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와
신체 데이터에 대한 장진승 작가의 관심은 2012년 처음 만든 Data,
Polaroids로부터 시작된다. 이 작업은 성별과 나이, 인종 등을 가늠해볼 수 있는 다양한 피부색과 골격, 헤어 스타일과
복장을 한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의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격자식으로 배열된 사진
속 개인들의 서로 다른 모습이 폴라로이드 사진 특유의 흐릿한 색감과 균일한 정사각형 프레임과 묘한 대비를 이룬다.
여기서 시작된 문제의식은 장진승 작가의 졸업작품이기도 했던 2017년 Face De-Perception으로 이어진다.
모니터 위에는 3D 센서로 움직이는 신체를 감지해 데이터로 변환시켜 주는 키넥트가 달렸고
그 아래엔 신호를 파형으로 변환해 보여주는 오실로스코프가 있다. 복잡한 선으로 연결된 이 기계장치들
앞쪽엔 극저음 대역의 사운드를 재생하는 서브-우퍼가 있다. 관객이
이 앞에 서면, 모니터에는 키넥트 센서가 감지한 얼굴의 눈과 코, 입의
위치가 점과 선으로 패턴화되어 보이는데, 그로부터 얻어지는 데이터를 오실로스코프가 파형으로 시각화하는
동안 서브 우퍼에서는 그 데이터에 상응하는 사운드가 울린다. 이 작업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개별의 물리적인 정체성을 소거하고 모든 인간이 지니고 있는 인류의 유사성만을 극대화해 보여줌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어떠한 차별과 편견의 레이어를 상징적으로 삭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제작되었다…서로가 서로를 인지하는
방식의 간격 속에 기계라는 제3의 매체를 위치시키면서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한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방법을 제안하면서 차별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도 전에 우리는, 우리가 접하는 상대방
신체의 ‘물리적 정체성’으로부터 그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을
선 규정하는데, 여기에는 뿌리깊은 종교적, 문화적, 정치적 선입견이 적지않게 작용한다. 장진승 작가는 이렇게 생각한
듯하다. 타인의 신체에 대한 우리의 지각이 이처럼 ‘차별과
편견의 레이어’에 물들어 있다면, 이런 ‘인간적 지각을 해체 de-percetpion’하여 얻어지는 신체
데이터는 그 “차별의 고리를 끊는”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이 점에서 보자면, 관객의 얼굴을 오실로스코프 파형과
사운드로 데이터화하는 Face De-Perception의 기계장치는, 균일한 프레임과 색감을 가진 Data, Polaroids의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인간 신체의 태생적 물질성을 중립화
neutralize 하는 도구다.
그런데
신체의 데이터화는 이런 방향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 신체 데이터는 그 반대 방향으로, 신체를 익명성의 보호망에서 폭력적으로 끄집어내기 위해 사용된다. 예를들어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 중국 정부는 인파 속에서 수배 중인 범인을 특정해 검거하거나 무단횡단이나 안전벨트 미착용 등 교통법규 위반자의 신원을 확인해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이는 ‘개별신체의 물리적 정체성을
소거’하기 위해 사용한 Face
De-Perception의 바로 그 기술을 역방향으로 적용한 것이다. 개인의
얼굴 패턴을 감지해 내는 얼굴 감지 Face Detection 기술은,
그 데이터에 기반해 그 얼굴의 주인을 특정하는 얼굴 인식 Face Recognition 과
언제라도 연동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이 기술은 군중 속에서 특정 인종이나 성별의 신체 특징을 가진
사람은 물론, 특정한 표정이나 제스쳐, 심지어 특정한 말을
하는 사람들을 선별해내는데 사용될 수도 있다. (중국 정부가 이 기술을 소수민족 감시 시스템에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은 이미 폭로된 바 있다.)
신체의
데이터화는 양날을 지닌 칼이다. 한편으로 그건 우리 삶을 놀랍도록 편리하게 해준다. 우리는 번거로운 비밀번호 입력 대신, 얼굴 데이터로 스마트폰을 열고, 은행거래를 위한 인증을 대신한다. 스마트워치는 나의 걸음과 운동량, 호흡과 맥박수를 측정해 피드백해줌으로써 건강관리에 도움을 준다. (이번
월드컵 한국-포루투칼 경기에서 주목을 끌었던 황희찬 선수의 검정색 내의도 이동거리, 속도, 심박수와 가속도를 측정해 선수의 상태를 체크하는 신체 데이터화
기기였다.) 병원에서 환자의 맥박과 호흡, 뇌파를 측정해
그 상태를 알려주는 기계장치가 사람들의 생명 유지에 도움을 주어온 지는 오래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 신체가 담고 있는 정보들로의 접근 가능성이 커질수록 신체 데이터를 그 신체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활용할
가능성은 증가할 것만 같다.
실지로 2020년 이은희 작가와
함께 제작한 ‘Decennium Series’의 단편 영상 The
First Kid는 그런 가능성을 상상한다. 여기에는 7살 아이의 신체를 DNA 수준까지 스캔해 얻어진 데이터로 아이의
적성과 능력을 세밀하게 측정, 그에 적합한 교육과정과 직업을 제시해주는 ‘유아적성능력검사’ 시스템이 등장한다. 적성과 능력에 맞는 전공과 직업을 찾을 때까지, 일시적 호기심과
우연, 과대(망상적) 포부
사이에서 방황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각자의 신체의 심층 데이터에 기반해 적성과 직업을 제시해주는 시스템은, 19세기 초 샤를 푸리에가 꿈꾸었던 것처럼 새로운 인류를 낳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The First Kid에서 적성능력 테스트를 받는 아이는 어딘가
불안하고 갑갑해하며, 측정 결과 제시받은 미래의 직업적성 – 예술가! – 도 그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 같지 않다.
이후
장진승 작가의 관심은, 인간과 기술을 대비시키며 기술이 인간 지각의 편향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던Face De-Perception〉의 기술-유토피아적
전망 대신, 모호하고 불안하지만 확실한, 인간과 기계 사이의
근친성을 수용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하다. Deludes Reality(2022)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는 자신과 똑같은 봇들이 제조되는 공장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문하며 혼란스러워하고,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신체를 가진 Data Monument(2022)의 휴머노이드들도
그렇다. L.A.P.S.E(2022)에 등장하는 휴머노이드 Agent K.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박물관을
‘모든 것으로부터 지키는’ 자신의 임무와 자기 존재의 무의미성을 토로하지만, 거기에 크게 괘념하지는 않아 보인다.
생생화화전에
출품한 Datenprotokoll(2022)은 인간과 기계에 대한
작가의 변화된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주목할만하다. 여기 사용된 기술은 Face De-Perception에 사용된 기술과 근본적으로 같다. 다른 점이라면, 우연히 장치 앞을 지나가는 관객들 대신 키넥트 앞에서
집중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두 명의 퍼포머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그 앞에서 몸을 움직이는 애저
키넥트는 머리, 목, 오른쪽과 왼쪽 각각의 손, 무릎, 쇄골, 어깨, 팔꿈치, 엉덩이, 발을
포인트로 삼아 그 움직임을 각 신체 포인트의 위치 데이터로 변환한다. Face
De-Perception에서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이 데이터를 특정 주파수와 비트를 갖는 사운드로 변환해 들려준다. 그런데 퍼포머의 움직임을 도입함으로써 이전 작업에선 잘 드러나지 않던 새로운 측면이 부각된다. 인간과 기계의 호환성이다.
퍼포머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소리를 보고 들으면 언뜻 테레민 Theremin 연주와도 유사한 듯하다. 하지만 그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손으로 전자기장을 간섭시켜
소리를 내는 테레민과는 달리 여기서 사운드를 발생시키는 건 열여섯 군데 신체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테레민의
소리는 온전히 손으로 제어가능하다. 그래서 그 앞에서 손을 움직여 소리를 내는 사람을 우리는 ‘연주자’라 부른다. 그런데
Datenprotokoll에서 몸을 움직여 데이터를 생성하는 퍼포머들을
그 결과 생겨나는 사운드의 ‘연주자’라 말할 수 있을까?
아무리 전문적인 무용수라도 손과 팔꿈치, 어깨와 쇄골, 무릎과 발, 오른쪽과 왼쪽 엉덩이 각각의 움직임을 독립적으로 제어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여기서 우리가 듣는 소리는 퍼포머가 의지적으로 제어하는 손과 발, 머리 등의 움직임과 그렇지 못한 다른 신체 포인트들의 비의지적 움직임의 합작품이다. 여기서 퍼포머의 몸은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를 생성시키고 있을 뿐이다. 움직이는 퍼포머와 그의 움직임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는 각 신체 포인트의 데이터값을 함께 보여주는 장면은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데이터로
전환되는 신체 움직임에서 우리는 인간의 의지적 행위와 비의지적 행위를 구별할 수 없다. 실지로 인간
신체의 움직임에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운동감각 Kinasthetic과 신경시스템 사이의
피드백 과정이 작동한다. 노베르트 위너의 말이다. “내가
연필을 들어 올린다고 가정해보자. 그를 위해서는 일정한 근육을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소수의 전문 해부학자가 아닌 이상 우리 모두는 그 근육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해부학자들조차 해당하는 근육 각각을 의식적으로 수축해 그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 반대로 우리가 하려는 건 연필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
우리가
이를 결심하면 우리의 모션은 매 단계마다 연필이 아직 들어 올려지지 않은 만큼이 축소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말할 수 있다. 행동의 이 부분은 완전히 의식적이지 않다. 이런 방식의 행위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가 매 순간 연필을 들어 올리는데 실패한 만큼의 양이 신경 시스템에
보고되어야 한다. 연필을 보고 있는 한 이 보고는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시각적일 테지만, 더 일반적으로는 운동감각적 kinesthetic 혹은 자기수용적 proprioceptive이다.”
위너가
주목하는 건 연필을 들어 올리겠다는 결심 이후 실지로 이루어지는 행위다. 여기서 근육 움직임을 제어하는
건, 연필이 아직 들어 올려지지 못한 만큼의 양을 감지하는 운동감각과 신경시스템 사이의 피드백 과정이다. 여기서 “중추신경계의 가장 특징적인 활동은 신경 시스템으로부터 근육을
향해서 생겨나며, 다시 감각 기관을 통해 신경 시스템에 재-진입 re-entering 하는 순환적 과정이다.” 인간 신체의 움직임에는
운동감각과 신경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보교환 과정이 내재해있는데, 이는 인간에게 의식될 수는 없지만
수학적으로 계산가능하며 예측될 수도 있다.
이로부터 탄생한 것이 “기계나
동물에게서 제어와 커뮤니케이션의 전 영역”을 대상으로 삼는 사이버네틱스다. 로봇청소기부터 자율주행차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작동하는 사이버네틱스 기계들의 원리는 인간 신체의
움직임에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그렇기에 노베르트 위너는, 날아가는
비행기의 속도와 위치뿐 아니라 미사일을 피하려는 파일럿의 회피기동을 함께 계산해 적 비행기의 경로를 예측하는 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의 첫 스텝은 겉보기엔 불규칙하고 자의적인 듯 보이는 움직임의 패턴을 포착해 그를 계산 가능한 데이터로
전환하는 일이다.
인간
신체를 데이터화하는 일에는 이미 인간처럼 움직이는 휴머노이드의 배아가 자리잡고 있다. 장진승 작가 작업에
이 둘 모두가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몸통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파편화된 골격을 지닌 장진승의
휴머노이드는 분명 인간 신체와는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저 그들의 의무와 이유를 위해 존재”하는 “인간사회의
작동방식” (L.A.P.S.E)을 받아들이는 그는, 사실상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인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