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명, 〈구름-쓸모있는, 플러그에 연결된, 감싸는 층〉, 2023, 알루미늄, 시트에 인쇄, 5340x2320x70mm,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 전시 전경(스페이스 애프터, 2023) ©구자명

구름(Gooroom), 해(Sun), 붉은별(Redstar). 덩굴(Creeper)과 돌멩이(Stone), 토끼(Hare)와 억수의 비(Cascade). 구자명이 개인전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2023)를 위하여 선택한 소프트웨어의 이름이다. 구름은 한국의 국가보안기술연구소가 제작한 운영 체제이며, 해는 미국의 썬 마이크로시스템즈가 개발한 운영 체제다.

또한 붉은별은 북한의 조선콤퓨터쎈터에서 만든 리눅스 기반의 운영 체제를 말한다. 한편 덩굴은 1971년에 개발된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에 붙여진 이름이고, 돌멩이, 토끼, 억수의 비 또한 각각 컴퓨터 바이러스의 이름을 뜻한다. 운영 체제는 기계를 제어하고 응용프로그램이 기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돕는다. 바이러스는 악성코드를 전파하며, 기계가 제 기능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운영 체제와 바이러스가 하나의 환경을 구성하는 “정원의 원리”. 이것은 분명 역설적인 풍경이다.

구자명의 작업 방식을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작가는 웹사이트나 어플리케이션 등을 지지하는 소스코드를 디코딩한 뒤 코드를 이루는 형태나 모양 등을 본떠 조형으로 재구성한다. 한편으로 이것은 작업을 제작하는 일반적인 절차처럼 보인다. 하지만 작가의 결정이 개입하는 방법론의 관절을 뜯어보면 몇 가지 궁금증이 튀어나온다. 왜 소스코드인가? 왜 조형인가? 왜 소스코드와 조형인가?

먼저, 왜 소스코드인가?  작가에 따르면 그것은 소프트웨어의 “유전자 지도”이자 “설계도면”에 해당한다.1 소프트웨어는 무엇보다도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대상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프트웨어는 전지구적 규모의 에너지 소비를 유도하는 지질학적 추출 기계다.2 이때 소프트웨어의 특성이라고 가정된 비물질성과 비가시성은 지구적인 것을 추출하는 착취의 힘을 투명하게 만들기에 문제가 된다.

웬디 희경 전(Wendy Hui Kyong Chun)은 소프트웨어가 사용자(user)라는 상상적 관계를 호명하고 장치 내부에서 벌어지는 연산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 기계’라고 지적했는데,3 이는 곧 우리가 소프트웨어의 미명으로부터 벗어나, 은폐된, 나아가 물신화된 그것의 뒷면으로 향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유전자 지도”이자 “설계도면”인 소스코드는 이 뒷면의 가장 첫 번째 접면이기에 사용자는 이곳으로 향해야 한다.

하지만, 왜 조형인가? 문제가 있다. 구자명의 작업은 일견 독해 불가능한 듯 느껴진다. 복잡성을 갖는 도식이 벽면에 빼곡하고 근처에 놓인 조형은 예의 복잡성을 다시 한번 난독화(obfuscation)한다. 소스코드라는 논리적, 또는 밀교적(esoteric) 언어가 조형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시장 안에 놓일 때, 그것은 사변적이고 암호화된 수식이 되어, 또 다른 밀교적 언어를 재생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소프트웨어라는 복잡계가 조형이라는 복잡계로 번안되는 상황. 여기서 엔트로피는 변화하지 않는다. 소프트웨어의 이데올로기 기능을 탈구축하고 마침내 그 뒷면을 찾아내기 위해선 보다 간명하고 명징한 언어가, 보다 투명한 언어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투명성이야말로 소프트웨어의 가장 모순적인 외피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클릭하거나 터치하면 즉각 반응하는 소프트웨어의 인터페이스는 기계가 구동되는 모든 절차를 사용자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인터페이스는 오히려 사용자가 기계에 직접 접촉하는 것을 제한하는 왜곡된 접면이다. 우리가 보다 투명한 언어를 필요로 할수록, 우리는 보다 잘 설계된 인터페이스를 얻게 될 뿐이다. 누군가 말했듯이, 이데올로기는 퍼즐처럼 해결되거나 질병처럼 치유되는 것이 아닐 테다. 4

소스코드는 복잡한 대상이며, 추상화된 언어고, “차이들을 거듭해서 다시 계산하는”5 글쓰기다. 소스코드를 조형으로 번안하는 과정은 소프트웨어를 조형으로 재현하려는 단순한 시도가 아니라, 재현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것을 재구성하려는 일련의 시도에, 또한 “재현 불가능한 것은 존재하는가?” 6라는 존재론적 질문을 재구성하려는 일에 속할 것이다. 여기서 탈구축은 복잡한 것을 복잡한 것 그 자체로 직시할 때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구자명, 〈붉은별-전사〉, 2023, 주석, 시트에 인쇄, 2990x2320x30mm,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 전시 전경(스페이스 애프터, 2023) ©구자명

구름과 해, 붉은별, 그리고 덩굴, 돌멩이, 토끼, 억수의 비. 이들에게는 공유지가 있다. 다름 아닌 자연이다. 작가는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를 계획하며 자연적인 것의 이름을 본뜬 컴퓨터 프로그램을 골라냈다. 구자명은 과거 작업에서도 자신의 조형에 생물학적 원리를 부여한 바 있었는데, 이는 소프트웨어의 작동 방식이 생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연으로 호명된 소프트웨어, 혹은 소프트웨어로 호명된 자연이란 자연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의 이분법 구조를 가로지르고, 이 역시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구성하는 절차만큼이나 어렵고 위험한 작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연은 더 이상 순수하고 소박한 제1의 자연이 아니라 사이버네틱한 자연” 7이라는 단언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러니까 점차 기계화되는 ‘인공 지구(artificial earth)’의 형성 과정이 비가역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8 동시에 예술은 또 다른 기술 다양성에 대한 물음을 형성하며 사이버네틱스를 전유하는 사변적 회로가 되리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9 소프트웨어의 은폐된 뒷면에 구멍을 내고 이를 통하여 자연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의 탈구축을 이끄는 “정원의 원리” 역시 크게 기이한 것은 아닐 테다.

정원술(gardening)은 아마도 자연과 관계를 맺는 가장 오래된 테크놀로지 중 하나다. 정원은 화려하게 꾸며진 조경의 이미지를 환기하거나 편안하고 고즈넉한 한낮의 휴식 공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정원의 흙 밑에선 언제나 잡초와 벌레가 들끓고 나무뿌리를 해치는 두더지의 세계가 공존한다. 정원의 테크놀로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러한 생명의 난장을 이해한다는 것이기에, 구자명은 소프트웨어의 땅 밑을 파헤치고 논리적 언어 뒤에 숨은 소스코드의 난장을 찾아내어 개체화한다. 수목이 아니라 수목의 아래, 나무뿌리가 아니라 나무뿌리의 아래, 손에 흙과 먼지를 묻히고 아래를 파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여기에 있다.


 
1 구자명, 「골조만 남아있는, 별 볼 일 없는 시작으로부터」, 『작가노트』, 페이지 표기 없음.
2 케이트 크로퍼드, 『AI 지도책』, 노승영 옮김, 소소의책, 2022, 43쪽.
3 Wendy Hui Kyong Chun, 「On Software, or the Persistence of Visual Knowledge」, 『Grey Room』(18), 2005, 43-44p.
4 Alexander R. Galloway, 『The Interface Effect』, Polity, 2012, 58p.
5 N. 캐서린 헤일스,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송은주, 이경란 옮김, 아카넷, 2016, 70쪽.
6 Alexander R. Galloway, 같은 책, 99-100p.
7 육후이(허욱), 『재귀성과 우연성』,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23, 255-256쪽.
8 육후이(허욱), 같은 책, 75-79쪽.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