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거울인가요?” 앨리스는 마지막으로 묻는다. “투명한 거울입니다.” 도라가 대화의 첫머리를 내뱉는다. 그리고 다시 대화는 되풀이된다. 김현석은 〈환영의 변증법〉(2022)에서 수미상관으로 구성된 도라와
앨리스의 대화를 통해 미래의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드러내고, 이
관계가 가져올 미래의 시·지각성을 예측한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은 AI(GPT-3)가 생성한 가상의 인물이다. 그리고
어찌 보면 본질적으로 AI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들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이들 간의 이야기는 대화면서 독백이기도 하다.
도라는
자신을 ‘거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AI인 자신을 거울로 은유한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거울을 무엇으로 만드는냐는 물음에 ‘언어’라고 답하는 것을 통해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AI는 결국 프로그램에
언어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 ‘언어’를 단선적으로 프로그램에 언어로만 한정할 수 없다. 포괄적인 의미의
언어로도 해석할 수 있다.) AI는 인간이 남기거나 생성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용하기에 흔히 ‘인간의 거울’이라고 불린다. 인간의
내면을 그대로 비춘다는 뜻이다. 그런데 도라는 자신을 ‘투명한
거울’이라고 답한다. ‘투명함’과 ‘거울’. 이 둘을
함께 묶을 수 있는 단어인가? ‘투명한 거울’은 무엇인가? 물론 대상의 내면이 선명히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로 투명함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신내 저돌을 온전히 알 수 없는 블랙박스다. 그렇다면 AI의 투명함은 무엇인가? 그러자 하여 대화 중 앨리스는 이런 물음을
던진다. “도라. 오늘의 매끄러운 거울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매끄러움’과
‘거울’. 거울을 촉각적(매끄러운)으로 느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AI가 촉각적일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일까?
등진
대화
김현석의
〈환영의 변증법〉은 2채널 영상 설치 작품으로, 한 채널에는
도라의 말이, 다른 채널에는 앨리스의 말이 대화 형식으로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그런데 2개의 화면은 서로 등진 채 반대편을 향하고 있다. 가상의 두 인물이 대화하는 것을 ‘보는’ 사람은 양쪽을 동시에 볼 수 없어 대화의 ‘틈발생’ 혹은 ‘불완전함’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대화를 소리로 들을 때의 경험은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또한 볼 때와 유사한 감정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정상적인 문어형 문장과 ‘현실계’나 ‘상상계’, ‘쾌락’, ‘호불’, ‘투사’, ‘비언어적(non-verbal)’ 등 철학적 용어들이 뒤섞여 있어
이들의 대화는 지적인 내용의 이야기가 오가는 것처럼 들리지만, 엄청나고 의미가 분명하지 않다. 이 때문에 소리로 들어 대화를 좇는 일도 여전히 용이하지는 않다. AI의
말은 운전해 이해하기 힘들다. AI는 “그럴듯한 헛소리(plausible bullshit)”를 만들어낸다. 이와 관련하여
네이처(Nature), 2023년 1월 24일, 이하 ‘양산된
글은 “투명한 거울”이나
“매끄러운 거울”이란 표현과 같이 안갯속에 있는 실체처럼 흡사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매끄러운 거울”처럼
언제나 촉각적(물질적) 형태를 지향하기도 하고, 그렇게 존재하기도 한다. (모니터,
컴퓨터, 스피커, 랜선, 중계기, 해치 케이블, 데이터
센터에 이르기까지 디지털적 디지털적 대상의 신체를 꾸준히 기형한다.) AI가 현현의 물질화로 향하는
그것이 디지털이다. 세포로 생성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그
물질은 항상 디지털의 손실, 증폭, 합성, 재배치로 인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디지털은 그 속성과 운용 방식으로
인해 손실과 증폭, 합성, 재배치가 수시로 일어난다. 디지털은 환영을 양산한다.
유사상의
원칙에 따라 작동하는 아날로그와 달리 디지털 자체는 노이즈를 지닌다. 레코더 속 레코딩 테이프의 잘못된
작은 소리가 기록되면 이상하게도, 디지털 음음은 (off)의
경우, 곧바로 0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소리로 구성될 뿐이다. 이 때문에 디지털은 편집 및 복원, 복제가 자유롭고, 존재생성적 신경망(GAN, 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의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을 통해 단순히 데이터를
합성하거나 편집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데이터를 생성하기도 한다. 또한,
그림과 문자, 소리 등을 모두 같은 이질적인 데이터로 전환하여 손실을 반복하면서 무한히
증폭 및 합성을 이어간다. 이 모든 것을 ‘환영의 법칙’이라 말할 수 있다. ‘환영의 법칙’은
물질로 결코 완비될 수 없는 것이다. 〈환영의 변증법〉은 4K UHD
화면에서 발광하고 있으며, HMD 없는 〈다모클레스의 검〉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다. 써내려 가는(write/type) 방식을 이미지로 그리는(draw) 방식으로 변용하는 〈ASSY〉 프로젝트에서 키보드의 버튼은
작업을 구성하는 주요한 물리적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비물질의 경계에 있는 물체도 있다.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검은 돌처럼, 〈다모클레스의 검〉은 물질이지만, 그것을 상징적으로 인용하여 ‘픽셀’을 융합한 〈관찰자〉에서는 비물질로도 재현한다.
김현석은
이러한 디지털 대상의 존재론적 속성을 작품으로 조형한다. 그는 “열화(deterioration)”, “환영(illusion)”, “보간(interpolation)”, “물질(substance)”이라는 네
가지 개념을 중심으로 디지털적 대상이 지닌 속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