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1_the things: 용머리, 독수리, 공작새, 침팬지
형태의 반복과 나열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화려한 색채는 우리의 시선을 현혹한다. 반복과
나열은 작가가 지속하고 있는 표현 방법 중 하나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작가의 생각 회로를 보여주는 흔적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선의 발견을 위한 제안proposal으로 작동한다. 그의 대상들은 나란히, 때로는 중첩되어, 어떤 때에는 무작위로 나열되어 있다. 형태의 반복과 나열, 그리고 불규칙한 중첩은 작가 스스로가 던진 질문의 해소를 위한 방법론을 보여주며, 작품에서는 모호함과 혼돈을 위한 장치로 기능한다.
아름다움을 반복해도 동일한 아름다움이 지속될 수 있을까? 흥미로운 형태의 부분이 반복되면
본래와 전혀 다른 개체로 보일 수 있을까? 존재하는 형태의 반복이 그들이 왜 그렇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 줄 수 있을까? 반복된 대상은 개체들의 군집일까, 시간의
흐름이 남긴 움직임의 흔적일까? 작업의 시작은 작가의 직관적 호기심에서였다. 그래서 이번 작업에 등장하는 반복적 형상들 ― 용머리, 독수리, 공작새, 침팬지, 꽃 등 ― 이 선정된 특별한 이유는 없다. 단지 작가는 단순한 의문이나, 직관으로 선택한 형상을 늘어놓거나
특정 형태를 반복함으로써 전혀 다른 감각의 발견이나, 새로운 심미적 경험의 가능성을 시도하고 있다.
scene#2_the heads: 두상들
전시장 중앙에 모인 두상들이 있다. 비슷한 형태와 크기를 가진 두상들의 반복적인
진열은 멀리서 보기에 평범한 집단이나 군중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의 근처로 다다르게 되면 집단성에
가리워져 있던 개별자와의 만남이 이뤄지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같은 것 하나 없는 가지각색의 두상들과
마주하게 되고, 그들의 모습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두상에서
기대되는 ‘보통’의 모습이 있다. 눈 두 개, 코 하나, 입
하나가 기대할 수 있는 구성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 모인 두상들에 ‘정상’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아름다운 눈만이 가득한 머리, 뱃가죽의 근육으로 이뤄진 얼굴, 생선 대가리가 꽂혀있는 머리 등
난해하고 기묘한 머리들은 마치 중요한 모임이라도 하듯 모여 있다.
작가는 그의 주변 인물, 또는 상상력을 가미해 각각의 개별자를 구현하였다. 작가는 사회적 표정을 이루는 외면의 피부를 벗겨내어, 이들의 내면, 개성, 정체성, 그리고
생각들을 얼굴 전면으로 드러내고 있다. 극한의 혼돈으로 가득한 머릿속,
집착과 강박적 생각들, 끔찍한 악몽의 기억, 은밀하고
섹슈얼한 욕망 등, 여기 모인 개별자들은 저마다의 해방감과 함께 독보적 정체성을 뽐내고 있다. 이는 마치 한 공간에 존재하지만 각기 다른 생각들로 가득 찬 동상이몽의 집단 군상을 보여준다.
scene#3_the fishes: 상어와 방어
자신의 존재 형태를 고민하는 방어가 있다. 본래부터 입고 있어야 했던 유연한
외피가 아닌 육면체의 평면에 갇힌 방어의 모습은 그 불합치함으로 인해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여기에는
작가의 몇 가지 질문이 기반하고 있다. 입체가 평면처럼 보이는 것과 동시에 평면도 입체처럼 보일 수
있을까? 그리고 여기에 움직임이 더해진다면 어떠한 형태가 될 수 있을까?
우리는 육면체로 분절된 방어의 모든 면을 확인할 수 있다. 윗면과 아랫면, 측면과 단면 등 모든 삼차원의 면에서 방어는 성실히 묘사되어 있다. 방어의
단면은 그 선명함으로 싱싱한 횟감을 떠올리게 하고, 정면에서 마주하는 역동적인 방어 얼굴은 그 세찬
고갯짓으로 인해 눈알이 튀어나와 버릴 정도이다. 방어는 분절된 조각에서 평면으로 존재하지만, 이 조각들이 집합을 이룰 때 우리는 한 마리의 입체적인 방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평면과 입체 그리고 움직이는 형상들의 혼재가 자아내는 모호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하여
작가는 우리의 의식 깊이 자리하고 있는 익숙함이나 친밀함이 무너지는 지점을 만나게 한다. 이 불편함이
괴로움을 넘어 규칙과 형식, 그리고 선입견에 관한 다른 시각을 열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이영욱은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작가 자신과 관계하고 있는 사회적, 정신적 통제로부터 안녕을 고한다. 학습된 사회적 욕망은 많은 이들의 인생 목표와 행복의 조건을 비슷하게 만들어간다. 정형화된 아름다움의 인식은 진실된 자기 감상을 하지 못하게 막고 있을지 모른다. 작가는 그를 둘러싼 부조리와 마주하고, 새로운 시각을 고민하는 지점을
이번 전시에서 풀어내고 있다. 모호함과 모순을 선사하는 작가의 작품에서 리모컨을 멈추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발견하길 바라며, 감각, 심미적 체험, 예술에 관해 교체 불가한 각자만의 경험이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