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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포스트 아포칼립스 지도 그리기 (《퓨처 판타스틱(Future Fantastic)》, 아트센터나비, (2022.11.11. ~ 11.15.))
2022.12.16
정서연 | 미술비평가

황선정, 〈탄하무: 탄하무트로니카〉, 2022, 혼합매체, 커스텀PCB
인터페이스; 틴하무트로니카, 식물, 버섯, 실시간 오디오-비주얼, 가변크기 © 황선정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인간 이후의 인간’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현 인류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지구 환경이 변화하고 인간 존재 또한 다양한 존재들과의 관계망 속에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멸망할 수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전망에서부터 종말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논의되는 담론들은 공통적으로 기존
세계에 대한 반성을 요구하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전환점을 제공한다.
인간
이후의 인간을 그리는 시도는 단지 미래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미래는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기에 지나친 낙관론이나 비관론을 펼치는 것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인간
이후의 인간’은 지금과는 다르며 인간과 인간 아닌 것이 융합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열린 아트센터 나비의 《퓨처 판타스틱(Future Fantastic)》 (2022.11.11. ~ 11.15.) 전시는 예술가들이 위기를 인식하는 방식을 다루면서 인류가 직면한 미래의
과제를 시간 순서로 탐구했다는 점에서 시기적절하다. 전시에 참여한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 여덟 팀은 지속적인
기후 위기와 팬데믹 상황 속에서 인류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혼돈에 빠질 잠재적 상황을 가정하여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직시하는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보여준다. 인류 종말 직전에서부터 인간과 비인간이 연결된 가상의 공간,
인류 종말 후 지구에 적응한 비인류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앞으로의 세계를 재정의한다.
전시는
김훈예와 얄루의 융복합 프로젝트인 ‘호모폴리넬라 더 랩’의 영상 작품으로 문을 연다. 호모폴리넬라는
광합성이 가능한 포스트휴먼 종으로, 시각예술과 과학, 그리고
문학의 접점에서 탄생했다. 포스트휴먼 주체는 인간-아닌 것들, 즉 낯설고 기이한 존재들과 조우하면서 차이를 수용하는데, 호모폴리넬라가
자체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설정은 인간 개념의 변화된 양상과 가능성을 암시한다.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이러한 가정을 통해 융합과 혼종성의 시대를 미리 엿볼 수 있다.
(…)
앞으로
도래할 포스트휴먼의 미래에서는 인간과 비인간이 서로 연결되면서 생물학적 인간의 기준이 와해되고 새로운 존재가 등장할 것으로 예견된다. 황선정은 실재하는 식물이 실시간으로 보내는 생체 신호와 디지털 환경에서 구축한 네트워크를 연결하여 인간과 비인간의
인터페이스를 실험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기술과 자연, 인간의
유기적인 관계 맺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탄하무 프로젝트’라고 이름 붙인 작업에서 식물-나무-균사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를 개발해 그 상호작용의 과정을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다. ‘탄하무’는 신체와 마음의 욕구를 의미하는 고대 산스크리트어 ‘Tanhā’와 한자 ‘舞’(춤추다 무)를 합성한 말로, 식물들의
공생관계를 통해 인류를 지구-행성적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탄하무: 탄하무트로니카〉(2022)에서도 포스트휴먼의 물질 대사와 유기적인 네트워크를 그려냄으로써 공생적 삶에 대한 영감을 전달한다.
(…)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인간의
삶이 회귀 불가능할 정도로 깊이 변화하는 것을 ‘특이점(Singularity)’이라는 용어로 설명한
바 있다. 그는 2045년경을 특이점에 다다르는 시점으로
예측했지만, 기후 위기와 코로나 팬데믹 상황으로 미루어 보면 이미 인류가 특이점에 다다른 것일 수 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세계를 탐색한 작가들의 예술적 실천은 현 시대가
욕망하고 상상하는 포스트휴먼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다. 이 방향은 인류라는 틀 안에
국한되어 있던 범주에서 벗어나 탈-인류라는 새로운 지향으로 나아간다.
참여 작가들은 인류가 새로운 종으로 변형되는 탈-인류를 형상화함으로써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인간 존재의 조건에 대한 긍정적 가능성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