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s
《Pain Is Left After the Bite》, 2024.06.07 – 2024.07.20, 필립졸링어
2024.06.01
필립졸링어
Young-jun
Tak, Seem More, 2024, lime wood, aluminum, half of a table,
faux bread roll, beeswax, 104 × 125 × 62.5 cm © Philipp Zollinger
탁영준은
조각, 설치, 영상 작업을 통해 인간의 신념 체계와 그것이
사회 및 문화 구조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다. 이번 전시는 이야기 구조 속에서의 ‘결핍’이 지닌 힘과, 그
결핍을 각자의 방식으로 채우려는 인간의 자기 효능감에 주목한다. 이는 우리 삶의 모든 디테일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사회인지 기능이기도 하다. 전시 제목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결여된 것이 ‘이’와 ‘혀’라는 점을 암시한다. 즐겁거나 혹은 불쾌한 구강적 욕망에 따라 괴롭히는
이 결핍 속에서, 작가는 보이지 않는 흔적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시점이 결정되는 여러 상황을
제시한다.
전시장
입구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조각은 Wishful(2024)이다. 베로나산 장미 대리석으로 조각된 성수대(shell-shaped holy
water stoup)와, 작가 자신의 유두를 실리콘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캐스팅한 오브제가
결합되어 있다. 성수대는 신자들이 손가락을 담가 스스로를 정화하는 용도로 사용되며, 이를 통해 일상의 불결함을 씻는다고 여겨진다. 절단된 유방은 기독교
미술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로, 시칠리아의 성녀 아가타의 유방은 고문에 의해 잘려졌고, 그것은 접시 위에 놓인 형상으로 유물이나 미술작품, 때로는 디저트의
형태로 재현되곤 했다.
종교의
경건함조차 여성 신체에 대한 성적 대상화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이는 오랫동안 지속된 가부장적 시각과도
연관된다. 반면, 이 조각은 남성 유방을 대응하는 형태로
제시한다. 이는 전통적 시각에서는 무미건조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어떤
이들에게는 매혹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우리의 상식은 남성 유두 아래에 건조함을 상정하지만, 어떤 믿음은 특정한 시도와 노력 끝에 황홀감의 한 방울이 떨어질 수도 있다고 암시한다.
Young-jun
Tak, Seem More, 2024, lime wood, aluminum, half of a table,
faux bread roll, beeswax, 104 × 125 × 62.5 cm © Philipp Zollinger
전시장
중심에는 Seem More(2024)와 Seem Less(2024)라는 쌍둥이 조각이 설치되어 있다. 이 두 작품은 기독교 유물에서 종종 등장하는 손 모양을 본뜬 형태로, 반달
모양의 식탁 위에 실제 크기의 알루미늄 주조 손이 세워져 있다. 각각의 손에는 여섯 개의 손가락이 달려
있으며, 모든 손가락 끝에는 나무로 조각된 남성의 머리가 달려 있다.
이 열두 개의 머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식당 벽에 그린 《최후의 만찬》(1495~1498년경)에 등장하는 열두 사도를 모티프로 한다.
모든
조각은 앞서 언급된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15대째 이어온 종교 조각 공방에서 제작되었다. 열두 사도의 얼굴에 나타난 극적 긴장, 경이로움, 그리고 수치심은 원래는 중심에 위치한 예수의 존재로부터 파생되지만, 이
조각에서는 예수가 고의적으로 부재한다. 관객은 원작 회화나 성서적 맥락을 통해 이 ‘스캔들’의 원인을 유추할 수 있으나, 중심이 빠진 상황은 오히려 혼란스럽고 해석이 불분명해진다. 손바닥을
앞으로 내민 손들은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며, 그 앞에 놓인 인공 빵은 이 경건한
장면의 존엄성과 숭고함을 일상의 하찮은 욕망이 만들어낸 다툼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
옆에는 나무로 만든 소시지 두 개가 스테인리스 철망 위에 올려져 있다. 나무 벽 선반에 의해 액자처럼
둘러싸인 이 조각은 Never Enough(2024)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구운 소시지의 양 끝은 각각 성 니콜라스의 얼굴로 변형되어 있으며, 한쪽은 노년의 얼굴, 다른 한쪽은 젊은 시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성 니콜라스는 대기근으로 고통받던 마을에서 도살업자에게
살해당한 아이들을 되살렸고, 이로 인해 ‘기근에서 구원하는
성자’로 여겨진다. 독일어로 Bratwurst라 불리는 이 소시지는 독일, 동스위스, 오스트리아에서 널리 소비되며, 그 먹는 방식은 일종의 의례처럼 발전해왔다. 예컨대 성 갈렌(St. Gallen) 지역의 브랏부어스트는 겨자
사용이 금기시되기도 한다. 조각에 등장하는 성인의 얼굴 역시 앞서 언급한 바이에른 조각 장인이 제작한
것이다.
전시의
마지막에는 Bountiful(2024)이라는 조각이 계단 아래 벽에
걸린 채 설치되어 있다. 고가구 선반 위에는 두 명의 푸티(천사의
형상)가 장식되어 있고, 그 위로는 새 둥지가 놓여 있다. 이 둥지는 계단 아래에서 부분적으로만 보이기 때문에, 관객은 옆에
마련된 스툴에 올라 직접 확인해 보도록 유도된다. 둥지 안에는 작가의 또 다른 유두를 사실적으로 실리콘으로
제작한 조각이 놓여 있으며, 이는 마치 영원히 기능하지 않는 수유의 원천처럼 보인다. 작가는 여성 순교자들의 성적 대상화된 신체 부위에 대한 대응물로, 자신의
유두 형상을 반복적으로 조각에 사용해 왔다. 이 조각은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하고, 숨겨진 것을 찾아내고 싶어 하는 관객의 욕망을 자극하며, 발견을
통해 기쁨이나 실망을 되돌려주는듯 하다.