 소리의 파장 속에 얽혀 있는 모든 존재 간의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킨다.

 ”우리 주변에는 이미 노이즈들로 가득 차 있기에, 더 나아가 노이즈들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를 제거한 다기 보다 제어(filtering)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는 노이즈, 피드백의 자연스러운 발생과 성장을 금지하기 보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  (한재석, 작가 노트) 


한재석 작가 ©인천아트플랫폼

한재석은 서울대학교에서 조소과를 전공하고 미국 시카고예술대학교에서 사운드 아트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인전으로는 《팰린드롬》(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23), 《Logistic Feedback》(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서울, 2023), 《사운드 되먹임: The true balance》(문화비축기지, 서울, 2022), 《Radio Shower: 3-3000MHZ 음감회》(윈드밀, 서울, 2022), 《피드백커: 모호한 경계자》(OCI 미술관, 서울, 2021) 등이 있다.
 
또한 작가는 언폴드 엑스 2024  《2084: 스페이스 오디세이》(문화역서울284, 서울, 2024), 《랜덤 액세스 프로젝트 3.0》(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23), 《속삭이는 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선 안됩니다》(TINC, 서울, 2022), 《음악의 기술》(부평아트센터, 인천, 2021), 《Follow, Flow, Feed 내가 사는 피드》(아르코미술관, 서울, 2020)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한재석은 2021년 예술의 전당 《뉴미디어아트: 내일의 예술》전 최종 수상, 2020년 OCI YOUNG CREATIVES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