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없는 풍경, 주인 없는 경험이 지탱하는 시간을 생각해본다. 일상이라 이름 붙여진 시간에는 명명되지 않는 수많은 사건들이 지나간다. 신호대기 중인 차 안에서 눈에 들어온 횡단보도를 건너는 남자의 구두, 인파로 분주한 퇴근길에 내 가방을 치고 간 사람의 신경질적인 뒷모습, 스마트폰으로 이런저런 정보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시선이 멈춘 어느 휴양지의 비현실적 풍경 등, 분명하지 않은 장소에서 일어난 명명할 수 없는 경험의 연속이 매일이라는 시간을, 그 영원성을 수성한다.
김신욱의 일상에는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많은 장소 없는 풍경이, 그리고 주인 없는 경험이 자리한다. 런던에 거주하는 작가는 거의 매일 공항을 오간다. 여행 등의 개인적 용무 때문은 아니다. 그 반대이다. 작가는 런던에 여행 온 사람들을 보조하는-주로 여행자들을 공항에서 픽업해 시내 어딘가에 내려주는, 또 시내에서 공항으로 데려다주는-일을 한다. 들판과 길, 그 위에 가끔 보이는 공장과 창고 등이 런던 외곽에 위치한 공항을 오가는 작가의 일상을 채우는 장면들이다.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이 일은 8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되었고, 작가는 몇 천 번 공항을 오갔다.
공항은 어떤 장소인가? 공항에는 여러 가지가 혼재한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심사와 검열로 위장한 무형의 폭력이,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른 노골적 차별이 여러 행위적 지표로 드러난다. 또 멀리 떠나거나 누군가를 만나러 온 사람들의 얼굴에는 묘한 긴장과 설렘이 스치기도 한다. 공항은 이성과 비이성이, 현재와 비현재가 공존하는 기묘한 공간이다. 작가는 일종의 일터가 되어버린 공항, 그 기이한 장소에 관해 보다 많은 정보들을 습득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공항 라운지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 각 터미널 카페의 위치, 그 외 공항의 각종 편의시설은 물론 공항 출구에 붙어있는 광고판 이미지까지 자세히 묘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공항의 냄새와 소리, 조명의 색깔, 바닥 카펫의 종류, 심지어 화장실 청소를 하는 인도계 영국인 아저씨의 목소리까지 하나하나 기억한다. 아니, 기억한다기보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체화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렇게 한 장소에 대해 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된 작가는 자연스럽게 해당 장소에 관한 다양한 사고를 발전시킨다. 그리고 그 사고의 장면을 작업과 긴밀하게 연동시킨다.
그럼, 그의 작업 속 공항은 어떤 모습일까? 선명한 드라마나 내러티브가 전달되지 않는 그의 사진은 얼핏 희미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그의 카메라가 비추는 장소는 공항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공항 근처의 공터와 녹지, 드문드문 위치한 주택가가 대부분이다. 주로 공항 주변의 풍경을 촬영한, 공항 시리즈의 초기 작업은 거의 공백에 가까울 만큼 어떤 사건도 그려내지 않는다. 오브제와 인물로 그 대상을 넓혀 진행한 최근 작업에서도 그러한 공백의 느낌은 고스란히 유지된다. 공항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오르는 만남과 기다림, 그 뒤의 검열과 통제의 장면은 그의 사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공항에 관해 많은 것을, 어쩌면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작가는 이상하리만큼 공항이라는 장소의 정보가 지워진 주변에, 장소가 아닌 풍경에 집중한다.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보자. 공항 인근으로 보이는 넓은 들판 위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스리랑카 전통복장을 한 커플이 웨딩 촬영을 하고 있다. 역시 공항 근처로 보이는 다소 황량한 벌판에는 한철 놀이공원이 들어서 있고, 그 옆에는 아이들만의 작은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다른 사진은 새로 장만한 신형 세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어느 사설 택시 기사를, 또 매주 공항에 나와 이착륙하는 비행기의 고유번호를 기록하는 취미를 갖고 있는 중년 남성의 일상을 덤덤하게 기록한다. 이 밖에도 승무원의 간결한 옷장, 공항 옆 텅 빈 도로, 활주로와 담 하나로 나눈 주택, 버려지듯 존재하는 공항의 오래된 시설물 등이 그의 카메라로 포착한 대상들이다.
작가는 자신이 집중하는 공항 주변의 어정쩡한 장소들을 명명되지 않는 땅(Unnamed Land)이라고 말한다. 그럼 명명되지 않음을 공유하는 작가의 사진은 무엇을 말하기 위한 것일까? 작가의 주 촬영지인 히드로 공항(주변)은 원래 대부분 농경지였다. 이후 세계대전과 함께 군용 비행장으로 들어섰고, 1946년 정식 공항으로 개항한다. 그리고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공항은 지속적으로 그 부지를 넓혀왔다. 몇 개의 새로운 터미널이 생기기도 했고 필요에 따라 추가 시설물이 들어서기도 했다. 확장된 공항은 이제 그 부지를 정확히 측정하기 힘들 정도로 넓은 광막의 땅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광막의 장소는 도시로 편입되지 않는다. 다만 연동될 뿐이다. 소음, 환경 등의 문제로 도시가 품지 않은 공항, 그곳에는 도시 뒤에 가려진, 어쩌면 도시가 거부한 삶의 풍경이 자리한다.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공항 주변의 작은 주택가 옆 버려지다시피 존재하는 대지에서 웨딩 촬영을 하고 있는 커플, 은퇴한 영국인의 유일한 취미생활이 돼버린 공항을 오가는 비행기의 일련번호, 공항 활주로와 담 하나로 나뉜 집에서 소음을 견디며 살고 있는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이 종종 벌이는 시위와 축제 등 얼핏 보기엔 공허한 사진의 풍경에는 실로 다양한 사회 문화적 기표들이 횡단한다. 그렇게 작가의 작업은 도시와 외곽, 이주와 노동, 종교와 인종, 환경과 개발 등의 다양한 이슈들을 희미한 이미지에 압축해 서늘하게 전달한다.
뿐만 아니라, 사진은 공항이란 장소에서 생성된 작가 개인의 정서까지도 감지하게 한다. 얼핏 차가워 보이는 이미지에는 해당 장소를 관통한 작가의 경험이, 그 정서가 묻어난다. 차를 타고 공항을 오가는 작가의 일상을 상상해본다. 공항을 가기 전 작가는 무수히 많은 비장소들을 지날 것이다. 십 년 넘게 살았지만 여전히 낯선 타국의 도시, 그곳을 벗어나면 이어지는 고속도로, 양옆을 메우는 넓은 들판, 그 위로 중간중간 보이는 공장과 렌터카 회사의 주차장, 오래된 비즈니스호텔 등 모두의 것도 누구의 것도 아닌 그 기이한 장소들을 지날 것이다. 그리고 문득 만나기로 한 사람은 제시간에 도착할지, 비행기가 연착되지는 않을지, 시내로 돌아가는 길이 막히지는 않을지 등의 걱정이 스치기도 한다. 그러다 길 위에서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어떤 사람에게 아직은 수신 불가능한 문자 메시지를 보낼지도 모른다.
이처럼 작가는 도미노처럼 연결된 비장소와 비경험의 여정을 뚫고 공항에 도착한다. 하지만 도착한 그곳은 또 다른 비장소가 아닌가. 관계성, 역사성, 장소성이 부재한 시간을 관통해 마주한 공간, 공백의 시간 끝에 존재하는 공항은 마치 모든 공백의 집성체처럼 다가올지 모른다. 이와 같은 작가의 일상은, 그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사진이 비추는 공간에 스민다. 본인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된 장소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려는 작업은 장소에 내재된 사회 문화적 내러티브와 작가 개인이 공간에서 감지한 내면의 정서를 세밀하게 포개 놓는 것이다. 그렇게 여러 관찰의 층위와 개인의 경험이 내려앉은 이미지는 마치 알랭 로브그리예(Alain Robbe-Grillet)의 소설처럼 객관적으로 장면을 서술하는듯하지만 그만의 기분과 감정을 불현듯 드러내곤 한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크 오제(Marc Augé)는 작가의 하루, 아니 수 년을 점유한 길, 들판, 공항과 같은 비장소적 공간을 고독의 solitude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작가의 일상 대부분은 분명 고독의 공간에 존재한다. 하지만 작업에 비추어 볼 때 그 고독의 공간은 꽉 막힌 한계의 공간이 아닌 실재를 투영하는 상상의 공간으로 재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공간과 자신과의 관계성에 대해 고찰하며 비장소의 공간을, 그 안의 고독을 여러 사회 문화적 이야기가 가능한 이미지로 전환시킨다.
종일 비장소를 배회하며 명명할 수 없는 땅을 명명하기 위해 촬영한 장소 없는 풍경, 주인 없는 경험의 사진이 여러 의미와 맥락을 역설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이유는 작가 스스로 실재가 창출되는 비장소로서의 공간으로 공항을 설정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뚜렷한 기호와 상징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대상의 객관적 접근이라는 어쩌면 불가능한 설정을 전제로 하는 그의 사진은 그렇게 작가 내면의 풍경과 장소의 사회 문화적 맥락을 동시에 드러낸다. 작가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이는 공항이라는 비장소의 재정립이 어떤 이미지를 파생할지, 또 그것이 어떤 사회 문화적 이야기와 내적 풍경을 전달할지, 계속 그 변화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