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과
해, 붉은별, 그리고 덩굴,
돌멩이, 토끼, 억수의 비. 이들에게는 공유지가 있다. 다름 아닌 자연이다. 작가는 《모노코크: 정원의 원리》를 계획하며 자연적인 것의 이름을
본뜬 컴퓨터 프로그램을 골라냈다. 구자명은 과거 작업에서도 자신의 조형에 생물학적 원리를 부여한 바
있었는데, 이는 소프트웨어의 작동 방식이 생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연으로 호명된 소프트웨어, 혹은 소프트웨어로 호명된 자연이란 자연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의 이분법 구조를 가로지르고, 이 역시 재현 불가능한 것을 재구성하는 절차만큼이나 어렵고
위험한 작업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연은 더 이상 순수하고
소박한 제1의 자연이 아니라 사이버네틱한 자연” 7이라는
단언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러니까 점차 기계화되는 ‘인공
지구(artificial earth)’의 형성 과정이 비가역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8 동시에 예술은 또 다른 기술 다양성에 대한 물음을 형성하며 사이버네틱스를 전유하는 사변적 회로가 되리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9 소프트웨어의 은폐된 뒷면에 구멍을 내고 이를 통하여 자연적인 것과
기술적인 것의 탈구축을 이끄는 “정원의 원리” 역시 크게
기이한 것은 아닐 테다.
정원술(gardening)은 아마도 자연과 관계를 맺는 가장 오래된 테크놀로지 중 하나다. 정원은 화려하게 꾸며진 조경의 이미지를 환기하거나 편안하고 고즈넉한 한낮의 휴식 공간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정원의 흙 밑에선 언제나 잡초와 벌레가 들끓고 나무뿌리를 해치는 두더지의 세계가 공존한다. 정원의 테크놀로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이러한 생명의 난장을 이해한다는 것이기에,
구자명은 소프트웨어의 땅 밑을 파헤치고 논리적 언어 뒤에 숨은 소스코드의 난장을 찾아내어 개체화한다.
수목이 아니라 수목의 아래, 나무뿌리가 아니라 나무뿌리의 아래, 손에 흙과 먼지를 묻히고 아래를 파내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여기에 있다.
1
구자명, 「골조만 남아있는, 별 볼
일 없는 시작으로부터」, 『작가노트』, 페이지 표기 없음.
2
케이트 크로퍼드, 『AI 지도책』, 노승영 옮김, 소소의책,
2022, 43쪽.
3
Wendy Hui Kyong Chun, 「On Software, or
the Persistence of Visual Knowledge」, 『Grey Room』(18), 2005, 43-44p.
4
Alexander R. Galloway, 『The Interface
Effect』, Polity, 2012, 58p.
5
N. 캐서린 헤일스, 『나의 어머니는 컴퓨터였다』,
송은주, 이경란 옮김, 아카넷, 2016, 70쪽.
6
Alexander R. Galloway, 같은 책, 99-100p.
7
육후이(허욱), 『재귀성과 우연성』,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23,
255-256쪽.
8
육후이(허욱), 같은 책, 75-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