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인
측면을 살펴볼 때 조명의 형태로 이들 오브제가 제작되었다는 점 또한 흥미롭게 볼만한 부분이다. 조각은
본래 그 작품이 점유하는 공간과의 관계가 상당히 중요한 장르였다. 공간 안에서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관람객들에게
공감각적인 자극을 유도하는 것이 조각가의 과제처럼 여겨졌다. 특히 빛은 조각 작품들의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장치였다.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는 관객들의 시선을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글로리홀의 조명기구들은 그 자체가 빛을 발하는 것들로 어둠 속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오브제로 향하게끔 한다. 어두운 공간을 밝게 비추는 기능적인 역할을 갖기보다는 오브제 그 자체의 존재를 드러내는 장식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바로
거기에 우리의 눈을 그곳에 둘 수밖에 없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그 즐거움이야말로 우리가 이 작업들을
보러 이 외진 곳까지 찾아오는 중요한 동기일 것이다. 또한 한 편으로 우리가 이 작업들을 더 폭넓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시작점이기도 할 것이다. “올바르게 가려는 자는 젊을 때 아름다운 몸들을 향해 가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1]라는 『향연』 속의 구절처럼.
이제
제작과 판매라는 글로리홀의 작업수행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글로리홀은 창작과 생산 사이를 가로지른다.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작업 방식은 매우 낯설게만 느껴진다. 창작과
생산, 이 두 가지 행위가 마치 전혀 만나지 않는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미술의 역사에서 창작과 생산이 완전히 분리되었던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예술(art)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기술이라는 의미를 간직한다. 우리의 삶에서 미술이 순수한 창작활동이라고 인식되는 것은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예술’이라는 근대적 이상에서
우리가 깊게 빠져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이상주의자들은
예술이 예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상업활동과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예술행위가 자율성을 획득했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럴까? 오늘 우리의 상황을 돌아보자. 우리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활동들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미술의
흐름을 상업화랑들이 끌고 가는 양상은 저물었다. 대신 그 자리를 ‘공공기금’이 빠르게 대신하고 있다. 기획자/작가 모두 문화예술위원회와 지자체의 기금 획득에 기대고 있으며, 주어진 기금 안에서 최대한 손실을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전시와 작업을 만들어나간다. 공공기금은 그 자체로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고 모두에게 기회가 열린 듯한 외양을 갖고 있지만, 연극계, 그리고 광주비엔날레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일어난 일련의 검열사태는
공공기금으로 만들어지는 예술활동들 역시 기금을 주는 이들의 의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만들었다.
이러한
국면에서 작가가 자기 작업을 직접 판매하는 행위는 잃어버린 긴장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소수의
상업화랑, 공공기금에서 이탈하여 관객에게 작업물을 직접 판매하는 행위는 작업에 호응하는 관객과 연대관계를
맺는 것이기도 하다. 미술제도가 이들을 옹호하지 않더라도, 작가의
관객들은 작가와 그 작업을 옹호하며 미술제도에 대한 견제의 시선을 보낼 것이다.
흥미롭게도
미술에서 작가의 자율성이 생겨나던 시기는 작가 자신의 공방이 가게의 기능을 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중세시대
북유럽의 미술가들은 자신의 집 1 층에 마련된 공간을 상점으로 활용하였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판매를 하기에 미술가는 미리 자신의 작업물들을 만들어 놓아야 했고, 이는 미술가가 작업의 소재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줄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이 만든 작업물들은 저렴해서 일반 도시 노동자들의 급여로도 충분히 구입할 수 있던 것들이기도 했다. 창작의
자유, 미술감상계층의 확대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글로리홀의
창작활동도 이러한 미술사적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대미술은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비판성’ 혹은 ‘자율성’이라는 미명하에 작가들을 더욱 가혹한
환경으로 밀어 넣는 모습들도 나타난다. 최근 성황리에 마무리된 ‘굿-즈’에 대해 ‘제도가 아닌 척’하는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의 신경질적인
반응들을 생각해보자.[2] 그들은 그들 자신이 제도의 일부임을 숨기는 기만을 저지르곤 한다. 그리고 작가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지리멸렬하게 반복되어온 ‘비판 향 첨가’,
혹은 ‘대안 향 첨가’ 작업들에 매진할 것을 강요하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작가들의 이야기를
그리 진지하게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3]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작가의 스튜디오가 일종의 공방이자 상점으로 기능하는 모습, 그리고 작가가 다시금 장인이나
상인으로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모습은 복고적, 나쁘게 말하면 퇴행적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태도가 마치 미술가의 미덕, 미술의 유일한
모습인 것처럼 회자되는 것이 지금의 미술제도라면 글로리홀이 보여준 복고적 성향이야말로 제도비판적인 미술행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확실하고, 바로 오늘만 살아야 하는, 내 한 몸 희생해서 지탱해 나가야 하는 미술의 상황 속에서 오히려 지속 가능한 작업 방식을 모색하는 이들의
활동이 더 대안적이지 않을까?
※ 2015년 11월 8일 개방회로에서 열린 라운드테이블에서 발표한 원고를 일부 수정한 글
[1] 플라톤, 『향연』, 강철웅 옮김, 이제이북스, 2005. p. 142.
[2] 예를 들어 ‘굿-즈’에 대한 고동연의 리뷰를 들 수 있겠다. 고동연은 굿-즈와 그 작가들에 대해 몇 가지 일리 있는 비판을 가했지만, 대체로 지나치다고 느낄 만큼 적대적인 의견들을 피력했다. 특히 예술경영지원센터의
기금을 받은 것을 비윤리적인 행동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은 이해하기도, 동의하기도 어렵다. 몇몇 공간들은 예술과는 상관없는 ‘창업지원금’을 받아 운영되는 곳들도 있는데,
그런 공간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진다. 고동연, “굿-즈에 대해 글을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퍼블릭 아트>(2015. 11)을 참고할 것.
[3] 사실 미술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무성의함’은 양측의 관계에서 한 쪽의 힘이 지나치게 강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작가들 뿐만 아니라 젊은 기획자(지망생)들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인데, 자신이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전시에 필요한 행정사무를 대신 진행해주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대폭 축소해나가는 모습이 감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