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 of Jumbo Shrimp © Omyo Cho

체계와 경계는 인식의 토대가 된다. 우리는 크기, 높이, 너비를 측정하고, 국가, 성별, 나이, 언어를 구분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언제나 오류를 포함한다. 경계 짓기는 포함과 배제를 동시에 요구하며, 이는 결국 대상과 주체, 개인과 사회, 현실과 비현실을 단절된 영역으로 구획하는 데 일조한다. 오묘초의 작업은 이와 같은 구분법 자체에 질문을 던지며, 경계를 전제하지 않고도 사유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모색한다.

《Jumbo Shrimp》라는 전시 제목은 언뜻 보기에도 명백한 역설로 구성되어 있다. '크다'는 의미의 'jumbo'와 '작다'는 의미의 'shrimp'라는 단어의 결합은, 분명하게 상반되는 두 개념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인식 체계에 내재한 모순을 드러낸다. 이 모순은 단지 언어적 장치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 전시에 내재한 사고의 구조, 혹은 작가가 사고를 조직하는 방식 자체를 암시한다. 체계는 언제나 질서를 요구하지만, 그 질서가 불가능함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다른 종류의 상상력을 작동시킬 수 있다. 오묘초의 작업은 그 불가능한 질서 속에서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존재한다.

작가는 익숙한 사물이나 기억을 끌어오되, 그것들을 낯선 재료와 이미지로 뒤섞는다. 도무슨 종이 절단기, 웹사이트의 이용 약관, 외과용 체인, 감자, 곰 인형 등은 각각의 구체적인 출처를 갖고 있지만, 그것들이 작가의 손을 거쳐 배열되는 순간, 본래의 맥락은 지워지고 상상의 층위로 이행된다. 특히 전시장 A의 중심에 위치한 Genuine Imitation은 빛, 도자, 유리, 텍스트 등이 한데 뒤엉킨 조형물로, 감각과 사유의 차원을 동시에 자극한다. 이 작업에서 도출되는 감자 형상은 전시장 곳곳에 흩어져 배치되며 Potato Romance라는 기묘하면서도 감성적인 제목을 부여받는다. 이 감자들은 무엇인가로 확정되지 않으며, 돌 같기도 하고, 바다 생물 같기도 하고, 때로는 증식 중인 신체의 일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명명당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해석의 구심점 없이 방황하게 된다.

《Jumbo Shrimp》는 자전적 기억과 불완전한 인상의 층위들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어린 시절 스키장에서 느낀 공포, 곰 인형에 대한 기억, 리프트 아래의 불안정한 그물망은, 시간의 겹쳐짐을 통해 오늘의 작업으로 소환된다. 작가는 그 기억을 체인, 유리, 도자와 같은 재료로 번역한다. 하지만 그 번역은 직선적인 내러티브를 생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기억의 해상도를 흐리는 방식으로 수행된다. 재료들은 정교하지만 내용은 불분명하고, 설명은 제시되지만 해석은 유예된다. 이러한 방식은 특히 전시장 B의 도자 타일 설치 Literature of the Other Place Coming from Another and Going to Another Place에서 두드러진다. CAPTCHA 이미지에서 파생된 왜곡된 이미지 조각들은, 기계가 인간을 인식하는 방식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며, 재현 자체의 불확실성을 조형화한 결과로 읽힌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시각 언어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다. 전시장 B의 벽면을 가득 채운 배(pear)의 이미지, 그리고 ‘pair/pear’의 언어적 유사성에서 파생된 혼동은, 작가가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해체하고자 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것은 의미 전달을 위한 체계가 아니라, 의미 생성 이전의 감각적 층위에 대한 탐색으로 읽히며, 이미지와 단어 사이의 무정형한 간극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러한 전략은 수동적인 관람이 아니라 적극적인 감각의 분열을 요구하며, 이는 작품 감상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한편, 주목할 점은 작가가 선택한 재료의 고집스러움이다. 많은 동시대 작가들이 비교적 가벼운 폴리우레탄이나 3D 프린트 등으로 작업의 부담을 줄이는 데 반해, 오묘초는 유약과 굽기를 반복해야 하는 도자기를 일관되게 사용한다. 도자기는 그 특성상 과정을 숨기기 어렵고, 완성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며, 그만큼 우발성과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확실성은 바로 이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질서의 모순, 경계의 모호함과 깊이 공명한다. 도자기는 변형되기 쉬운 이미지들을 물리적 질감으로 고정시키는 동시에, 그 고정 상태를 되묻는 재료로 기능한다.

《Jumbo Shrimp》는 결국 해석 불가능성을 구조로 삼는다. 작가는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전시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 자체의 방향을 바꾼다. 왜 해석 가능성만을 기준으로 사물을 판단하는가? 왜 명료함만을 미덕이라 여겨야 하는가? 전시는 불분명함, 모호함, 실패, 겹침, 애매함과 같은 요소들을 정교하게 배열하고, 그 안에 고유한 질서감을 부여한다. 이것이 바로 ‘질서 정연한 수수께끼’라는 표현이 의미하는 바다. 모순과 이질성, 애매함으로 구성된 세계 속에서 작가는 여전히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그 구조는 기존 체계를 해체하는 힘이 된다.

Referenc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