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욱은 괴물 네시를 찍으러 네스호 (영국말로는 Loch Ness)에 여러 번 갔다. 그가 런던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국에 산다고 해도 네스호는 가기 쉬운 곳이 아니다. 영국 지도를 보면 북쪽으로 한참 치우친 북위 57도에 인버네스 라는 도시가 있는데 네스호는 거기 있다. 한반도의 최북단인 함경북도 풍서 라는 곳이 북위 43도 밖에 안 되니까 네스호는 정말로 북쪽에 있다. 네스호는 런던에서 차로 10시간 걸린다. 길은 좁고 꼬불꼬불하고 노견은 아예 없다. 운전의 방향이 반대인 것은 덤이다. 그곳을 김신욱은 괴물 네시를 찍겠다고 여러 번 간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 가면 정말로 괴물 네시가 나 찍어달라고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그 유명한 흑백사진 속의 자태를 하고 있을까? 여기서부터 답은 꼬이기 시작한다. 정말로 괴물이 있는지, 있다면 어떤 형상을 하고 있는지 밝히려면 괴물이 사실적이고 실제적으로 떡 하니 있어야 할 텐데 괴물을 봤다는 소문만 많고 증거라고 내미는 사진들은 하나같이 조작의 냄새를 짙게 풍기는 것들 뿐 이니 도대체 괴물을 사진 찍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애매한 것이다. 그러니까 네시를 사진 찍는다는 것이 괴물을 사진 찍는 것인지 괴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진 찍는 것인지, 아니면 괴물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과 그들이 내미는 증거를 사진 찍는 것인지부터가 뒤죽박죽이다.
어쨌든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가봐야 괴물이 있는지 허구가 있는지, 아니면 허구가 있다는 사실이 있는지 없는지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김신욱은 괴물이라는 허구에 실재의 도구인 카메라를 들이대본다. 그것은 악령의 존재를 밝히기 위해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는 것 만큼이나 황당한 시도다. 하지만 인간만사가 꼭 합리적으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우리의 삶은 꿈과 허구와 실재가 구분할 수 없이 뒤섞여 있는 것이기 때문에. 네시가 딱 그런 상태다.
이 세상에 용이 있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없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중국, 한국, 일본 등 한자문화권 사람들 중에 뽀빠 이 이상룡, 축구선수 이청용, 영화배우 이소룡처럼 이름에 龍자 들어가는 이들이 꽤 있고, 서울에는 용산, 용문고등학교 등 용자 들어가는 이름들이 꽤 있다. 그리고 용의 형상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흑석동에 있는 어느 대학교 본관 앞에는 청동으로 된 용 분수가 있고 홍콩에서는 용의 탈을 쓰고 축제를 한다. 이쯤 되면 용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용은 문자로, 조형물로, 축제 이름으로 있다. 즉 상징으로, 사물로, 사회적 리추얼로 있다.
네스호(Loch Ness)의 괴물 네시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네시에 대한 관심 은 거의 사라졌지만 네시라는 이름 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네스호는 런던에서 차로 10시간 떨어진 아주 멀고 외진 곳에 있기 때문에 영국 사람 중에도 가본 사람이 아주 적을 것이다. 거기 산다는 괴물 얘기가 멀고 먼 한국까지 퍼진 것을 보면 네시 의 위력이 대단한 것 같다. 허구든 진짜든 네시는 분명히 살아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직 살아있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사진 찍을 수 있다. 찾을 수만 있다면.
괴물 네시도 이런 식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한 장의 흐릿한 흑백사진에서 출발해서 갖가지 상품의 이미지로, 만화 캐릭터로, 사람들의 망상으로 존재한다. 허구가 존재하는 차원이 하도 여러겹이니까 거의 실재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사진 찍을 수 있는 것 이다. 네시를 사진 찍을 수 있는 이유는 실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눈 앞에 뭔가가 딱 나타나니까 사진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네시의 전설에는 역사와 기원이 있다. 1934년 크리스챤 스파링과(Christian Spurling) 로버트 윌슨(Robert Kenneth Wilson)이라는 사기꾼이 괴물 모양의 모형을 만들어 잠수 한 뒤 찍은 사진을 괴물이라고 발표하면서 네시는 이 세상에 나타났다.
이때 그들이 찍은 사진이 네시에 대한 유일한 이미지 이지만 네시의 기원은 괴물을 찾으려고, 혹은 괴물을 만들어내려고 애쓴 수 많은 사람들의 망상 속에 있다. 그 망상의 기원은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사람들은 네스호에 켈피라는 환상의 동물이 있었다고 믿었다. 서양에서는 그런 망상을 hoax라고 하는데 종류도 아주 많고 수많은 책과 영화 등 대중문화에서 매우 풍부한 주제가 되고 있다. 설인 예티나 UFO가 대표적인 hoax 다. 네시도 대표적인 hoax다. 그런데 네시는 아주 허구만은 아닌 것이, 네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노력을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BBC방송은 네시의 존재 혹은 부재를 밝히기 위해 길이가 36킬로미터에 이르는 네스호의 바닥을 수중음파탐지기로 다 뒤지기도 했다. 만일 네시가 허구라면 이런 정도의 노력을 할 정도로 사람들을 동원하여 일을 시킨 것이므로 아주 헛것은 아니다. 일렁이는 바람이 직접 눈에 보이지는 않을 지 언정 허구가 아니듯이 말이다.
네시는 두가지 차원에서 자신의 존재를 우리에게 들이민다. 첫째는 돈이다. 네시 관련 각종 기념품 등의 판매로 해서 생기는 경제효과가 1년에 6백억원 쯤 된다고 하니 네시는 허구라고 단정 지어 버릴 수 만은 없는 실재이다. 이 세상에 돈 만큼 실제적이고 실재적인 것이 없지 않은가. 네시는 돈보다 더 강력한 또 다른 차원에서 자신을 들이민다. 그것은 제국의 힘이다. 네시는 허구일지 몰라도 네시가 한국에 알려져 있다는 사실은 허구는 아니다. 그런데 한국의 전설이나 옛날 얘기도 영국에 알려져 있을 까? 구미호의 전설이나 심청전을 아는 영국 사람이 있을까? 없을 것이다. 우리가 방글라데시 시골의 설화를 모르듯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영국 시골의 가짜 전설 네시를 알게 됐을까?
영국은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제국이었다. 속국은 제국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게 된다. 오늘날 한국사람들이 유니언잭이 새겨진 담요나 베개를 끔찍이 좋아하는 것이나, 차 범퍼에 괜히 유니언잭을 붙이고 다니는 황당한 일들은 다 제국의 위력을 말해 주는 것이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에서부터 록그룹 퀸이나 롤링스톤스, 롤스로이스 자동차, 버킹검 궁전, 빅벤 등에 대해 친숙하게 알고 있다. 요즘 말로 하면 TMI (too much information, 즉 쓸데 없는 지식들)인 이것들을 우리가 알게 된 경위 자체가 제국이 세계를 지배한 과정 속에 있다. 제국은 자신의 명성을 변방 국가들에게 알려주어 복종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파리 마치』의 표지에 실린 사진 한 장에서 제국의 위력을 읽어내는 롤랑 바르트의 시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발사가 『파리 마치』 한 권을 내게 내민다. 책표지 위에 프랑스 군복을 입은 한 흑인 젊은이가 눈을 들어 삼색기에 잡힌 주름을 바라보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이 이미지의 의미(sens)이다. 그러나 순진하건 아니건 나는 이 이미지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즉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라는 것, 모든 프랑스의 아들은 피부색의 구분 없이 그 국기 아래 충심으로 봉사한다는 것,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해 비방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압제자들에게 충성하는 이 흑인의 열정보다 더 훌륭한 대답이 없다는 것이다.’ (롤랑 바르트, “기호학적 체계로서의 신화“ 『현대의 신화』 이화여자대학교 기호학연구소 옮김, 동문선, 1997, p.274)
롤랑 바르트가 하찮은 잡지사진에서 제국의 위력을 읽어냈다면 우리는 네시에서 제국의 위력을 읽어낼 수 있다. 한 때 전세계에 속국을 거느린 제국이었던 영국은 수많은 허구와 전설들을 수출했고 속국들은 그 전설을 문자 그대로 전설적인 얘기로 받아들 였다. 여기에는 엄청난 내러티브의 양적 불균형이 있다. 우리가 외국에서 엄청난 양의 책을 수입하지만 한국책의 수출은 미미하 듯이, 서구의 온갖 시시콜콜한 전설이며 얘기들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들어와 있지만 한국의 얘기들은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어 릴 적 학교에서 듣던 네덜란드의 의리 있는 소년 얘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네덜란드는 땅이 바다보다 낮아서 바닷물을 막는 둑 이 많은데 어느날 둑에 조그만 구멍이 생긴 것을 본 소년이 주먹으로 그걸 틀어막다가 물이 점점 많이 들어오고 구멍이 커져서 결국은 장렬하게 익사하고 나라를 구했다는 감동적인 얘기다. 이 얘기는 뻥인데 흥미로운 것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한국에 이 허구가 네덜란드 소년의 애국심에 대한 전설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허구가 지구를 한 바퀴 돌아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허구가 허구임을 네덜란드 사람들은 알고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 제국들의 위인들에 대한 허구도 아주 많다. 뉴턴이 사과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 했다든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피사의 탑에서 쇠공을 떨어트려 중력을 실험 했다든지, 마리 앙투아네트데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했다는 얘기는 다 뻥이다. 하지만 그것들의 위력은 허구가 아니다. 우리는 허구 마저도 진실로 믿고 받들면서 제국을 섬긴다. 영국이 제 국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 먼 시골 호수에 있는 괴물 얘기가 한국의 우리들에게 까지 알려지게 됐을까?
김신욱이 사진으로 남긴 소박하고 쓸쓸해 보이는 네스호 풍경이나 네시 관련 기념품 같은 귀여운 표상들 뒤에 숨어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이 바로 제국의 위력이다. 제국은 망했지만 전설은 살아남았다. 네시는 허구일지 모르지만 그 허구를 우리에게 가져다 준 힘은 허구가 아니다.
제국의 허구를 상대 하려면 제국 정도의 배짱이 있어야 하는 법. 네시 사진에 대한 가장 냉정한 평가를 내린 것은 미국이라는 또 다른 제국이었다. 1990년대 중반 쯤 『American Photo』라는 잡지에 코닥필름 광고가 실렸는데 네시의 사진을 썼다. (몇년 몇월 호인지 데이터가 없어서 밝힐 수 없는 점이 안타깝다) 흥미로운 점은 이 광고가 괴물 네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오랜 기억을 되살려 카피를 재구성 해보자면 대략 ‘사람들은 이 사진에서 괴물을 보지만 코닥의 입장에서는 노출도 안 맞 고 필름 현상도 엉망으로 된 실패작일 뿐이다’였다. 코닥은 괴물 네시의 사진에서 괴물도 빼고 허구도 빼고 그저 엉망인 한 장의 사진으로만 봤다. 그게 네시의 가장 정확한 실체다. 1934년에 어떤 미친 놈이 만들어낸 가짜 이미지.
코닥이 했던 식으로 그 사진을 좀더 자세히 보면 네시의 실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 사진에는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는 데 물결의 파고를 최대 10센티미터하고 하면 거기에 비례해서 계산해 보면 괴물의 높이는 1미터 남짓 된다. 물 속에 있는 것 중 에 1미터 정도 되는 것으로는 큰 메기도 있고 뱀장어도 있다. 다만 수중생물이 거의 없는 네스호의 특성상 그런 것들이 있을 확률은 매우 적다고 한다.
크기 1미터로는 괴물이라고 하기에는 좀 작다. 김신욱이 수집한 출처불명의 어떤 기사에 보면 1930년에 발견된 뱀장어 치어는 크기가 184센티미터인데 뱀장어의 성장률을 고려해서 계산해 보면 다 자랐을 때 30미터까지 클 수 있다 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 속의 괴물의 크기는 30미터와는 거리가 아주 멀다. 이 사진은 조작일 뿐 아니라 설사 실제로 찍은 것이라 해도 괴물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도대체 괴물이 뭐길래 그렇게 많은 망상과 관심의 대상이 된걸까? 그 경위 자체가 괴물스럽다. 괴물이란 정의되지 않 은 존재를 총칭하는 이름이다. 모르겠는데 좀 무섭고 크고 징그러우면 괴물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동물인지 식물인지, 생물인 지 무생물인지, 착한지 악한지, 큰 놈인지 작은 놈인지, 우주에서 왔는지 지구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것이 괴물이다. 연쇄살인범 처럼 분명하게 ‘사악하다‘는 딱지가 붙은 존재는 괴물이 아니다.
괴물은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당혹감을 준다. 그것은 공포감 보 다 더 기본적인 감정이다. 언어 밖, 혹은 인식 저편의 존재이기 때문에 당혹감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네시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당혹이라기 보다는 애호에 가깝다. 귀여운 마스코트도 많고 만화 이미지도 많다. 사람들은 괴물 네시를 다루기 곤란하니까 작고 귀여운 것으로 축소해 버린 것일까?
김신욱의 사진은 그런 사정들을 따라간다. 사진은 아무런 과장도 하지 않고 네시가 있을 만한 네스호 여기저기를 훑는다. 엄청 난 장비를 써서 대단히 공들여 찍은 사진이지만 마치 쓱 지나가다 찍은 것 마냥 스냅 사진처럼 보인다. 너무 심각하게 다가가면 네시의 허구에 잡혀 먹히기라도 할 듯 사진들은 일견 가벼워 보이지만 네스호의 구름 낀 날씨 때문에 분위기는 무겁다. 어떤 사진에도 네시가 있다는, 혹은 없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김신욱의 사진은 그저 하나의 내러티브일 뿐이다. 어떤 사진도 이게 네시다, 이래서 네시가 존재한다는 식의 단정을 내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괴물의 존재를 믿고 있다는 다양한 증거와 부산물들을 찍었을 뿐이다. 그 장면들을 모으면 네시를 둘러싸고 사람들이 벌인 온갖 넌센스의 난리법석에 대한 내러티브가 된다. 2019년에는 뉴질랜드에 있는 오타고대학의 교수이자 유전학자 Neil Gemmell이 직접 네스호에 와서 다양한 수심에서 채취한 물샘플을 분석한 결과를 네스 호 근처에서 발표하기도 했는데 그 장면도 사진 찍었다. 물론 결과는 네스호에 네시의 DNA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 현장에는 1973년부터 네시를 찾아다닌 네시 전문가 애드리안 샤인(Adrian Shine)씨도 있었다. 1987년 『AP통신기사』에도 그의 모습은 나온다.
그는 옛날이 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네시의 존재를 믿는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그도 hoax를 믿는 몽상가일 뿐이다. 아니면 망상가던지. 결국 김신욱의 네시 프로젝트는 허구의 존재들을 쫓아 사진을 만드는 것이었다. 망상과 허구가 분명한데 하도 여러 사람들이 떠들고 온갖 표상들이 만들어지다 보니 허구라고 외치면 외칠수록 더 힘이 생기는게 네시의 위력이다. 지금부터 흰 코끼리에 생각하지 말라고 하니까 오로지 흰 코끼리만 생각하듯이 네시가 자꾸 허구라고 하니까 네시가 진짜가 되었다.
김신욱의 카메라는 밝힐 수 없는 사실성을 쫓아 증거능력을 들이댔지만 그가 밝힌 것은 사진으로 밝힐 수 없다는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네시만이 아니라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던 것이 다 허구라면 어떨까? 국가도, 가족주의도, 진리도, 종교도, 내 주민등록번호도, 내 학벌도, 정체성도…… 모든 것이 빅데이터의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21세기, 과연 네시는 있는 걸까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