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발달된 외계인은 존재하는가? 지구는 생명체가 살만한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거나 또는 외계인이 사는 행성을
식민지화할 수 있을까? 어느새 우주에 대한 관심은 SF영화에
나오는 미래의 머나먼 공상과학이야기가 아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우주정복에 대한 당면과제로 전환된다. 정체모를
거대한 검은 돌기둥의 등장으로 목성으로 가던 지구의 우주인들은 이유를 알 순 없으나 동행하던 AI인 HAL의 공격을 받는다. 이는 개봉
55주년이나 된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내용 중 일부이다. 영화 속 검은 기둥은 모노리스(monolith)라 불리우며, 이후 외계인(괴생명체)의
도구 또는 고성능 컴퓨터 정도를 상징하게 되었다.
2023년 현지구에서 모노리스를 찾는다면, 전세계에 남아있는 오벨리스크나 최근 미중(美中)대립을 첨예하게 만들고 있는 엄청난 능력과 파괴력의 첨단컴퓨터인 양자 컴퓨터 정도가 현재판 모노리스가 아닐까
싶다. 이렇듯 모노리스는 미스터리한 인류권력의 이니셔티브를 상징함과 동시에 거대한 단일조직인 일괴암(一塊岩)을 상징하기도 한다. 영화
속 AI가 오작동인지 고도로 스스로 진화하여 자율적 행동을 취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을 공격한
것과 같이, 현재 알고리즘이나 AI도 우리의 신체 및 개인정보를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통제하고 종속시키며 종국에는 멸망을 불러올 수 있다는 위협의 여지를 끊임없이 노출한다. 우리는 인간 복제, 뉴럴링크, 자율
로봇 같은 하이테크 기술의 발전과 혁신성이 가져오는 편의에 대한 믿음에 기대면서도 동시에 거꾸로 증명되고 있는 근본적인 폐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분법과 보편성의 기준을 강화시키면서 국가/기업(國家/企業)의 이익/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사회 또는 자본권력에 대한 우려는 커져만 간다.
2023년
장진승 작가의 《데이터 모노리스 Data Monolith》는 곧 도래할 “미래인류에 관한 동시대 담론”을 건드린다. 작가의 웹페이지(http://jinseungjang.com/data-monolith/)에
들어가면, 기존 작업/디자인/전시와 퍼포먼스 등 정보들과 함께 데이터 모노리스 프로젝트가 데이터화/아카이빙되어
있다. 꿈틀거리는 데이터모노리스 로고와 함께 4개의 섹션(monolith I, II, III, IIII)으로 분류되고, 건물, 흰색삼각형, 無(없음), 반도체칩, 네가지 아이콘들을 클릭하면 아바타 생성과 함께 각각의
특정 장소로 텔레포트된다. I는 오픈 세미나가 열렸던 장소로 세미나 내용들/문서가 모노리스처럼 세워져 있고, II에는 기계들이 가득찬 공간을
지나 지구 빙하기로 돌아간듯 흰 눈이 깔려 있는 표면위로 추락하게 되며, monolith III에는
태초의 공간이자 사각의 링처럼 검은 빈 공간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IV에는 또 다른 인류와도 같이 거대한 기계들이 움직이는 공간으로 이동된다.
그리고 스크롤
다운하면, 1절 데이터, 2절 이미지 데이터, 3절 문자 데이터, 4절 컴퓨터,
스마트폰, 인터넷의 데이터 5절 빅 데이터, 6장 데이터와 정치, 7절 인공생명의 데이터, 8절 양자 컴퓨터와 시뮬레이션 데이터, 9절 인류의 자멸과 이미지의
부활, 10절 데이터 모노리스로 데이터-〉모노리스까지 의미를
신의 사역을 기록하듯 동일한 형식으로 적어놓고 있다. 결국 웹페이지는 디자인된 장진승 작업의 기억 아카이브이자
모노리스가 되었다. 작가 뮌(Mioon)의 웹아트 〈아트
솔라리스〉(2016-2020)가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미술계의
카르텔”란 금기를 건드린 아카이브였다면, 장진승의 데이터
모노리스는 결국 데이터 담론의 구조와 조건들을 탐색하면서 이에 대한 관계 미학을 넘어 ‘하나-여럿의 횡단하는 다양체’를 통해 사변적 사유와 해석을 제안한다.
《데이터
모노리스》는 최근 경향을 반영하듯 온라인 전시를 표방한다. 기존 전시(展示)보다는 웹페이지와 메타버스 스페이셜(spatial)에서 참여자/아바타들과 자유롭고 창의적인 의견공유 같은 프레젠테이션 워크샵-대담이
행해졌다. 오픈세미나에서는 “동시대 데이터 존재론 혹은 데이터
현상학”에 대한 고민으로 필자들을 모았다. 작업과정 – 물론 완성은 인쇄물 – 아날로그 모노리스 형태로 세상에 나올 것이다 – 에서는 네명의 필진 및 연구자와 함께 데이터, 다양체와 감각, 신을 대체한 과학의 보편성과 금기에 이르기까지 업투데이트한 논의를 다루면서 어떠한 낙관 또는 비관적 결론보다는
열린 결말 이면에 가려진 사회적 문제점을 드러낸다. 환영/유령의
대화들은 유효한 것으로서 저자의 죽음에 대한 회의, 상실의 감정은 극복된다.
또한 다자간의 논의과정 형태로서의 전시형식을 채택함은 사적 다자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공론화로 융합된 좀 더
객관화된 의견임을 강화하고, 항상 들어왔던 자신의 모노-작업이
난해하다는 평가에 대한 대안으로서 적용, 답보적 프로젝트 진행상태를 일정부분 해소하려는 듯하다. 이는 미술계의 전시언어를 학습, 빠르게 적응해가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장진승은 “프로젝트가 계속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데, 사실은 답이 없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얘기로 쉽게 그려지지 않기도 하며, 그렇다고
프로그램화로 청사진을 그리려는 것도 아니기 떄문에 큰 거시적 맥락 안에서 그 다음 맥락을 어떻게 짚어가고, 그
개인(작가)의 역할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은 스마트폰이든 뭐든 개인적인 디바이스를 통해서 벌어지는 것들 어디까지 우리의 (상상력과) 감각을 펼칠 수 있는가라는 게 조금 걱정이 되는 지점”이라고 작업의 고민을 털어놓는다. (데이터 모노리스 대담에서)
특히
여기에 참여한 이광석 교수는 주민등록번호-데이터베이스-빅데이터-데이터자본주의-데이터양화 등의 “데이터”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용어 변천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상황이나 경제적 문제를 환기시킨다. 또한 AI를 약지능(weak
intellegence)과 강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egence)으로
구분, 곧 다가올 AGI에 대한 비관적 미래를 전망하면서, 기술에 매몰되기를 멈추고 기계-인간간의 밸런스를 맞추며 이미 도래한
차세대산업-데이터 사회(자본주의)-모노리스의 기회와 문제점에 대해 짚어나가는 아트앤테크 작업을 제안한다. 다만
아무리 첨단기술력을 부스터한다 해도 코스트를 낮추지 못하면 제조력-유통에서 효율성을 거둘 수 없다. 비물질적 빅데이터 산업이 제조산업과 궤를 같이 하고, 여전히 임금에
등급이 존재하는 이상 미래데이터사회에서도 불평등 같은 모든 폐해들이 잔재한다. 결국은 변화된 포스트
인간/노동의 문제다. 포스트미디어작업도 포스트-휴먼의 문제도 인간/물질과의 관계에서만 유효한 것으로 공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