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승, 〈Data Cabinet〉, 2020, 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 ABS 필라멘트 ©장진승

2010년대 후반 이후 장진승의 비디오 및 혼합매체 설치작품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탐구한다. 인간 관찰자(seer)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보기(seeing)를 함축한 이미지는 인간에게 무엇을 뜻하는가. 데이터가 비물질적 상태를 넘어 다양한 객체로 변환되고 나아가 인간의 정체성과 의식 및 상상력마저도 재구성할 때 우리의 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달리 말하면 그러한 재구성이 그리는 세계상[world picture]이란 어떤 모습인가). 이와 같은 질문은 컴퓨터 시각과 인공지능 기반의 시청각 인식 시스템을 최근 활발히 실험해 온 트레버 패글린(Trevor Paglen), 그리고 컴퓨터 그래픽으로 합성되고 움직이는 행위자들을 통해 디지털과 육체적인 것, 심리적인 것 간의 다양한 관계를 변주해 온 에드 앳킨스(Ed Atkins)를 환기시킨다.

물론 패글린과 앳킨스의 작품들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될 수 있는 많은 디지털 미디어학자 및 기술철학자들의 사유 또한 장진승의 작품 세계와 접속될 수 있다. 이와 같은 계보는 해당 작가들과 비교하여 장진승의 작품이 갖는 완성도를 비평적으로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그의 작업이 포스트인터넷과 포스트휴먼 등의 키워드로 검색되고 도출되는 다양한 인식론적, 존재론적, 문화적 질문들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한 초기 설정일 뿐이다.

장진승의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 졸업 프로젝트인 Face De-Perception(2017)은 키넥트(Kinect) 및 오실로스코프(Oscilloscope)와 연결된 안면인식 알고리즘 시스템이다. 컴퓨터와 연결된 카메라로 포착된 사람들의 얼굴은 흑백 데이터로 1차 저장되고, 이 데이터는 알고리즘의 연산을 통해 점 데이터와 소리 정보로 변환된 후, 다시 오실로스코프를 통한 변환을 거쳐 얼굴의 형상에 대한 시각적 패턴으로 최종 산출된다.

이와 같은 다단계의 변환 과정을 연결하는 시스템의 오퍼레이션(작가의 번역어는 ‘구동’이다)은 “각기 다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개별의 물리적인 정체성을 소거하고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류의 유사성만을 극대화해 보여주기”이고, 이 오퍼레이션이 의도하는 기능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어떠한 차별과 편견의 레이어를 상징적으로 삭제하기”다. 이와 같은 기능을 작업의 제목과 연결시켜보면 장진승의 문제의식이 도출된다. 즉 제목에 포함된 ‘De-perception’은 인간의 지각(perception)이 자연적인 역량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의 산물임을, ‘de’라는 접두사는 바로 이러한 ‘차별과 편견’의 제거를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면 여기서 제기하거나 제기될 수 있는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는 패글린과 웬디 희경 전(Wendy Hui Kyong Chun), 케이트 크로포드(Kate Crawford),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등이 제기하는 질문으로, 알고리즘과 인공지능 네트워크를 결합한 컴퓨터 기반 이미지 제작 및 순환 시스템이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인 것이 아니라, 오늘날 공항 검색대 및 경찰에서의 잠재적 범죄자 관리에 활용되는 안면인식 시스템의 사례에서 보듯 컴퓨터 기반 미디어의 구축, 확산, 오퍼레이션에 사회적 차별과 편견이 내재되고 오히려 그러한 차별 및 편견을 강화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둘째는 과연 인간적 지각이 제거된 이와 같은 시스템이 인간과 세계를 보는 방식은 어떠하며 그 시스템이 시각화된 세계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이다. 장진승의 작품들 일부는 분명 두 번째 질문의 탐구에 주력한다. 예를 들어 Face De-Perception의 테스트 및 오퍼레이션 현장을 기록한 도큐멘테이션 비디오인 (Miss) Understood(2017)에서 관객의 시점은 안면인식 시스템의 시점과 동일시된다. 관객은 시스템과 다양하게 상호작용하는 참여자들의 모습은 물론 이들의 얼굴을 자동적으로 인식하고 변환함으로써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추상적인 선의 패턴 및 사운드의 변화, 그리고 수치적으로 환산되는 데이터 값의 변화를 체감한다. 이처럼 인간과 세계를 인식하면서도 인간과 세계의 형상되는 다른 이미지를 산출하는 기계, 즉 패글린이 말하는 ‘보는 기계(seeing machine)’의 작동 방식 및 이 기계가 산출하는 데이터를 시각화하거나 다양한 물리적 객체로 변환하는 것이 장진승의 작품에서 중요한 탐구 대상 중 하나다.

이와 같은 탐구는 오늘날 자동화 사회를 구성하는 인터페이스와 기반시설의 영역으로 확장된다. 이은희 작가와의 협업으로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Decennium’ Series(2020)의 두 번째 에피소드 Before Termination에서는 전직 택시기사로 자율주행 택시인 ‘아이리모’를 운전하는 운전자가 홀로 택시에 탑승하여 귀가하는 과정을 기록한다. 관객은 고글을 쓴 운전자의 시점에서 아이리모의 장치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하는 도로 및 거리 정보를 사고 직전의 순간까지 체험하게 된다, 이 영화에서 장진승의 관심은 자율주행 시스템에 내재된 위험을 드러내거나 플랫폼 노동에 예속된 주체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 관심은 공공의 영역인 도로의 신호 체계가 사유화된 자동화 체계로 대체되면서 펼쳐지는 정보화된 세계의 탈-인간적 공허함과 예측 불가능성을 가상현실의 체화된 감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또한 Data Circulation System(2020)에서 장진승은 Face De-Perception에서의 안면인식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Data Cabinet, 데이터를 수집하는 자율 행동 로봇을 포함하여 데이터의 순환 및 저장 과정을 기반시설의 차원에서 관객이 지각하게끔 한다. Before Termination에서 자율주행 시스템의 데이터를 조작하는 기사가 데이터 체험의 주체가 되듯, 관객은 이 시스템 내에서 데이터의 제공자(객체)이자 데이터로 변환되는 자신을 바라보는 주체가 된다. 

이처럼 장진승은 자동화되고 본질적으로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보는 기계’의 오퍼레이션과 그 결과물로서의 시각 및 이미지를 탐구해 왔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이와 같은 기계의 접속을 바탕으로 순환하는 데이터가 주체와 객체 간의 구별, 물리적 공간과 가상적 공간의 구별을 무화하거나 재구성하는 방식 또한 질의한다. Delusional Reality(2021)에서 장진승은 시뮬레이션이 자연과 기억의 바탕을 이루는 세계에서 창조된 메타휴먼의 모험을 극화한다.

이 캐릭터는 바다의 냄새와 짠 기운, 극지의 추위를 느끼면서 자신의 좌표를 인식하고 자신과 같은 메타휴먼을 대량 제조하는 공장을 경유하여 자신의 제작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처럼 물리적 시공간의 법칙을 거슬러 유영하는 버추얼 휴먼의 자기 탐색은 인간과 자연의 전통적 경계를 넘나들며 전개되지만, 그 탐색이 이루어지는 모든 공간은 비디오게임과 머시니마(machinima)에서 흔히 활용되는 3차원 컴퓨터 그래픽으로 렌더링된 세계의 일부다.

이와 같이 총체적으로 가상화된 세계, 그래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근본적으로 지워진 세계가 Delusional Reality의 주제라면, 물리적 세계와 가상적 세계는 그저 혼융된 상태로 존재하는가, 또는 그 둘 사이에 간극은 없는가라는 질문 또한 제기될 수 있다. 장진승의 가장 최근 작품 Virtual Chronotope(2022)이 바로 이 질문을 탐구한다. 물리학에서의 가상 입자(virtual particle) 개념을 성찰한 이 비디오 에세이에서 장진승은 도시의 흑백 실사 이미지와 이에 대한 모노크롬 이미지, 그리고 적외선 카메라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모노크롬 톤의 그래픽 이미지를 파노라마적인 수평 트래킹을 모델링한 가상 카메라 기법으로 연결시킨다.

이와 같은 시각적 연속성은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의 중첩과 호응하면서도 실사 이미지와 그래픽 이미지 간의 간극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 간극은 현실 공간과 가상 공간 사이의 불일치에서 파생하는 자유 공간(free space), 화자의 내레이션에 따르면 ‘많은 레이어와 에너지를 함축한 공간’을 지시한다. 그 레이어와 에너지가 무엇이고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는가를 이 작품이 밝히지는 않지만, 장진승이 CGI와 디지털 시각화를 통해 향후 작업에서 심화할 질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