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아람은
〈첫 번째 작도연습〉(1st Drawing Exercise, 2014)을 시작으로 퍼포먼스 작업을 지속해왔다. 장소와 환경에 따라 구성에 차이는 있었지만, 골자는 “작도연습”을
위한 지시문을 만들고 참여자들로 하여금 심상을 조형하도록 안내하는 것, 그리고 해당 과정에서 주어진
시공을 다르게 감각할 수 있게끔 이끄는 것에 있었다. 작가는 지난 전시 《롤 앤 맆: 2008~2019 Roll and leaP: 2008~2019》(2019)을
계기로 이와 같은 수행의 방법을 회화 매체의 영역에서 집약하기 시작했고, 2020년에 진행한 개인전
《타임즈 TIMES》 또한 같은 연장선 위에 있다. 박아람은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을 이용해 드로잉하고, 그 구상을 기반 삼아 회화를 만드는데, 표 형식을 자동화해 데이터의 분석과 계산을 용이하게 하는 프로그램의 특성상 도출된 결과물은 꽤 엄격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가졌다.
하지만 동시에 프로그램 특유의 그리드 구조를 노출하고 있었기에 보는 이는 해당 회화로부터
자동 연산이 작동하고 적용된 논리를 추측할 수 있었다. 이 같은 구조 위에서, 특정 작업은 연산 결과의 주고받음을 통한 영구한 운동을 상상하게끔 했고(〈무한동력〉(Perpetual Motion)), 혹은 기호적 질서를 감각 차원에서 재구성했다(〈타임즈〉(Times)). 두 개로 나뉜 전시 공간에 같은 이름으로, 하지만 다른 크기로 놓인 〈아이-핑거 Eye-Finger〉는 변화한 공간의 축척을 표지하는 오브제였는데, 상상적인
감각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외에도 《타임즈》에는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그리드 구조를 따라
제작되었지만 다소 임의적인 구성을 갖는 회화가 두 점 배치되었는데, 재현적인 제목을 갖는 이 두 사례는
전시에 가정된 모종의 논리를 따라 구현된 재현적 실험의 경우처럼 보였다.(〈댐〉(DAM), 그리고 〈계단〉(Stairway)) 《타임즈》에서 회화는
여러 역할과 기능을 포함한다. 이것은 지표(Index)이며, 임의의 법칙을 지니는 체계로서 언어이고, 또한 모종의 수행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스코어(Score)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아가, 이것은 일종의 ‘원근법’이다. 유한성으로부터 무한성을 추측하게끔
이끄는 시각적 가이드라인이라는 점에서, 또 세계, 혹은 시공을
체계화해 보이고 밝히는 프로세스라는 점에서 일종의 원근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아람은
작업을 설명할 수 있는 몇 가지 단서와 내부 규칙을 내게 건네주었고, EHT가 발행한 블랙홀 사진은
그중 하나였다. 고전적인 원근법은 눈을 입력 장치로 가정한 채 세상을 격자로 구조화하고, 선을 모아 소실점을 만들어내며 환영을 완성한다. 하지만 《타임즈》의
원근법에는 소실점이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무한하게 운동하기에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의 자동화된 격자 위에서, 《타임즈》의 원근법은
소실점을 운동으로 환원한 뒤 평평해지며 동시에 영구해진다. 어쩌면 이 원근법은 변화한 눈의 위상을 가정하는
동시에, 쉽게 소거되지 않는 눈의 집요한 직관을 의식한다. 여전히, 밝혀진 것은 곧 보여야 한다. 하지만 《타임즈》의 수행을 경험으로
체화한 누군가는 영구한 소실점을 따르며 세계를 새로 볼 텐데, 이처럼 보고 또 보는 연쇄 위에서 보기의
무한동력은 창출될 것이고, 원칙은 그렇게 역전될 수 있다; 보인
것은 곧 밝혀질 수 있다.
1)에르빈
파노프스키, 『상징형식으로서의 원근법』, 심철민 옮김, 도서출판 b, 2014, 65p.
2)프리드리히 키틀러, 『광학적 미디어』, 윤원화
옮김, 현실문화, 2011, 81p.
3)에르빈 파노프스키, 위의 책, 1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